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을 빕니다

bbfdbcf66.jpg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파송하시면서 합당한 자를 찾아 그 집에 머물면서 평안을 빌라.’고 말씀하셨다. 그 평안이 그 집에 합당하면 거기에 임할 것이요, 아니면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평화의 기도요, 중보기도의 원칙이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이미 유대인들은 수천 년 동안 이 평안을 비는 인사를 하고 있다. 이것을 샬롬이라고 한다.

샬롬의 의미는 여러 가지다. 먼저 샬롬은 평화라는 의미다. 이것은 외부적인 측면을 말하는 것이다. 내 주변 사람들, 가정과 나라와 사회가 언제나 평화롭기를 원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이 평화를 위하여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권면하였다. 물론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외부적인 전쟁, 소란, 소용돌이 같은 요인으로 인하여 경건 생활이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지만, 하늘나라에서 언제나 이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이 땅에서도 그러한 평화의 나라가 임하기를 원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그러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는 것이다.

샬롬의 다른 의미가 정의와 질서를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위의 의미가 더 이해될 것이다. 나 자신이 살고 있는 곳, 가정과 나라와 사회가 불의로 충만한 곳이 아니라 정의가 충만한 곳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가 충만하지 않으면 평화가 없는 것이다. 선지자는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려야 한다고 선포한 바 있다.

또한 샬롬은 질서를 의미한다. 오늘날 사회의 모든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가정에서는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간의 질서가 무너져가고 있고, 사회적으로는 나이가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들 간의 질서, 상하의 질서, 수직과 수평의 질서가 무너졌다. 나라가 질서가 무너져 내렸다면 그곳은 무법천지가 될 것이요, 거기에는 결코 평화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샬롬이 외부적인 측면에서 평화와 정의와 질서를 말하고 있다면 내면적인 측면으로는 마음의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비록 외부적인 환경과 요인이 평화롭지 못하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나의 마음에 계시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으로 붙잡아 주심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의 내면적인 평화, 평강을 이루는 것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14:27)는 말씀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내적 평화, 평강, 평안을 말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샬롬의 의미는 모든 부족함이 채워진 온전한 조화의 상태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고 모든 인간관계 가운데 궁극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충만하고도 온전한 조화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의미를 우리 몸에 적용한다면 몸에는 여러 가지 지체가 있는데, 이 모든 지체가 다 부족함이 없어서 온전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몸의 샬롬은 건강인 것이다. 어느 한 지체라도 부족함이 있고, 모든 지체 간에 온전한 조화가 없다면 그것은 병이 난 상태이고 샬롬이 아닌 것이다.

샬롬을 가정에 적용한다면 가정의 모든 지체들이 다 부족함이 없이 온전한 관계를 이루어야한다. 부부간에, 부모자녀 사이에, 형제간에 갈등이 있다면 그것은 온전한 조화의 상태, 즉 샬롬이 아닌 것이다. 모든 지체들이 다 부족함 없이 온전한 조화가 이루어져야 샬롬, 거기에 평화와 질서와 공의와 내적인 평안이 있는 것이다. 샬롬을 어떤 공동체나 단체, 심지어 나라에 적용해도 마찬가지 원리다. 이 세상 어디에 샬롬이 있는가? 외부적인 평화도 없고, 질서와 공의도 없다. 어디에 내면적인 평안을 누리는 자가 있는가? 이 샬롬은 외부적으로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져야만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주님이 그 심령 안에 일치 융합되었을 때라야 내면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어느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던 밤, 누군가가 프랜시스의 방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한 사람이 비에 온몸이 젖어 추위에 떨면서 먹을 것을 요구하였다. 프랜시스는 그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와 그의 모습을 살피고는 깜짝 놀랐다. 초라한 거지 행색의 그는 얼굴이 일그러지고 코가 문드러진 문둥병자였기 때문이다. 그 문둥병자는 너무 배가 고프다고 먹을 것을 요구하였다. 고름이 흐르고 냄새가 나는 문둥병자와 같은 식탁에 식사를 하는 것은 프랜시스에게는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지만, 용기를 내어 음식을 대접하고 옷을 갈아 입힌 후에 잠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잠시 후에 그 문둥병자는 너무나 추워 같은 침대에서 함께 잘 수가 없겠냐고 물어왔다. 문둥병자에게서 나오는 피고름과 진물냄새 때문에 고통스러웠지만 프랜시스는 그를 끌어안고 함께 잤다. 새벽기도시간이 되어 프랜시스는 잠자리에서 일어났는데, 함께 잤던 그 거지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같이 잔 흔적도 없고 오히려 방안은 깨끗하고 빛나고 냄새마저 향기로웠다. 그 순간 프랜시스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비천한 자신에게 주님께서 찾아와 주셨음을. 그때 프랜시스는 주님께 감사하며 기도하였다. “! 주여, 나를 당신의 평화로 도구로 써 주소서.” 프랜시스의 마음에는 주님이 그토록 원하셨던 샬롬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진정한 평화의 사도가 되었다.

이안드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