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참된 소망

그 푸른 하늘에 당신을 향해 쓰고 싶은 말들이 오늘은 단풍잎으로 타버립니다. 밤새 산을 넘은 바람이 손짓을 하면 나도 잘 익은 과일로 떨어지고 싶습니다. 당신 손 안에” (가을편지, 이해인).

가을은 기다렸던 열매의 결과를 맛보고,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깊이 돌아보는 성찰의 계절이다. 깊은 가을로 접어든 순간, 꽃피는 계절이 지나가고 강렬한 햇빛에 진액이 증발하고 낙엽이 땅으로 떨어져 내려앉는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나의 손등을 스쳐가면서 무엇을 떨어뜨리고 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모든 소유를 잃어버렸던 욥은 절대 고독 속에서 애끓는 기도를 드렸다. 환경을 바꾸어 달라는 것도, 고난을 당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고난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 위해 깊은 고독 속에서 하나님을 찾아 나선 것이었다. 눈에 보이는 환경이 변하여 나를 기쁘게 해달라고 하는 얄팍한 기도가 아닌 진실한 하나님을 알고 싶은 사랑이 전부였다.

나병이 걸리면 살이 찢기고 피가 나도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가 없다고 한다. 상처가 날 때 고통을 느껴야 살아있다는 증거다. 하나님 앞에서 아프지 않으면 문제가 있는 삶이다. 계절이 하나님 앞에서 때마다 숨을 쉬듯 우리도 살아서 숨 쉬고 있는지.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리면서 주님 앞에서 욥처럼 울부짖고 있는지.

나에게 수없이 되묻고 싶은 요즘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진정한 성도로서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며 반응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고자 마음을 찢으며 회개의 눈물을 주님 손에 떨어뜨리고 있는가.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은혜는 온데 간데 없고 입맛에 맞는 정욕을 즐기느라 영적 무감각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죽은 자는 통증을 느낄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심도 이 때문이다. 영적 무감각에 빠져 있는 우리 영혼을 깨우시기 위함이다. 또한 더 크고 소중한 하늘의 선물을 주시기 위해 잠시잠깐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신다. 우리가 죄인임을 진심으로 인식하고 머리를 조아릴 때, 고난은 꿀같이 달콤하게 변한다. 주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모든 문제의 마침표를 찍게 된다. 고난을 주시는 목적은 예수님의 얼굴을 보라는 것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것이요.” 고난으로 단련된 영혼만이 하나님의 얼굴을 밝히 보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자리에 서는 그 순간을 위해서 지금까지 역사를 이루셨고, 또 이루어 가신다.

광야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곳이기에 신앙인의 전제조건은 믿음이다. 소망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 믿음이 필수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통해 우리는 익은 열매라는 사랑의 목표에 다다르게 된다. 지금 보이는 현실 때문에 울거나 아파하지 말자. 주님의 사랑은 낮은 곳에 머문다. 많은 일을 하고 많은 지식을 가졌고 높은 권세의 자리에 앉았다고 해서 그곳에 주님의 사랑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할 때, 일이 잘 진행되고 있을 때, 사람들이 나를 높일 때, 그때는 스스로 내려와야 할 때이다. 내가 내려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끌어내리신다. 그것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시다.

떨어진 낙엽은 밑거름이 되어 새로운 생명체를 꽃피운다. 한 알의 밀알의 이치는 자연에서도 수없이 우리를 일깨운다. 모든 것을 내려 놓을 때,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날 수 있다. 차갑고 세찬 바람을 숱하게 맞으면서 마음과 행실이 정결해져야만 마침내 잘 익은 열매가 되어 주님 손안에 든 보석이 될 수 있다.

보다 더 소중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잘 익은 열매로 만드시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다. 잘 익은 과일로 주님 손에 드는 그날을 꿈꾸며 버릴 것은 버리고, 고칠 것은 고치면서 열심히 전진하자. 주님의  햇살이 마음 안에 온전히 비춰지는 그날까지 미친 듯이 울자. 맑은 눈물을 주님께 떨어뜨리자. 잘 익은 열매로 주님 손에 들려지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낮은 곳에 임하시는 주님을 만나러 오늘도 나아간다. 주님 손에 온전히 붙들린 사람이 되기 위해.

허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