그리움에 눈물만 가득히


지난 여름, 청년 수련회로 2박 3일 동안 ‘탁발성지순례’를 웃고 울면서 다녀왔다.

거룩한 흔적들

첫째 날, 증도에 도착하여 저녁 탁발을 했다. 모두 이집 저집 다니면서 구걸을 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일을 하러 가서 빈집이 많았는데,  장고리 교회에 모여 각 조별로 탁발한 음식을 내어놓으니 뷔페식당처럼 다채롭고 식탁에 한 가득이었다. 저마다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하였다.

저녁 집회 때는 문준경 전도사님의 영상물을 보면서 한 많은 여인의 눈물을 보았다. 남편에게 결혼 첫 날부터 버림받고,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다가 주님을 만난 후 희생과 땀과 눈물로 삶을 일구신 분이다. 짱둥어 다리를 건널 때 고무신을 들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푹푹 빠지는 갯벌을 힘겹게 걸어가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한 맺힌 삶을 찬양으로 기도로 승화시키며 잠시도 쉴 틈 없이 산으로, 들로, 바다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하러 다니셨다. 진심어린 눈물과 희생은 한 섬을 오늘날 천국의 섬으로 바꾸어 놓았다.

다음날 일정은 소록도였다. 꽃다운 나이 16살에 소록도로 들어오신 장 권사님의 한 맺힌 간증과 노래를 들으면서 목이 매이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고통의 세월을 보내셨건만 해맑은 미소를 띠우며 소록도 여기저기를 안내하셨다. 고통 속에서도 미소를 짓고 계셨던 주님의 얼굴이 겹쳐졌다. 한센병 환자들은 3번의 죽음을 겪는다고 하였다. 한번은 세상으로부터, 또 하나는 육체의 죽음, 또 하나는 죽음 이후에 시체를 해부하는 것이다.

때로는 뭉그러진 손과 발과 몸으로 힘겨운 노동을 견디지 못해 조금 반항을 하면 감금실에 가두고 고문을 하면서 반성문을 쓰게 하였다. 감금실 벽에 걸려있는 글귀 속에서 절절한 신앙의 고백이 가슴에 전해 온다.

“아무리 죄가 없어도 불문곡직하고 가두어놓고/ 왜 말까지 못하게 하고 어째서 밥도 안 주느냐/ 억울한 호소는 들을 자가 없으니 무릎을 꿇고 주께 호소하기를/ 주의 말씀에 따라 내가 참아야 될 줄 아옵니다/ 내가 불신자였다면 이 생명 가치 없을 바에는/ 분노를 기어이 폭발시킬 것이오나/ 주로 인해 내가 참아야 될 줄 아옵니다.”

이어 저녁시간에는 남원에 있는 개신교 수도공동체인 남원 동광원으로 옮겨서 김금남 원장님의 간증을 들었다. 육체는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 계셨지만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힘이 있으셨다. 머지않아 가실 저 본향에 이미 다다르신 듯 한 고요한 표정이셨다. 백발이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다워 보였다. 가진 것 없이 소박하게 주님만을 사랑하며 걸어왔던 가시밭길이었지만, 누구보다도 사후를 잘 준비하고 계신 현명한 여인이었다. 자칫 순결을 잃어버릴까 노심초사 빨리 이 젊음이 가고 늙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고백이 가슴을 울렸다. 복음적 가난을 실천하며 순결을 잃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며 가슴 저린 눈물을 흘렸던 인고의 삶 앞에 여기저기서 소리 없이 눈물을 훔치는 청년들이 있었다.

마지막 날은 방애인 선생님의 자취가 남겨져있는 서문밖 교회와 깡통교회로 불리는 안디옥 교회와 바울선교회 본부로 갔다. 가장 어려운 복음의 불모지 땅인 중동에 더 많은 선교사들을 보내고 있다는 말씀에 복음의 열정에 타오르는 불꽃을 보게 되었다.

계속 연이어지는 수련회, 먼 장거리와 빡빡한 수련일정 속에서 급기야 폐회 예배 때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모든 일정이 끝난 후 수실에서 조용히 무릎을 꿇으니 감사가 나왔다. 그리고 주님의 눈물의 호소와 우시는 모습이 겹쳐져 왔다. “갈 바 몰라 방황하는 저 어린청년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저들을 잘 인도해 주어라.”


