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해방되는 그날을 위하여


지난 815일은 일제 강점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되찾은 광복 70주년이었다. 자유를 얻기 위해 고귀한 피를 흘리던 수많은 이들의 숨은 희생을 다시 기억하며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내야 했던 자유의 의미를 되새겨 볼 귀한 순간이었다.


자유를 잃어버리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자유를 주시면서, 선악과는 절대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그것은 억압이 아니라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였는데, 아담과 하와는 금단의 열매를 따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치명적인 유혹을 받고 말았다.

하나님은 인간과의 순수한 사랑의 교제를 원하셨다. 그 어떤 강제나 억압이 아닌 자발적인 사랑과 순종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원하셨다. 그래서 자유의지라는 선물을 주셨던 것이다. 이 자유는 의지적으로 내가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아담에게 주신 자유로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라고 하셨다(2:15). 그것은 자유를 위협하는 마귀로부터 지켜내야 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담은 그 자유를 지키지 못했다. 창조주와 같은 자유 즉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정녕 죽으리라는 한계와 규칙까지 잊게 만들었고, 순진했던 그들은 마귀에게 속아 선악과를 따 먹고 말았다. 그 결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지상낙원이었던 안락한 둥지에서 쫓겨나 유리방황하는 비참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타락한 아담과 하와의 육체와 심령 속에 마귀의 성질인 죄성의 뿌리가 박히게 되었고, 기회가 주어지면 죄를 범하는 마귀와 죄의 종이 되고 말았다(8:34, 44).  


방종한 자유의 대가

하나님과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살고자 했던 방종의 결과는 오늘날까지 인간의 비극으로 이어지고 있다. 태어나는 모든 이들마다 죄의 고리에 묶여 자유를 갈망하며 이 땅을 밟지만 그들의 삶은 억압과 불의뿐이다. 그러다 보니 자유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악하고 마귀적인 것들이 부조리하고 탐욕스럽게, 그럴듯함을 가장하여 고개를 쳐들고 활개치고 있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예술이란 명분으로 온갖 음란하고 폭력적인 소설, 영상, 게임 노래가 만들어지고 있다. 인권의 이름으로 동성애와 동성결혼를 합법화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은 내가 마음껏 누리고자 하는 애정과 욕망을 자유로 착각하고 있다. 하나님과 원수 되는 거짓의 영에 속아 하나님을 대적하며 점점 더 지옥으로 향하는 일들을 자행하고 있는 데 말이다. 내 마음대로라는 자유가 곧 마귀에게 속박 당하는 것임을 어리석게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마귀는 우리에게 네 맘껏 자유를 누리며 살라고 하지만, 실상 인간은 죄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현대인은 절제하지 못하는 자신의 본능(정욕)으로 인해, 탐욕과 약육강식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지나친 경쟁심에 늘 불안하고 두렵다. 인간은 아무리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좇는 불행한 존재들로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다. 타락한 인류의 조상 아담에게서 유전된 DNA이다.

진정한 참 자유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죄로부터 해방 될 수 있는 십자가의 은총으로만 가능하고 사랑의 하나님은 그걸 우리에게 열어 주셨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졌다. 예수님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가, 그분이 주신 말씀이라는 한계와 규칙을 따라 사는 것이다.


진리로 자유하자

우리가 진정 주님 안에 있는 자유를 누리며 살고 싶다면 어떤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절제하고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절제하고 극복해야 하는 것이 바로 애정과 욕망즉 정욕이다(5:24).

주님 안에서만 하나님의 생명을 얻어 죄로부터 해방되는 자유가 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8:32).

안타깝게도 현대교회는 이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다 얻었다고 착각하고 있다. 나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내일 당장 죽어도 천국 간다고 믿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여전히 기회만 주어지면 범죄하고 있고, 내면은 여전히 굶주려 허기진 욕망을 채우고자 세상이 주는 행복을 찾고 있다.

죄로부터 해방 받는 진리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모형적으로 잘 나타내주셨다. 애굽에서 바로의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유월절 예식을 통해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이방민족들과 싸워서 이기고, 요단강 건너 길갈에서 할례를 받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이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자마자 가나안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광야에서 40년간 이방민족들과 싸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영적인 훈련인 연단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출애굽 즉 구원을 받자마자 하나님의 생명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다고 하셨다(7:13,14).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좁은 신앙의 문을 열고 들어가, ‘좁고 협착한 길즉 광야 연단의 과정을 거치면서, 죄성과 정욕에 지배받아 나타나는 마음과 행실이 정결해져야만, 비로소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비록 예수님을 믿고 구원은 받았지만 아직 하나님의 생명을 얻지 못했다. 여전히 우리는 광야에 있는 것이다. 이 광야는 하나님의 생명을 얻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생명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여기서는 정과 욕심을 순간순간 절제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영적인 훈련을 부지런히 받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 허덕이며 타락한 문화에 중독된 노예가 되기 쉽다.

조국의 자유를 위해 피 흘려 싸웠던 선조들을 기리는 광복 70주년을 보내면서, 주님 안에 있는 죄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위해 일생을 불태웠던 믿음의 선진들을 생각해본다.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해야만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참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상기하자. 거룩한 성화의 길로 굳게 결단하며 나아가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8:32).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죄의 사슬에 매인 우리 영혼이 속히 해방되는 그날을 꿈꾸며 더 정진하고 단련하자.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