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는 마음에 임하시는 주여


어느 목사님께서  질투성을 극복하려면 질투했던 사람에게 직접 가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제가 당신에 대해 이런 생각을 품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라고 자백하면 빨리 극복할 수가 있다고 말씀 하셨다. 그때부터 마음에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가끔씩 마음속에 질투의 대상으로 등장했던 분의 얼굴이 떠올랐다. 전혀 그럴만한 관계가 아닌데도 순간순간 질투하는 마음이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바람에 무척이나 괴로웠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분에게 가서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지만 자존심이 쉽게 허락하지 않아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양심의 찔림을 통해 말씀하시는 성령의 강한 권고를 거절해서는 같았다.


너무나 가까이서 주님이 계속 재촉을 하시는 했다. 창피하다며 아우성치는 자존심을 누르고 그분에게 쪽지를 썼다. “그동안 질투의 마음을 품었던 것을 용서해 주세요. 이런 나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회개하는 마음으로 적어 분의 자리에 몰래 가져다 놓았다. 그런데 그때부터 이상하게도 말할 없는 기쁨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왔다.


어느 묵상 중에 주님께서 친히 땅에 오셔서 드려주신 속죄제사로 인해 예비된 사죄은총을 나에게 베풀어주셨음을 깨달으며 용서받은 기쁨에 젖어들었다. 지옥에 수밖에 없는 자에게 자신의 몸을 바쳐 희생의 제물로 드리셔서 준비하신 속죄은총의 귀중함, 귀한 은총을 십자가 앞에 나아갈 때마다 언제든지 변함없이 베풀어주시겠다는 신실하심에 그저 눈물로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용서받는 기쁨을 통해 날마다 천국적인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마리아 자매회’라는 곳이 있다. 그곳의 창립자인 바실레아 쉴링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새롭게 하는 것이 매일 매일의 자백에 있음을 깨달았다. “주님처럼 죄악을 용서하는 신이 누구이겠습니까?(7:18)하는 고백을 즐거이 외칠 없다면,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죽은 것과 다름없음을 알게 되었다. 매일 하나님과 사람 앞에 회개하며 자백하는 자들만이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 뜨거워질 있음을 외쳤고, 외침 위에 많은 자매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었다.


하루는 자매회에서 함께 공사하는 날이었다. 조그마한 궤도를 놓고 위에 덤프차를 굴리고 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축복과 건축의 성공을 위해 천막에서 기도를 뒤에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덤프차의 바퀴가 선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덤프차는 파운드나 되는 흙을 싣고 있었다. 매번 궤도에 차를 올려놓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일도 계속 지연되고, 급기야 자매들은 기운을 잃고 기진맥진하였다. 자매가 “이대로 계속할 수는 없어요. 우리 천막에 들어가 기도합시다.”라고 말했다.


천막에서 하나님께서 오늘 작업하는 동안 우리의 축복을 빼앗아 가시는가를 보여 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하였다. 그러자 자매들 자매가 마음속에 있는 무엇인가를 다른 자매 앞에 감추고 있었던 것이 드러났다. 자매가 마침내 자기 마음속에 분노를 품고 있었다고 고백을 하였다. 다른 사람과 보조를 맞추지 않거나 너무 천천히 하거나 빨리 일을 하여 다른 자매의 눈에 모래가 들어가게 하거나 도구나 연장을 깨끗이 씻어 놓지 않는다든지 하는 경우로 인해 일어난 일이었다.


이는 자매만의 분노는 아니었다. 공사현장에서는 자매들 사이에 분노 섞인 판단과 남에 대한 저주와 더불어 어떤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자매들이 서로의 잘못에 대해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자 마음의 분노로 팽팽해진 긴장의 끈은 녹듯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시 일터로 나가 작업을 진행하자 놀랍게도 덤프차는 다시 탈선하는 일이 없었다.


그들의 공동체는 세탁기가 고장 나도, 농사짓는 작물에 병충해가 나도 먼저 기도 천막으로 달려가 서로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한다. 그때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눈앞에 나타나며 그들의 마음은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으로 넘쳐난다.


나의 삶엔 “주님처럼 죄악을 용서하는 신이 누구이겠습니까!”하는 찬양이 흘러넘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죄를 지어도 즉각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홀로 내버려 어리석은 분노와 후회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를 잘하기 때문이었다. 회개할 죄를 쌓아두고도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들을 안고 고민하느라 많은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냈기 때문이었다.


진정으로 죄인의 행복은 용서받는 삶에 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자백하며 회개하는 것보다 지상에서 누리는 즐거움은 없다.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오늘도 나는 십자가 밑으로 달려가 그분의 발밑에 회개와 눈물을 쏟아놓아야 한다.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만큼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 속으로 깊이 들어가게 것이다.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