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지속적으로, 꾸준히, 묵묵히

한 통계에 의하면 요즘 한국의 1318세대는 단 1초의 기다림도 지겨워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한다고 한다. 현대사회는 음식은 물론 사람들과의 의사소통도 온라인을 통한 인스턴트 대화로 변하고 있다. 대중문화는 깊이보다 인스턴트에 열광한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지속적인 훈련을 무시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찰나적이거나 즉각적인 성화, 즉각적인 능력, 즉각적인 치유를 제시하는 사람들의 가르침에 빠져들고 있는 시대다. 겸손한 복종이라든지, 인내하며 기다린다든지, 꾸준히 참고 견딘다든지 하는 것에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인내할 줄 모르는 인스턴트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끈질긴 기도보다는 즉각적인 응답에 더 환호한다. 신앙의 깊이보다는 즉흥적인 감흥과 감격에 더 열광한다. 고유의 맛을 잃고 진리가 흐려져도 좀처럼 아파하지 않는다. 즉각적인 성과나 성공이 주어지면 그만이다. 영혼은 파리해져도 육적인 것만 당장 채워지면 만족이다. 누룩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말씀보다는 가공된 말씀에 더 매력을 느낀다. 겸손과 인내로 먼 길을 돌아가기보다는 쉽고 편한 길을 택한다. 무미건조하고 거친 광야보다 화려하고 편한 세상길에 마음이 더 기운다. 당장 결과를 보고 싶은 조바심에 마음 조절기능에는 무관심하다. 인내로 영혼을 단련하기보다 단 한 순간에 기적적으로 성취하는 게 더 매력적이다.

예수님이 가신 길은 지속적인 순종의 길이었다. 그분의 전 생애가 그 길에 바쳐졌다. 자신의 사명을 극적이고 초자연적인 단 한 순간에 성취하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단호하게 추구하셨다. 거룩한 삶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를 통한 길이다. 그리스도를 따르고 자기를 부인하는 일은 매일 고통스럽게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삶의 실재로서 한 순간에 성취될 수 없다. 그 일은 오직,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요구하시고 그 요구를 감당할 수 있도록 구비시키시는 모든 것에 대해 일생동안 새롭게 헌신하고 순종의 반응을 보임으로써만 가능하다.

하나님의 종 모세는 120세에 모압 땅에서 죽을 때까지 세 번의 큰 삶을 살았다. 애굽 왕 바로의 궁전에서 40세까지의 한 생. 미디안 광야에서 처가의 더부살이를 하던 40년의 한 생. 그리고 나머지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킨 건국의 아버지, 신앙의 아버지로 40년 동안 마지막 한 생을 살았다. 120년을 하루같이 견디고 참으며 충성하였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충성, 이스라엘 지도자로서의 사명을 다함으로써, 건국과 신앙 창업을 완성하는 지도자가 되었다. 어떠한 처지에 던져지건 하나님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고 견뎠다. 어떤 환경이었거나 그 시간이 얼마나 길었거나 모세는 견디고 기다렸다. 조급한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원망과 좌절에 지쳐 쓰러져도 모세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단 한 번도 저버린 일이 없었다.

나의 삶을 보면, 응답이 늦어지고 조바심이 일어나면 삶이 흔들리고 기도가 흔들린다. 당장 손에 잡히는 인스턴트가 더 매력 있게 다가와 내 고집만을 강하게 내세우기도 했다. 단번에 이루고 싶은 욕망으로 인해 지극히 작은 일들은 하찮게 여기며, 불평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마음고생을 하며 조심스럽게 가는 게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주기철 목사님은 이렇게 기도하셨다. “장기간의 고난을 이기게 하옵소서. 단번에 겪는 고난은 이기기가 쉬우나 오래 끄는 장기간의 고난은 참기가 힘이 듭니다. 칼로 베고 불로 지지는 고문이라도 한두 번에 죽어진다면 그래도 이길 수가 있으나 한 달, 두 달, 1, 10년 계속되는 고난은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그것도 반드시 겪어야 할 고난이라면 겪게 되겠지만, 옆에서 한걸음만 양보하면 이 무서운 고통을 면하게 해주고 상을 베풀리라 하는 대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절개를 꺾었습니다. 말 한 마디만 타협하면 살려준다는데, 그때까지 용기를 잃지 않고 견디던 믿음의 용사도 넘어지게 마련입니다. 하물며 저처럼 연약한 약졸이 어떻게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어 배기겠습니까. 다만 주님께 의지할 뿐입니다.”

고난과 고통의 시간을 단축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그것도 주님 앞에서는 말할 수 없는 죄악이라고 말씀하셨던 주기철 목사님의 신앙이 인스턴트로 살아가는 우리를 한없이 부끄럽게 한다.

주님의 뒤를 철저히 따랐던 믿음의 선진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의 대가들이었다. 그들은 단순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생활을 비범하게 살아갔다. 찰나의 성공보다 손해를 보더라도, 큰 고통과 희생을 치르더라도 누룩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진리를 증거하는 데 앞장섰다. 극한 시련 가운데 처할지라도 결코 시험을 단숨에 뛰어넘으려고 하지 않았다. 인내의 말씀을 지키며 쉼 없이 달려가 마침내 승리의 면류관을 쓴 믿음의 용사들이었다.

즉각적으로 쉽게 무언가를 얻으려는 것은 우리의 삶속에서 주어지는 십자가를 외면하는 것이다. 끈기 있게 예수님을 따르려면 매일매일 십자가를 삶 가운데 짊어져야 한다. 지쳤다고, 지루하다고, 현재 하는 일들이 작고 초라해 보인다고 멈추어서는 안 된다. 끝까지 끈기 있게 주님이 가신 길을 따르기 위해 지속적인 겸손, 지속적인 온유, 지속적인 충성, 지속적인 인내가 필요하다.

단번에 해결하고 싶은 조급한 욕심은 우리 안에 불평불만을 가져와 영적인 균형을 잃게 한다. 무미건조하고 척박한 광야 길을 걸으며 자아중심적인 급욕을 철저히 깨트려야만 우리 삶 가운데 인내의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 있다. 어떤 처지에 던져질지라도 하나님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고 인내의 열매를 지속적으로 맺으며 견뎌야 한다. 일시적인 감정과 감흥이 아닌 일생동안 새롭게 헌신하며 순종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

영혼의 힘은 고통을 인내하며 고통받는 데서 성장하고 강해진다. 작고 평범한 일들처럼 보이는 일들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값진 삶이다. 지극히 단순한 일들을 끈기 있게 묵묵히 견디며 감당하는 이들이 복되다.

나는 지금 있는 것을 탐하는 것보다 장래 것을 기다림이 가장 좋은 일인 줄 알겠습니다.” 기독도의 교훈은 인스턴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세상적인 것이나 현실적인 것을 조급하게 탐하기보다 천국적인 것을 기다리자. 오래 참는 인내의 사람이 되어 주님과 깊은 교제로 나아가자. 금방 탔다가 시들어가는 신앙이 아닌, 깊고 깊은 신앙인이 되자. 오래, 지속적으로, 꾸준히, 묵묵히 주님만을 영원히 사랑하자!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