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로 달려가자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와 진리의 깨달음 안에 취해 있다 보면 나의 지식과 영적 수준이 같아졌다는 착각에 빠지기가 쉽다. 착각이 만든 교만함의 연기가 영혼에 가득 차 숨이 막힐 즈음 하나님은 크고 작은 풍랑을 보내 흔들어 깨우신다. 허둥지둥 허덕이며 그저 살려만 달라고 애원할 때 들리는 세미한 음성이 있다. “너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8:25). 그제야 믿음의 현 주소를 찾게 되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붕 떠있던 마음은 제자리로 돌아와 겸손히 안착하게 된다. 세상에서는 지식이 곧 실력으로 인정받기도 한다지만 믿음의 세계는 그리 녹록한 곳이 아니다. 앎이 삶이되기까지 지식은 아무런 힘이 없다.

자신의 믿음의 수준을 확인해보고 싶다면, 환난과 고통이 올 때를 주시해야 한다. 은혜와 성령이 충만할 때가 아니다. 언짢은 일을 당하고, 불쾌한 일을 만나며, 모욕과 핍박과 천대를 받는 그때를 보란 말이 있다. 그때라야 비로소 나의 진면목과 마주하게 된다.

내게도 그런 순간이 종종 있었다. 말씀을 묵상하며 깨달음에 젖어 황홀한 감격에 빠질 때, 무릎 위에 떨어지는 눈물로 주님에 대한 사랑을 약속할 때,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하루 종일 궂은일을 한 날, 제법 잘 참았다 싶어 스스로 칭찬해주려 하는데 누군가 나타나 더 무거운 짐을 얹어줄 때 나타나는 감정과 생각, 입술로 나오는 불평과 원망의 열매들은 나의 현주소를 보게 했다.

나의 부족함이 누군가의 험담의 도마 위에서 잘게 썰어진 것을 목격했을 때, 믿음은 여전히 제자리였다. 밥을 먹다가도, 길을 가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며칠 동안은 불쑥불쑥 올라오는 서운한 생각을 피할 길이 없었다. 이럴 땐 이렇게 해야 옳다는 이론은 온데간데없다. 무릎을 치며 깨달은 진리도, 감동에 젖어 써내려갔던 결심도 시험과 고통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삶으로 살아내지 못했던 지식과 말과 글은 부메랑처럼 돌아와 가슴에 꽂혀 괴로움을 더해준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는 바울 사도의 말씀만이 주저앉은 귓가에 메아리칠 뿐이다.

중세의 신비가 페넬롱은 귀족가문 출신인데 열두 살이 될 때까지 가정에서 고등교육을 받았고 그후 까오르(Cahors) 대학과 플레씨(Plessis) 대학에서 공부했다. 그는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고, 놀라운 재능과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일찍부터 경건서적, 철학서적, 교육서적 등을 집필하며 그 두각을 나타냈고, 대주교의 자리에까지 올라갔다. 그런 그의 인생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잔느 귀용 부인을 만나면서 부터였다. 페넬롱은 그녀와 대화하며, 함께 기도하며 그의 신앙이 지성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헌신하고 위탁하는 생활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단계를 지적으로는 이해하였으나 체험을 얻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지성으로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그 진리를 깨닫게 되었으며, 그의 생활과 성품은 완전히 변화되었다.

누군가 신앙생활의 상담을 요청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지식과 행함의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행하는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방심하다 보면, 우리 인생의 많은 부분을 지식을 획득하는 데 보내게 되며, 따라서 그 지식을 실천에 옮기려면 또 한 번의 인생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획득한 지식의 분량을 토대로 하여 자신의 영적 성숙도를 평가하는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교육은 자아가 죽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지적 성취를 자랑하게 만들어 옛 자아에게 자양분을 공급해 줍니다. 그러므로 만일 당신이 영적 성숙을 향한 큰 걸음을 내딛기 원한다면, 당신의 능력이나 지식을 신뢰해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인들이 범하기 쉬운 가장 심각한 잘못 하나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식을 주시는 분이시며, 우리가 그 지식을 실천하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지식을 얻는 순간 그것을 소유하는 기쁨에 몰두하여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식을 삶에 적용하기 전에는 기뻐해야 할 이유가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방법과 관련된 지식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는 것임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무엇을 읽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행하였는지 답해야 하며, 무엇을 배웠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말해야 한다(준주성범 13). 지식은 삶에 많은 유익을 주지만, 더욱 집중해야 할 것은 행하는 삶이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딤후3:5)는 삶이 아니라 지식으로, 행함이 아니라 말로 자신을 꾸미는 자다. 어떤 풍랑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집,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무너질 염려가 없는 그 집에 거하고 싶다면 그리스도께 달려가자. 주님 같은 반석이 없으니 가장 기쁘게 그분의 품으로 어서 달려가자.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