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드려지고 바쳐진 삶, 경건

경건은 사적이든 공적이든 기도 그 자체는 아니다. 사적이든 공적이든 기도가 경건의 실제이기도 하고 특별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경건은 하나님께 드려지고 바쳐진 삶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더 이상 자기의 뜻이나 자기의 방식이나 세상 정신을 따라서 삶을 영위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삶을 영위하는 바로 그 사람이 경건한 사람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생각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섬기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함으로써 자기 일상적인 삶의 모든 부분들을 다 경건의 부분으로 만드는 사람, 바로 이 사람이 경건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에 걸맞은 원리를 따라서 모든 일을 행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하나님만이 우리 기도의 원리와 척도가 되어야 함을 기꺼이 인정한다. 그리고 기도할 때에는 온전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위하여 행동해야 함을 인정한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에 부합한 목적과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부합한 방식으로만 기도해야 함도 다 인정한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든지 그가 어째서 그렇게 엄격한 경건의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발견하도록 해주어라. 그러면 그는 삶의 다른 모든 부분에서도 기도할 때처럼 그렇게 엄격한 경건의 자세를 취해야 할 확고한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기도의 원리와 척도가 되시는 이유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여지가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직 그만 바라보아야 하며, 오직 그의 뜻대로만 기도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만 전심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으로 우리 삶의 다른 모든 활동들의 원리와 척도로 삼을 것도 동등하게 필요함을 알게 된다.

그것이 삶의 어느 방면에 관한 것이든 관계하지 아니한다. 우리의 은사들을 사용하는 것, 곧 시간이나 돈 같은 것을 엄격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않거나, 하나님의 영광에 부합하게 사용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아니하는 기도나 매 한가지로, 하나님을 크게 모독하는 것이며 큰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대로만 해야 한다든지, 우리의 기도가 지혜롭고 거룩하고 하늘의 영광 이외에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다른 이유를 전혀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이견을 말할 수 없다.

오직 우리의 삶이 같은 본질을 가지고, 같은 지혜와 같은 거룩함과 같은 하늘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위해서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가지는 성신을 하나님을 위하여 살려 함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을 주십사고 기도하는 것이 분명하게 지혜롭듯이, 그 하나님의 성령을 우리 모든 행동의 원리로 삼는 것도 분명하게 지혜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렇듯이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만 위하여 살아가는 것도 우리의 의무임에 분명하다.

우리가 기도할 때 전적으로 하나님만 바라보지 않는 한,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것은, 우리가 모든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살지 않거나 하나님이 우리 삶의 모든 방면의 원리나 척도가 되지 않는 한, 하나님을 위하여 산다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의 삶을 영위하는 모습을 볼 때 괴이한 것이 섞여 있음은 이 점을 알지 못하거나 최소한 이 점을 숙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시간이나 장소에서는 그들은 매우 엄격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교회의 예배의식이 끝나면, 교회당에 거의 나가보지 아니한 사람들같이 행동한다.

그들의 삶의 방식, 시간과 돈을 사용하는 방식,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방식, 즐거워하고 탐닉하는 방식, 일하거나 오락을 하는 방식이 세상 사람들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의 무분별한 사람들의 조공거리가 되고 비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경건의 삶을 영위하지 않고 그저 때때로 열리는 기도회에 참석하는 정도의 헌신 밖에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기도는 지혜롭고 고상하고 하늘의 영광을 지니게 하면서도 정작 허무하고 어리석은 삶을 영위하는 것으로 전락해 버릴 때가 있다. 즉 기도는 하면서도 일하는 것이나 노는 것에 시간을 보내고, 돈을 사용하는 어떤 것에서도 기도할 때 지닌 지혜와 하늘의 특성에 부합하지 않는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그 자체로 무모한 것이 없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드려질 수 없고 열납받지도 못할 삶의 방식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 기도를 게을리하거나 기도를 하나님께 무가치한 제물이 되게 드리는 것과 동일하게 불신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