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치우라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모습을 보면, 둘러선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무덤 입구를 막고 있는 돌을 치우라고 명령하셨다. 무덤 입구에만 가도 썩은 냄새가 나는데 예수님은 그 무덤의 문을 열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돌을 치우는 행위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 없이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치워야 할 크고 작은 돌들이 수없이 많다.

한 달 전 내게도 주님께서는 무덤 입구를 막고 있는 큰 돌을 치우라고 명령하셨다. 나흘이나 지나 부패되어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시신이 있는 무덤 입구의 돌을 어느 누가 선뜻 치우려고 하겠는가. 그런데 주님께서는 돌을 치우라고 하셨다. 가나의 혼인 잔치 기적처럼, 나사로 소생의 기적도 작은 예수들의 협조가 필요했다. 작은 예수들은 주님의 선하심을 믿고 그 명령에 순종한 이들이다. 그분들의 기도와 사랑이 사망에서 소생의 기적을 일으켰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

한 달 전 식사 도중 남편의 심장과 호흡이 멈추었다. 뇌세포가 죽어가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남편은 음식물을 씹거나 삼키는 것이 어려워짐에 따라서 몸 상태가 극도로 악화되었고 급기야는 숨이 멎고 말았다. 동공이 풀리면서 축 늘어진 몸은 차갑게 식어갔다. 10분이 지나서 119가 도착했고 응급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심박동 기계는 일자선을 그리고 있었다. 남편을 실은 구급차가 먼저 출발하고 다음차로 이동하면서 ! 이제 남편은 천국으로 가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장이 멈춘 후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시간이 30분 이상 흘렀으니 소생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의사들은 황급히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의사 선생님이 나오셨다. “천만 다행으로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언제 다시 심장이 멈출지 모릅니다.” 30분 이상 멈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이다. 간증으로만 듣던 기적 같은 일이 눈앞에 일어났다. 남편은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중환자실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은 절망적이었다.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지만 2~3일 내에 뇌부종으로 뇌사할 가능성이 큽니다. 최선책으로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식물인간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계속적으로 최선의 치료를 해야 할지 보호자 분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최선의 치료를 선택했고 한 달이 지난 지금 남편은 인공호흡기를 떼고 자가 호흡을 하고 있다. 약하게나마 팔과 다리도 움직인다. 입으로 식사를 할 수가 없어서 위루관 시술을 통해 관으로 식사를 한다. 여전히 지병이 깊어 하루하루 고비지만 심장이 다시 뛰고 자가 호흡을 한다는 것은 기적이다. 중환자실 주치의 선생님이 웃으면서 하신 말씀이다. “기도를 많이 하셨나 봐요.”

한 치 앞만 보면 야속하고 손해만 보고 고통만 주는 것 같은 문제들 속에서 내 안에 있는 돌을 치우라.”는 하나님의 뜻이 숨어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처음에는 혼돈스러웠다, 마치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와 마르다처럼. ‘분명히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나사로 오빠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주님은 들었을 텐데 왜 안 오시는 걸까? 오늘은 오시겠지. 그러면 오빠는 살 수 있을 거야. 분명히 오실 거야.’

그런데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나사로는 죽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인 나흘의 시간은 내 안에 있는 것들이 죽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내속에 숨어 있는 불신앙과 불순종 그리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비집고 나오는 자아와 정욕들이 죽어야 하는 시간들인 것이다. 완전히 썩어 냄새나는 시체가 되는데 필요한 나흘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오신 예수님은, 무덤 입구의 돌을 직접 치워주시면 좋으련만 우리에게 돌을 치우라고 하신다.

의심과 절망의 돌들, 미움과 시기의 돌들, 교만과 아집의 돌들, 거짓과 음란의 돌들, 선한 명분 속에 숨어 있는 이기심과 명예의 돌들, 불순한 동기나 태도에서 나오는 열심의 돌들은 자아를 만족시키고 자아만을 살찌게 하는 돌들이다. 이 돌들을 치워야만 소생할 수 있다.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나사로야 나오라!” 죽은 지 나흘이 지나 이미 썩어가던 시체가 걸어 나오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전율이 인다. 주님의 은혜로 내 안의 돌들을 치울 때마다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영혼과 삶을 주님께서는 살려내신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자라는 나사로의 이름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역설적으로 절망의 순간에 절실히 느끼게 된다. 편안한 생활에 안주해 있다면 절망이 은혜로 가는 길임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우리를 살리기 위해 늘 최선의 길을 마련해 주시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삶의 참된 의미와 존재 가치를 찾다보면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화와 행복이 밀려온다.

세상의 잣대와 좁은 시선에서 물러나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두면 삶의 여정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풍파들이 성령의 은혜 안에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배려임을 깨닫게 된다. 맑게 빛나는 아름다운 영혼을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시나리오임을 아는 자는 복되다.

박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