눈물의 사람들

아버지는 유난히 눈물이 많은 나에게 남자는 우는 게 아니라면서 그렇게 엄하게 말씀하셨다. 그런 아버지께서 우셨던 적이 한번 있었다. 바로 내가 말없이 집을 나와 보름동안 방황하던 때였다. 집에 들어갔는데 어머니께서 “네가 집 나간 뒤부터 아버지께서 너만 부르며 우셨단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때 아버지가 처음으로 측은하게 생각이 되었다.

영적인 스승이요 아버지 같은 선생님은 말년에 뇌경색에 오른쪽 다리 대퇴부가 골절되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사셨다. 그때 가까이 따르던 제자들이 떠나갔다. 그러한 외적, 내적 고통과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병자들이 와서 기도해 달라하시면 선생님은 눈물로 기도해 주시곤 했다.

재작년 미국에서 피더슨 목사님을 만나 이용도 목사님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데, 108세의 노령이신데도 불구하고 70년 전, 한국에서 이용도 목사님과 생활하시던 그때를 또렷이 기억하시고 우셨다. 그리고는 “이용도 목사님 같은 분을 그 이후로 만나보지 못했어요.”하시며 한국에 빨리 가고 싶다고 또다시 우셨다. 옆에 계신 따님이 너무 우시면 안 된다고 대화를 자제 시키실 정도였다.

성경에도 눈물의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특히 외적으로 강하게 보이는 남자들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성경의 인물 중에서도 요셉은 참 많이 우신 분이다. 17살 어린나이에 형들에게 버림받고 노예로 팔려가 온갖 갖은 수모와 고통을 겪으며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 흉년으로 인해 곡식을 얻기 위해 형들이 찾아왔다. 자칫 생명을 잃어버릴 수 있는 상황에서 안절부절 어찌할 바 몰라 하는 그들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목 놓아 울었다. 회한의 눈물보다는 긍휼과 용서의 눈물이었다.

깡패와 빈대와 벼룩이 들끓는 고베의 신기와에서 창녀와 빈자와 병자와 버림받은 아이를 돌보며 밑닦이 인생을 사셨던 하천풍언은 “나와 함께 울자”하시며 눈물의 이등분의 시를 쓰셨다. 다윗왕은 밤마다 침상의 요를 눈물로 띄운다고 하셨으니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셨을까? 예레미야 선시자도 자신의 머리에 눈물이 가득 고여 걸을 때마다 넘쳐흐르는 것 같다고 하셨다(렘9:1). 프랜시스 성인은 말년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감격하며 눈물을 너무 많이 흘리셔서 실명이 되기까지 하셨다. 사도바울도 겸손과 많은 눈물로 성도들을 섬기며 돌보았다. 베드로 사도께서도 닭이 울 때마다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에 매여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장렬하게 순교하지 않으셨던가? 우리 주님도 곧 멸망할 예루살렘을 보시며 안타까이 우셨다.

얼마 전 은성수도원 원장님이셨던 엄두섭 목사님께서 손수 만드신 책을 보내주셨다. 그 책에 에콰도르의 안젤리카라는 소녀가 애처롭게 우시는 예수님을 보았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내 사랑하는 딸아,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지 않고 세상의 정욕에 취하여 살다가 지옥에 떨어지는 저들을 볼 때마다 내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단다. 나는 이제 곧 갈 것이다. 아니 당장 간다.”


울고 또 울며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목말라하며 오늘도 지옥으로 떨어지는 영혼을 보시고 울고 계시는 예수님을 생각할 때 내 가슴도 미어진다. 주님은 곧 오신다고 말씀하시는 데….

오늘 이순간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며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며 정욕에 취해 살아가는 이 세대를 바라볼 때 얼마나 주님의 마음이 아프실까? 피눈물을 흘리면서 회개를 해도 부족하건만,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그리 바삐 움직이고 있는가?

아, 황량한 광야를 달리는 불쌍한 인생들아! 어서 속히 모든 죄를 낱낱이 자복하고 재 가운데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리자. 저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애달픈 눈물을 흘리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거두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 서로 만나면 “주님 오시기 전에 죄를 통회하며 웁시다.”라고 인사를 나누자.

철없던 청년의 때에 영적인 소경과 귀머거리 같은 못난 제자를 위해 영적인 아버지이신  선생님께서 우시는 소리를 들었다. 이제는 세상으로 치닫고 있는 이들을 위해 우리가 울어야할 때이다. 아니 내가 울어야 할 때이다. 주님의 눈에서 흐르는 피눈물을 볼 자 누구이던가. 북받쳐 오는 울음을 삭이며 주님을 다시 불러본다. 가실 때 다시 오마 약속하신 주님을 고대하는 마음 가눌 길 없어 기다리는 마음에 그리움의 눈물만 가득 차오른다.

박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