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이 수년째 계속되어 전국의 저수지가 메마르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최악의 경우 내년 봄에 쓸 물이 부족해 논농사를 못 지을 상황이다. 겨울 가뭄이 계속될 경우 수도권의 식수원마저도 위협을 받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성경 열왕기상 17장에도 나오는데, 바알 우상숭배가 만연된 북이스라엘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3년 반 동안 계속되었기 때문이었다.


 


우상과 정욕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시집왔던 이세벨은 시돈 왕 엣 바알의 딸이었다. ‘엣 바알바알의 사람이란 뜻이다. 얼마나 철저하게 바알 신을 섬겼는지 알 수가 있다. 그의 딸 이세벨 또한 광적인 바알 숭배자였다. 북이스라엘의 왕비로 시집올 때 450명의 바알선지자와 400명의 아세라 선지자를 데리고 와, 나라 전체를 바알 우상을 섬기도록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신앙을 말살시키기 위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다 죽이려고 했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이렇게 푸념했다.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왕상19:10).

우상숭배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켰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에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비를 내려주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전에 백성들은 바알 우상을 깨뜨리고 바알 선지자들을 죽이고 돌이키는 회개를 해야 했다. 우리가 버려야 될 우상, 순간순간 십자가에 못 박아야 될 우상은 무엇일까?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3:5,6). 물질, 혈육, 외모, 명예, 사물에 대한 애정, 출세와 성공 등 이러한 것들을 우상으로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심령이 메마르고 평안이 사라져 강퍅해진다.

평소에 잘 하던 기도와 예배생활도, 절제나 회개생활도 소홀해지고 무기력과 권태에 빠지게 된다. 다시 잘 해보려고 해도 회개가 안 되어 쉽지가 않다. 우리의 의지가 정욕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영적 상태가 안 좋게 되면 평소에 자신이 잘 빠지는 세상적인 재미와 쾌락을 찾게 된다. 혈육간이나 친구간의 애정이 강하다면 주님보다는 가족이나 친구와 어울려 시간을 보내려 한다. 멀리하고 경계했던 인기와 명예, 재물과 권세욕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무협지나 판타지소설, 영화, TV드라마, 게임 등으로 시간을 때우려고 한다. 사람은 애정과 욕망이라는 본능 때문에 마귀가 유혹하면 쉽게 넘어지게 되어 있다. 은혜가 떨어지고 심령이 메마르면 자연히 육적인 것으로 채우려고 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그 순간에 하나님보다 자신의 정욕을 더 사랑하고 집착하기 때문에 우상숭배가 되는 것이며 심령은 더 메마르게 되고 강퍅해지는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우상을 버리는 회개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에 모인 백성들을 향해 일갈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여호와와 바알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왕상18:21). 예수님께서도 라오디게아 사자를 향하여 차든지 덥든지 하라고 말씀하셨다. 우상을 깨뜨리는 회개를 하지 않으면 여전히 심령은 메마르고 은혜의 물줄기는 공급되지 않는다. 신앙의 중간은 없다.

18장의 절정은 엘리야 선지자가 450명의 바알선지자와 더불어 갈멜산 위에서 영적 대결을 하는 장면이다. 바알 선지자들이 먼저 제단 주위를 돌고 칼과 창으로 자신들의 몸에 피를 내며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결국 기손 강으로 끌려가 다 죽임을 당했다.

1907119일 평양에서는, 이길함 목사님이 인도하는 연합부흥집회 마지막 밤이 열리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은혜가 되지 않고 답답한 분위기만 계속되었다. 목사님은 무엇 때문에 집회가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졌습니까?” 회중들을 향해 물었다. 그때 한 사람이 일어나 눈물로 고백했다. “하나님께서 우리 집회에 은혜를 내리시지 않는 이유는 바로 저 때문입니다. 저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1년 전 제 친구가 임종하며 제게 부탁했습니다. ‘길 장로. 내가 세상을 뜨거든 내 유산과 내 가족을 보살펴주게나. 아내가 세상을 너무 모르니 자네만 믿고 가겠네.’ 저는 염려 말라고 약조했습니다.” 그의 눈에는 회개의 눈물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자기를 믿었던 친구와 미망인을 배신한 죄를 자백하고 날이 밝는 대로 사취한 돈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의 자백을 들으면서 성도들은 회개하기 시작했다. 재물에 대한 우상이 치워지자, 그때야 비로소 막혔던 하늘이 열려 성령의 폭발적인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종종 정욕적인 유혹이 찾아와 푹 빠지고 넘어지게 된다. 하지만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자


그 달콤한 정욕적인 것들은 가짜인지라 일시적 평안과 위로를 줄 뿐이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14:27) 임해야 메마른 심령이 해갈되고, 성령이 충만해진다.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라

갈멜산 위의 바알 제단은 멀쩡한데 여호와의 제단만 무너져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과 여호와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는데, 주로 바알 우상제단에는 자주 제사도 드리고 예물도 드렸지만, 여호와의 제단은 찾는 이가 없어 무너진 것. 엘리야 선지자는 백성들을 가까이 오라고 하여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다시 수축한다.

정욕에 기울어져 심령이 메말라지면서 기도·예배·절제·회개·봉사생활 등을 겉으로 하기는 하지만, 내심 재미가 없고 점점 대충 형식적으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오랫동안 방치되어 무너진 여호와의 단처럼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려면 무너진 제단을 다시 수축해야 한다. 잃어버린 경건생활이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

엘리야는 수축된 제단위에 제물을 올려놓고 기도했을 때 하늘에서 여호와의 불이 임하였다. 그리고 다시 기도했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메마른 대지는 하늘의 단비로 젖었고 저수지는 다시 물이 채워졌다. 3년 반의 극심한 가뭄이 완전히 해갈된 것이다.

정욕이라는 우상제단을 버리고 무너진 경건생활을 회복하는 회개를 통해, 무너진 하나님의 제단을 수축할 때, 은혜의 단비가 내려 심령은 주의 평안으로 가득찰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애정과 욕망이라는 우상을 섬기느라, 하나님을 멀리했던 행실들을 철저히 회개하고, 다시 한 번 경건과 절제의 허리띠를 졸라매고,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자.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