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와 반복을 뛰어 넘는 용기


최근 주일학교 아이들 여러 명이 원치 않게 교회를 떠나는 일이 발생했다. 몇 개월에 걸쳐 운동장 전도로 교회에 와서 정착하는데 1년이란 시간이 걸린 아이들이었다. 어머니도, 친구들도 땅콩 넝쿨 마냥 교회로 나오게 되었고, 예배는 물론 순종도 잘해서 나에게는 신나고 즐거움을 주는 대상들이었다. 하나님께서 주일학교를 부흥시키시려나 은근 기대도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전혀 예기치 않은 일이었기에, 아이들의 엄마와 통화도 하고 편지도 보내고 방문도 하였지만 이미 굳어버린 마음을 돌이키기는 쉽지 않았다. 잠깐 동안은 다른 사람들에게 화살을 돌리기도 하고, 하나님께 원망도 쏟아 부었다. 유독 내가 가는 길은 더 힘겹고 고달프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내 탓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일함에 깊이 빠져 있던 나를 깨우시기 위한 사랑의 채찍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혹여나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그 엄마의 마음에 기적이 임하길 바라면서 금식기도를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기도 중 아주 잘 닦여진 10차선 도로를 보여주시면서 네 앞길이 이런 평탄대로만 있기를 원하느냐? 그러면 네 영혼은 멸망로에 빠지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마음가운데 들려주실 뿐이었다. 다시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가득했지만,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상실감과 수치심이 나를 짓눌렀다. 그리고 내 깊은 내면에는 영혼에 대한 아픔과 사랑보다도,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 꼬깃꼬깃 구겨진 명예욕으로 인해 더 아파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돈 보스코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그러면서 내 안에 은혜의 기운이 넘쳐났다. 위대한 청소년의 아버지였던 돈 보스코의 일생도 수많은 위기와 실패와 반목과 영혼에 대한 부담감이 끊임없이 따라다녔다는 것을 보게 하셨다. 그분 역시 나와 똑같은 인간의 성정을 가진, 나약하고 아파하고 번뇌하고 상심하고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발견케 하셨다. 하나님은 때론 아픔과 쓰라림과 깊은 절망 가운데 우리를 고아처럼 잠시 내팽개쳐 두신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이는 내 소유로 여겨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 한 분만을 거짓 없이 사랑하는 순수한 일꾼으로, 숱한 반목과 수치와 실패를 뛰어넘어 진정한 믿음의 용사로 키워나가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교만의 탑이 점점 높아져 가고, 악습에 다시 매몰되어가는 나를 주님은 오랫동안 가만히 지켜보고 계시더니 한껏 들어 올리셨다가 바닥으로 내려놓으신 것이다. 그것이 은혜였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돈 보스코(1815-1888)는 두 살 때 아버지를 잃고 궁핍한 환경 속에서 생활했다. 쾌활했고 공부하기를 좋아했지만 배다른 형제 안토니오가 강제로 농사일을 시키는 바람에 학업을 계속하지는 못했다. 결국 집을 떠나 이웃집 머슴살이까지 해야만 했다. 그러나 척박한 환경에서도 뒤로 물러서거나 굴하지 않았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사제가 된 그는 토리노에서 죄수들과 청소년 노동자, 고아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소명을 실천하였다. 그의 예배당을 찾는 청소년들의 숫자는 순식간에 한 명에서 열 명으로, 열 명에서 백 명으로 불어났다. 하지만 이를 냉담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은 불법 예배당이라 몰아세웠다. 이로 인해 그는 청소년들이 거처할 장소를 찾아서 이곳저곳 수차례를 옮겨 다녀야 했고, 벼랑 끝으로 몰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부모들의 오해와 중상모략으로 떠나가는 아이들도 많았다. 때로는 독불장군, 미치광이로 여겨지기도 했다.

어느 일요일, 갑작스레 오라토리오를 폐쇄하라는 명령을 받고 기마병들이 찾아왔다. 이때 감옥에서 갓 출소한 브루노가 기마병 중 한 사람을 폭행하고 칼로 위협해 경찰에 연행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반대세력은 이 사건으로 인해 돈 보스코를 더 강하게 압박을 하였다. 이에 그는 왕을 직접 찾아가 허락을 가까스로 받아냈지만, 이 일로 후작 클레멘티는 더 큰 앙심을 품게 되었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돈 보스코를 무너트리고자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청소년의 집을 나간 엔리코가 돈을 빼앗다가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다. “전 평생 단 한 번도 누구를 좋아해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신부님은 좋아요.”라는 말을 남기며 사형장으로 사라졌다. 제자를 잃은 슬픔으로 비탄에 젖어있는데 브루노가 그에게 폭언을 퍼부었다. “제가 도망치라고 소리쳤는데 칼을 들고 꼼짝도 않더군요. 신부님의 설교를 떠올리다가 그런 거예요. 신부님이 엔리코를 죽인 거예요.”

돈보스꼬는 난 모든 것을 잃었다.”라면서 애잔한 눈빛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주님의 도움을 구하였다. “아이들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돕겠다고 한 것이 저의 오만이었다면 지금 당장 모든 것을 포기하겠습니다.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면 길을 보여 주십시오.”

그의 눈물이 나의 마음에도 떨어지는 듯 했다. 주님의 일을 하면서 아픔과 쓰라림을 겪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다. 배신감, 허탈, 쓰라림, 반목과 위협, 실패와 수치를 수없이 거쳐야 한다. 고통이 없이는, 마음의 닦달질 없이는 그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기적은 고통자체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믿음과 용기이다.

한편 이탈리아 전반에 반성직주의적인 분위기가 확산되어 돈 보스코는 폭동들로부터 몽둥이찜질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굴복하지 않고 꿋꿋한 자세로 끝까지 밀고 나갔다. 토리노 전역에 콜레라가 전염되었을 때도 전염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살펴 주는 것은 돈 보스코의 청소년들뿐이었다. 그들의 간호를 받던 클레멘티 후작은 그제야 돈 보스코를 이해하게 되고 얼마나 값어치 있는 일이었는지 알게 된다.

점차적으로 돈 보스코의 업적과 명성이 퍼져나가자 수많은 이들이 장미꽃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아주 기쁜 마음으로 그를 처음에는 따랐다. 하지만 돈 보스코의 가련한 발을 찔러대는 가시들은 보지는 못했다. 이내 가시 위를 걸어야 한다는 것과 그 가시들을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그들은 큰 소리로 불평을 하였다. 그때 돈 보스코는 말했다. “좋은 시간을 보내려고 나온 것이라면 차라리 되돌아가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날 따르시오.” 그리고 그는 말한다. “너무 힘들어서 하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결코 아무 걱정도, 아무 고생도 없는 장미가 뿌려진 평탄한 길이 아니었다. 일생 고난의 신발을 신고 날카로운 가시 위를 걸어가야만 했다. 최후의 순간 이런 말을 남겼다.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고 아무에게도 악을 행하지 마십시오! 나의 아이들에게 천국에서 기다리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가시에 찔려 피가 나더라도 포기치 말고 끈기 있게 전진하는 용기. 그리스도의 강한 용사로 우뚝 서는 그날까지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는 용기. 가시밭길을 걷는데, 실패가 따르고 반목이 덮쳐도 그대로 나아가는 용기, 그 용기로 주님을 사랑하는 삶. 그 삶을 결단한다.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