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박을 풀고

카프카라는 작가의 1915년 작품 변신은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로 변하면서 겪는 이야기이다. 출근을 해야 하는 아침에 벌레로 변한 자신을 발견한다. 그레고르를 돌봐주던 가족들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모두 일을 하게 되고, 처음에 자신이 벌레가 돼서 일을 못하게 된 것을 걱정하던 그레고르도 벌레의 생활에 익숙해져 잠을 자거나 엎드려서 소일한다. 가족들은 돈 때문에 집에 하숙을 치기 시작하고, 하숙인들의 물건과 부엌에서 버려지는 쓰레기들이 그레고르의 방에 쌓인다. 어느 날 그레고르는 누이의 바이올린 연주에 감동해 밖으로 나오게 된다. 그런데 그를 본 하숙인들이 계약을 파기하고 밀린 하숙비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가족들은 그날 밤 그레고르를 쫓아내기로 결정한다. 다음날 청소하는 할머니가 그레고르의 시체를 발견하고 가족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사 갈 집을 구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변신은 단지 소설이다. 하지만 벌레처럼 제 몸 하나 자유롭게 거느리지 못하는 인간의 결박된 삶을 말해주고 있다. 그레고르가 죽자 가족들은 감사의 성호를 긋는다. 우리가 내일 일어났을 때 벌레로 변신이 되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으악! 우리는 그날로 결박당한 아무 힘없는 몸이다. 끝이다. 더 이상의 희망이 없어진다.

하지만 인류는 끊어지지 않는 강력한 결박에 오래 동안 묶여 지내왔다. 온 세상 사람들은 그 결박에 묶여 자신도 모르게 멸망의 길로 달려가고 있다. 매일 매일.

성경에는 사도바울이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영들의 결박이라 했고, 구약에서는 이사야 선지자는(58:6) 흉악한 결박을 풀어라 한다. 구약의 왕들을 보면 왕좌를 지키기 위해 자녀나 부모나 아랑곳 하지 않고 죽이는 예를 볼 수 있다. , 음욕, 물욕, 명예와 권세, 결박에 묶인 왕들은 다 망했다.

 


모든 것을 갖춘 화려한 도시에 사는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안락하다. 신앙생활도 안락하고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돈만 있다면. 그러나 더 깊숙이 들어가면 온갖 음란과 물욕으로 묶여 이것이 오히려 결박이 되어, 성도들을 가리고 목회자들의 눈을 가리고 정욕이 충만한 삶으로 살아가고 있다. 한국 교회가 빛을 발하지 못하는 까닭에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결박에 묶여 있고 성도들은 목회자들의 결박에 묶여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돈이라는 벌레에 갇혀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살다가 결국 버림받아 죽어버릴 삶을 택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애정이라는 벌레에, 명예라는 벌레에, 외모라는 벌레에. 자신을 스스로 묶어두고 결박시켜 버린다. 당장 죽어도 좋으니 돈만 있으면, 명예만 있으면, 애정만 있으면 좋을 세상에 살고 있다.

성도들도, 목회자들도 그런 세상에 살고 있으니 불안하고 두렵고, 하나님 안에 묶여 사는 것이 두렵고 불안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묶여 좁고 협착한 길을 가야 하니 누릴 것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등불 역할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오히려 어둠의 자리를 스스로 찾아가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죄악의 사슬에 묶여 살아가는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독생자 예수님이 죄악 세상에 오신 이유가 바로 이 결박을 풀기 위해서 오시지 않았는가! 우리를 묶어버린 결박들, 벌레처럼 우리 몸을 점령해 버린 것들을 벗어버리자. 맑고 거룩한 영성의 옷을 입으러 다시 길을 떠나자. 지금은 편하고 친근한 것들로부터 떠나고, 변신할 때이다.

이정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