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행복한 이유

하나님!

나를 이유 없이 울게 하소서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게 하시고

눈물 속에서

사람을 만나게 하소서

죽어서는

그들의 눈물로 지내게 하소서

기도마종기

 


bab8b4d9.jpg 가치의 가치

동성애 단체들이 주관하는 ‘2015년 퀴어문화축제69일 서울광장에서 열릴 예정인 가운데 행사 철회를 촉구하는 기독교계와 서울광장 사용을 허락한 서울시 간의 기 싸움이 팽팽하다. 올 퀴어문화축제 69일 저녁 서울광장에서 개막식을 연 뒤 2주 동안 서울 곳곳에서 행사가 진행된다. 이 행사는 매년 신촌에서 열리다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건 올해가 처음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청에서 이영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등과 면담을 갖고 서울광장(이용)은 조례상 허가제가 아니고 신고제이기 때문에 신청만 하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퀴어문화축제 개최도 신고사항이기 때문에 시장인 저도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동성애를 표현의 자유로 (생각하거나), (동성애가)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주한 영국 대사도 이번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한다. 유럽 등의 경우 나라마다 동성애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고 주장했다. 결국 우리나라 한복판에서 동성애 관련 모임이 축제라는 이름으로 열린다는 것이다.

에스더 기도운동본부 이용희 교수는 선진국들의 예를 볼 때 교회가 강력히 대처하지 못하면 동성애를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영국에서 10년 전, 평등법이 통과될 때 교회는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동성결혼이 합법화 됐고 더 이상 동성애를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지금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해 대가를 치르느냐 그냥 가만히 있어 결과적으로 문을 활짝 열어 줄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가 사는 시대는 자신들의 가치가 정당하다며 인권이라는 이름하에 그것을 인정해 줄 것을 주장하며 축제를 열겠다고 한다. 하나님의 진노에 이를만한 추악한 것이 우리가 사는 곳에서 목도되는 상황이다.

영국 속담에 하루가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라. 일주일이 행복하려면 여행을 하라. 한 달이 행복하려면 집을 사라. 일 년이 행복하려면 결혼을 해라. 평생을 행복하려면 이웃과 사귀어라.”는 말이 있다. 많은 이들이 소유하기 위해 애쓰며 일생을 쫓아 헤매는 것들이 기껏해야 일주일, 한 달, 길어야 일 년의 행복을 안겨 준다는 것이다. 비록 속담이지만 끄덕일 수밖에 없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 년, 혹은 수 십 년, 아니면 일생을 투자하면서도 행복이라 여기며 그 가치를 높이 사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치 있게 여긴다고 다 가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인정하고 부러워할만한 것이라 해도 가장 추한 가치가 될 수 있고, 남들이 손가락질을 해도 목숨을 걸만한 가치도 있다. 가치는 사람도 세상도 누구도 아닌, 이 세상을 만드시고 주관하며 운행해 가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기준에 합해야 진정한 가치가 되는 것이다.

 


웃는 예수님

스페인 출신의 선교사이자 예수회의 공동 창설자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1506-1552)의 생가에 가면 웃는 예수님 상이 있다. 십자가에 매달려있는 예수님의 고통스런 모습에 익숙해 있는 우리에게, 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빙그레 웃고 계신다. 십자가의 고통은 누구나 울고 아픈 고통의 기억이지만, 십자가를 지셨던 주인공 예수님은 우리 때문에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신 분이시다. 우리 인간들을 향해,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며 가장 평화로운 순간처럼 거룩한 죽음을 맞이하셨던 우리 구주 예수님. 그 절대적인 위대한 사랑의 희생을 웃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 이후 우리는 항상 기뻐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들이 되었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배신과 환난이 광풍으로 몰려와도 주님이 계시고 우리 앞서 길을 가셨기 때문에 그 주님처럼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하는 거룩한 사람들로 임명되었다. 바울은 머리를 깎는 순간의 즐거움도, 집을 사는 행복도 없었다. 또한 결혼하는 행복도 없이 평생을 주님을 위해 독신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살다가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복음을 전하더니 목이 베어 순교하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소유해야 행복한 우리 관점에서 볼 때 삶은 도무지 행복할 것이 없다. 그런 그가 사람들에게 말한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십시오.” 대단히 완벽한 모순이다. 말도 안돼, 라고 해야 맞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나의 하나님, 당신께서 제게 약속하신 천국을 원하기에 당신께로 향하지는 않습니다. 지옥이 그만큼 두려워서 당신께 저를 내어드리고, 저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당신께로 향하는 것 역시 아닙니다. 당신께서 조롱받으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보도록 저를 이끌어주십시오. 당신의 몸이 그만큼 상처 입으신 것을 보도록 해 주시고, 당신이 모욕 받으셨고, 죽으신 것을 보도록 해 주십시오. 주님! 마지막까지, 오로지 당신의 사랑, 당신의 방법으로 비록 천국이 없다 하더라도 당신을 사랑하도록 저를 이끌어주시고, 비록 지옥이 없다 하더라도 당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일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제가 당신을 사랑하기에 당신께서 제게 사랑을 주셔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 제가 기다린다 하더라도 오지 않을 수 있고, 이처럼 당신께서 원하시는 것을 저는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기도를 한다.

천국을 원해서, 지옥이 두려워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주의 사랑 때문에, 그 사랑만을 원하기에 살아간다는 고백이다. 역시 행복의 조건이 주님뿐이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주님 때문에 기쁘고 행복해서 웃는 예수님의 사람들이다.

 


당연한 이유

죽으면서도 행복하셔서 웃었던 예수님. 복음을 전하다 죽은 그 자리가 즐겁고 행복했던 선교사님들이나 믿음의 선진들. 그들은 죽음마저도 달콤하고 행복했다.

사는 동안 주어지는 모든 일들이 꽃향기처럼 다 기쁘고 좋을 수 없다. 생로병사의 한가운데 살아야 하는 인간은 때론 죽음이 더 낫다고 여기기도 하는 고통스런 순간들을 견뎌야 한다. 그 속에서도 이유 없이 즐겁고, 이유 없이 눈물짓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 눈물로 영원까지 이어지는 은혜로 살게 되는 것은 우리가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증거다. 그 당연한 은혜 때문에 사명을 부여잡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웃는 얼굴로 잠시 당하는 고통을 감내하며 영원한 사랑을 노래 할 수 있어야 한다. 잠시 지나가는 이 광야 길에서 우리가 행복한 이유를 끊임없이 노래하며 행복한 이유를 세상에 외쳐야 한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우리를 위해 빼곡히 적어 놓으신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과 거룩한 사랑의 말들은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며 우리 삶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다. 그 말씀을 붙잡고 사는 우리는 매일 울어도 부족한 가장 행복한 피조물들이다.

이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