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많은 인생이 변화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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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어머니의 구슬픈 노래 속에는 한이 맺힌 사연들이 많았다. 늦가을 밭에 나가면 어머니는 콩을 뽑고 나는 지개 위에 누워서 잠이 들곤 했다. 그럴 때면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라는 어머니의 노래 가락이 들려왔다. 밤에는 물레를 감다가도 어머니는 종종 이 노래를 부르셨다. 가난한 살림 속에 너무너무 힘들어 한이 맺히신 것이다. “내 마음에 맺힌 이 한을 누가 풀어 줘. 속이 타서 못 살겠네.” 가끔 그런 말씀을 하시면서 바가지에 찬물을 떠서 드시곤 하셨다.

교회 성도들, 신학생들, 청년들의 진로문제 등을 상담해주면서 그들의 마음에 응어리진 한()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아담 이후에 모든 사람들은 죄성과 정욕과 결점을 가지고 태어난다. 타락하고 부패한 본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생들은 사람과 사람끼리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원한이 쌓이고 그 원한을 풀지 못해 한이 되는 경우가 많다.

결혼생활 10년이 넘었는데도 자식이 없는 한나의 삶도 그러했다. 남편과 자식들이랑 오순도순 식사를 하는 둘째 부인, 브닌나가 자신을 격동시킬 때가 많았다. 너무나 괴로워 홀로 성전에 엎드려 하나님, 나의 한을 좀 풀어주세요.”라며 울고 또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 한 맺힌 기도에 응답으로 아들 사무엘을 주셨다.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은 다섯 번이나 결혼을 하였던 한 많은 여인이었다. 현재 함께 살고 있는 남자도 합법적인 결혼이 아니었다. 버림받은 상처와 따가운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마음이 응어리져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마지못해 사는 인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물가에서 만난 한 청년은 달랐다. 그는 멸시도 따가운 시선도 전혀 보내지 않고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하였다. 그와 대화를 하다 보니 자신의 영혼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지나온 과거도 현재도 다 알고 계시는 그 청년 앞에서는 더 이상 창피할 것도 수치스러울 것도 없었다. 한 서린 마음속으로 빛이 들어왔다. 용기가 났다. 낯선 청년에게 스스럼없이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제가 보니 당신은 예언자이십니다. 근데 왜 예배를 예루살렘에서만 드려야 합니까?” “여인아. 이곳에서나 예루살렘에서나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신다.” 비로소 여인은 그 청년이 메시아임을 알아보았다. 주눅 든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메시아가 오셨다고 동네 사람들에게 힘껏 외쳤다. 헛되고 헛된 것들을 구하며, 한 많은 인생을 살았던 여인이 주님을 만나자 가슴에 기쁨이 가득 찼다. 세상에서 줄 수 없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는 그분이야말로 희망이요 기쁨이었다. 진정한 예배는 장소가 아닌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서, 자신의 영적 상태를 볼 수 있는 낮아짐에서 시작됨을 그녀는 보았다.

베들레헴 광야에서 양을 치는 막둥이 다윗은 부모와 형제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소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물맷돌로 무찌르자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듯 했다. 하지만 서슬 퍼런 사울왕의 질투의 칼날을 피해 사막 이곳저곳을 유리 방황해야 했다. 자신으로 인해 가족들도 한 곳에 정착할 수가 없었다. 죽음의 위기에 순간순간 처하며 사울을 향한 원한의 칼날을 품을 만도 하였다. 그는 날개도 채 펴기 전에 한 많은 도망자의 인생을 살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추위와 배고픔과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마음에 한()을 품지 않았다. 도리어 적막한 사막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다윗은 왕이 되어서도 하루 일곱 번씩 시편을 외우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잊지 않으셨다.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은 찾으신다. 마귀는 원래 천상에서 예배를 담당하는 자였다. 그러나 마음이 높아져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다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14:14). 이후 공중권세 잡은 마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떡하든지 예배드리는 것을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특히 이 시대는 마귀가 총력을 기울여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보다 다른 일로 분주하게 만들고 있다. 노아의 시대처럼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문화와 소비의 신을 섬기며 악의 길로 질주하고 있다. 하나님이 높임 받아야 할 자리에 아이돌, , 명예와 권력, 교세와 건물이 우상이 되어가고 있다. 하나님의 일을 구실삼아 교제, 성전 건축, 각종 이벤트 등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가장 귀중한 예배는 소홀해져가고 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은 찬양 받기 위함이다. 예배를 통하여 영광받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마지막 때는 예배와의 전쟁이다. 지금은 예배에 최고의 가치를 두어야 할 때이다. 이슬람교도들은 하루 5번씩 어떤 장소를 불문하고 어떤 환경에서든지 알라신에게 엎드려 경배를 한다. 그러나 정작 기독교는 예배가 점점 상실되어가고 있다.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가장 바라시는 것은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순간순간 삶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광야연단과정을 거쳐 마음과 행실이 점진적으로 정결해져, 뿌리박혀 있던 죄성이 제거될 때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자로 설 수 있다.

천국은 밤낮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곳이다(4:4).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만을 온전히 예배하는 자로 만드시기 위해 각종 질병과 고통과 죽음과 상처 등 수많은 어려움들을 마귀를 통해 허락하시는 것이다. 수많은 삶의 질고와 고통과 슬픔을 한()으로 쌓기보다는 이를 믿음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믿음의 선진들도 수많은 고통과 눈물들을 믿음으로 승화시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었다.

저는 이러한 가시밭길 같은 운명을 주신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이라고 증거 하면서 늘 감사를 하지요. 저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불행스럽게 생각되기 쉬운 육체적인 악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조건이 없었다면 오늘날 제가 누리는 참된 행복과 감사는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던 영적 스승의 고백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어찌할 수 없는 고통과 애환과 한이 있는가. 한을 품고 스스로를 자멸 할 것인지, 주님을 찾을 것인지는 우리의 몫이다. 불행의 조건을 감사로 바꾸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더 풍성히 임한다.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참 믿음의 소유자이다.

한이 가득한 마음을 품고 악한 독으로 표출하거나 쾌락으로 풀 것인지, 아니면 감사로 승화시킬 것인지 생각해 보라. 분명 둘 중 하나이다. 짜증과 원망, 악한 것들로 나의 한이 표출되고 있는지. 선한 것으로 풀어지고 회복되는지 살펴봐야 한다. 진정한 신앙인은 가시밭길에서도 감사로 고난을 이겨낸다.

탈북민 출신 강철호 목사(새터교회)북한에 있을 때 김일성·김정일 사진을 닦다가 떨어뜨린 아이가 있었는데, 그의 전 가족은 사상투쟁회에 불려 나왔고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고 말았다우리가 북한 동포들을 위해 울지 않고 어떻게 통일을 달라고 기도할 수 있겠는가라고 역설했다. 한이 서린 북한의 동포들은 지금도 그 한의 보따리를 안고 주님을 향하여 목숨처럼 기도 하고 있다. 함께 그 한의 보따리를 풀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이웃의 아픈 이들, 지친 이들을 위해, 그들과 함께 한나의 기도를 올려야 하지 않을까.

수많은 아픔과 쓰라림과 눈물 흘리는 날이 끊임없이 우리 앞에 주어질지라도 이 길을 걷는 것은 결코 허무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계획 속에 살아간다면 말이다. 한 많은 인생이 변하여 정결한 꽃으로 피어나는 그날, 우리 모두 환한 미소를 지으리라.

박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