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 지키기

나의 아주 오래된 습관 중 하나는 물건 제자리 놓기이다. 항상 메고 다니는 가방 안에도 나름 규칙이 있다. 작은 주머니가 여럿이지만 손수건, 열쇠, 핸드폰 등 놓는 위치가 정해져 있다. 그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못 참는 성미도 있지만, 자기 자리를 찾아 들어간 물건을 헤매지 않고 곧바로 찾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뭔가 뿌듯한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람도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더 가치를 발한다. 하나님의 강권이든, 나의 의지든, 지금 내가 선 곳이 내 자리다. 있어야 할 목적이 되는 곳이다. 물론 언제 다른 곳으로 옮겨질지는 주님만 아신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 곳에서 최선을 다한 충성과 헌신이 절대 필요하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일은 쉬우면서도 어렵기에, 수많은 이유들이 나를 유혹하기도 하고, 회유하며 동정하기도 한다. 때론 협박하면서 자리 지키는 것을 방해한다. 결국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거나 스스로 이탈하는 경우도 생긴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허락된 내 위치를 벗어나고 싶은 충동과 수시로 싸우다 보면 지치고 피곤할 때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목적으로 서 있다면 잠시의 욕구는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다. 수많은 유혹과 갈림길 앞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정주한다면, 반드시 예전보다 더 성숙해진 나의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또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훈련, 하나님을 향한 무한 신뢰를 배우게 될 것이다. 그것을 기대하며 나의 자리에 있는 순간들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면 좋겠다.

엄마와 손잡고 가던 아이가 신기한 것에 눈이 팔려 엄마 손을 놓치면 불안과 두려움이 커지고 낙망하기도 한다. 여기저기 엄마를 찾아 헤매다 엄마를 발견하고 넓은 품에 안기면 그 기쁨과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고, 그 품이 얼마나 편하고 행복한지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땀이 흥건하게 배여 좀 덥고 불편해도 놓지 않으면 된다. 그곳은 가장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다.

제자리를 지키기는 어려우나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내 본분과 자리를 망각한 채 계속적으로 이탈하면 어렵게 쌓았던 영적생활도 쉽사리 무너진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묵상하는 것보다 드라마나 음식이나 취미생활을 즐기며 육적생활에 깊이 빠지게 된다. 빛의 열매는 당연히 맺을 수 없다. 그러면서 주님 도와주세요. 인도해 주세요.”라는 기대 가득 찬 말을 할 수는 없다. 주님의 관심 밖에서 주님께 떼를 쓰는 어리석고 철없는 아이와도 같은 모습이 된다.

우리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자. 그곳이 하나님이 나를 위해 준비한 가장 합당한 곳이다.

탕자의 아버지가 밤낮 문밖을 바라보며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듯, 우리 하나님도 사랑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며 어서 돌아오라고 응원하며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하나님,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까 조금만 쉬고 싶어요. 놀고 싶어요. 조금 있다가 갈래요. , 지쳐요. 그리고 이 정도면 되잖아요.”

우리 마음에서는 수시로 합당한 이유와 조건들을 내세우며 하나님께 투정을 부리고 싶을 때가 생긴다. 제자리에서 쉼 없이 자리를 지키는 무게감과 부담감이 밀려 들 때도 있다. 이런 마음을 주님이 모르시는 것이 아니다. 때가 이르면 거둘 것이다. 조금만 더 참아라. 낙심하지 말고 기다려라. 너를 정오의 빛같이 빛나게 할 것이다. 나의 사랑 안에 거하며 나의 사랑을 믿어 주겠니.

주님의 간절한 응원에 네, 하고 응답하는 자리지킴이가 되었으면 한다. 주님 사랑 때문에 출발한 우리의 삶이니 그 사랑으로 시작한 자리를 잘 지키면 단단해지고 마무리 되는 기쁨의 순간은 반드시 올 것이다. 내 자리를 돌아보아 그곳에 숨겨진 소망을 보는 믿음의 눈을 가져야 한다. 감당하게 하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자. 내 자리에는 그 누구도 아닌 그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

허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