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似而非)

사이비의 사전적 정의는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듯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아주 다른 것이다. 사이비종교를 논할 때만 사용할 게 아니라 우리 신앙생활 속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나타나는 모양새는 비슷한데 동기가 무엇인가, 그 속이 어떠한가에 따라 주님께서 다르게 평가하실 모습들이 있다. 


1. 어린아이 vs 어른아이

성경에는 어린아이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평가를 한다.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18:3).

이는 긍정적인 말씀이다. 어린아이의 순수함 그리고 부모를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믿음이 없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이다.

이에 반해 자라지 못한 신앙의 어린아이 표현도 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4:14).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5:13).

한 마디로 어른아이다. 세상적으로 경험이 풍부해서 처세술이나 요령은 발달했는데,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이나 절대적 신뢰는 부족하여 영적으로는 미성숙하여 하나님께 근심거리가 되는 신앙인이다. 하나님은 순수하고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어린아이를 원하시지 처세에 능한 어른아이를 원치 않으신다.


2. 진실 vs 사실

진실과 사실은 거의 비슷한 의미이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는 신앙의 전제를 가지고 구분해볼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두 명의 정탐꾼의 보고 내용이다. 열두 명이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것을 보았는데 보고 내용은 전혀 반대였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13:32-33).

열 명의 보고다. 그들은 자기들이 보고 느낀 그대로를 보고했다. 사실을 말한 것이다. 거짓은 없었다. 단지 하나님의 뜻을 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연약함을 보았을 뿐.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14:7-9).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 내용이다. 동일한 것을 보았는데 그들에게는 열 명에게 없는 것이 있었다. 하나님의 언약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다. 눈에 보이는 사건 이면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볼 수 있었기에 그들은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숨은 하나님의 섭리를 보고 못 보고의 차이가 스스로 자신들을 메뚜기로 전락시키든지 거인들을 차려진 밥상으로 보는 시각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어떠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나는 사실을 보는가, 숨은 진실을 보는가. 


3. 자기 부인 vs 척하기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16:24).

제자의 도다. 분명 자기를 부인해야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자기 부인과 ~인 척하는 것이 가끔 혼동될 때가 있다. 어디까지가 정직한 모습이고 어디까지가 자기 부인인 것인가. 배고파도 배부른 척하는 것은 자기 부인인가 거짓된 모습인가. 슬퍼도 안 슬픈 척, 피곤해도 안 피곤한 척, 하고 싶지 않아도 하고 싶은 척. 때로는 자존심 때문에, 때로는 체면 때문에 아닌 척할 때도 많다. 자기 부인과 허세가 헷갈린다면 한 가지만 생각하자. 남을 배려하기 위함인가 자신을 위함인가. 남을 위하여 속내와 다른 모습을 한다면 거짓이 아니라 자기 부인일 것이다. 자신의 체면이나 자존심, 남의 평가 때문에 척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허세 또는 가식이 아닐 수 없다.


4. 맡기는 것 vs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5: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4:6).

기도하는 사람은 염려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기도는 맡기는 것이다. 그런데 맡긴답시고 기도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맡긴다는 것은 결과를 맡긴다는 것이지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에서 아무것도 안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믿음으로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는 말씀은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했다면 그 결과가 내가 원한 대로 되든지 되지 않든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맡기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뜻이 언제 어떤 모양으로 나타날지 우리는 알 수 없기에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기도하면서 결과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그 와중에 두려움이나 낙심이나 절망이나 근심 등이 엄습할 때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내게 가장 좋은 방법으로 역사하실 것을 믿고 부정적인 생각, 어두운 생각을 물리치면서 결과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이 맡기는 것이다. 맡기는 사람은 그에 맞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이 외에도 나타나는 모양새는 비슷한데 중심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것이 많다. 겸손함과 비굴함, 당당함과 오만함 등. 중요한 것은 마음의 상태다. 하나님은 마음의 동기와 순수성을 보신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행한 것은 결과나 모양새가 좋지 못해도 그것은 하나님께 열매로 드려진다. 열매인 것 같으나 아닌 것들을 잘 구별하여 하늘의 상급을 제대로, 그리고 많이 쌓자.

기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