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피조물


세계적인 문호 빅토르 위고는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생존 경쟁과 투쟁이 연속적인 삶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산다는 것은 싸우는 것이요 우리는 싸우지 않고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라고 말하며 인생의 고달픔을 정의했다. 인간의 삶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싸움의 연속이다. 자연과의 싸움, 세상과의 싸움, 사람과의 싸움, 환경과의 싸움, 자기 자신과의 싸움 등 수많은 싸움이 있다. 그 중 가장 큰 싸움이 영적인 싸움이고 그 싸움은 가장 가치가 있고 또 어렵다. 또 이 영적싸움은 헌것과 새것의 싸움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전도서에는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하셨지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이미 새 일을 행하시겠다고 하셨는데, 바로 예수님을 통하여 새로운 것들을 만드시겠다는 것이다. 이 후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셔서 새것을 만드신다. 마귀는 우리를 옛것에 머물게 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새것으로 만드시려고 하신다.

구약시대에는 아무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예수님은 새로운 길을 여셨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10:20).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몸을 찢으셔서 누구나 지성소로 들어 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여셨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새것이 되었다고 선포하셨다. 이제 모든 이들은 새로운 피조물에 합당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이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와 옛것에 그대로 머물고자 하는 싸움이 우리에게 숙제로 남겨졌다.

새로운 피조물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이끌려 살아야 한다. 고린도후서 5:17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말씀 앞 14절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라고 하셨다. 여기서 강권하다라는 말은 이끌다. 지배하다라는 의미다. 왜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에 이끌리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그리스도의 사랑이 십자가를 통하여 나타났다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자기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죄인인 나를 살리신 그리스도의 사랑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새로운 피조물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이끌림을 받아 늘 마음속에 이 사랑이 있어야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사랑을 따라 살기 원하는 우리에게 마귀는 계속 미움과 원망과 불평을 가져다준다. 사랑과 미움의 싸움, 그 가운데 어느 쪽을 따라 살 것인가 하는 영적 싸움은 강렬하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이끌려 살면 마음이 변화되어 새사람이 된다고 에베소서 424절에 말씀하고 계신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동기가 되어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피조물들은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더 이상 그들 자신이 아니라 그들을 살리려고 죽으신 주님을 위해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고후5:15). 주님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나를 주님께 온전히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온전히 맡기는 것이다. 나를 온전히 맡기지 않으면 주님을 위하여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유명한 영성학자 헨리 나우웬이 서커스 공연에 가서 멋있게 공중제비를 하면서 반대편으로 안착하는 공연을 보게 되었다. 그는 공연이 다 끝난 후 단장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단장과 담소하면서 어떻게 그런 멋진 비행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단장은 말하였다. “몸을 던지는 사람은 자기 몸을 받는 사람을 전적으로 신뢰하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스타라고 생각하지만, 진짜 스타는 나를 받아주는 죠 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재차 물어보자 단장 라드리는 말하였다. “비밀은요, 몸을 날리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나를 잡는 사람이 모든 일을 하지요. 나는 죠에게 몸을 날리면서 그저 나의 두 팔을 쭉 뻗는 것 밖에는 없어요. 그가 나를 잡아서 안전하게 몸을 착륙시키는 것이죠.” “당신은 아무 것도 안한다고요?” “아무것도 안 해요. 최악의 상황이라면, 몸을 날리는 사람이 자기를 잡아주는 사람을 못 믿을 때에 일어납니다. 나는 죠를 잡아서는 안 되지요. 그건 죠가 할 일이지요. 만약 내가 죠의 손목이라도 잡으려 한다면, 그의 손목을 부러뜨리게 되고, 또 죠는 내 손목을 부러뜨리게 되어 모든 것이 다 끝장이 납니다. 몸을 날리는 사람은 그저 날아가야 하며, 나를 잡는 사람은 잡아야 합니다. 이것은 몸을 날리는 사람이 자기를 잡아줄 사람을 완전히 신뢰하여 두 팔을 쭉 펼치며, 자기를 잡는 사람이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을 반드시 신뢰하여야 합니다.”

그때에야 헨리는 깨달았다. 우리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는 것임을. 그저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분이 거기에 계시며, 또 나를 가장 안전하고 좋은 곳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주님을 향하여 우리의 두 팔을 활짝 뻗어서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일뿐이다. 진짜 주인공은 나를 받으시어 안착케 하시는 예수님이신 것이다. 주님이 새것이 되게 하시려고 부르셨으니 새 일을 행하게도 하실 것이다. , 보라. 새로운 피조물로 날아오르려는 나를 받아주시려고 넓으신 팔을 벌리신 주님이 보이지 않는가. 옛것에 대한 가련한 추억은 이제 그만 잊자.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안드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