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단상

새벽을 깨우는 산새들의 노래는 숲이 일어나는 부산함보다 더 요란하다. 현란한 몸짓은 태양이 떠올라 눈부신 빛을 발할 때까지 계속되다 빛이 부서져 내리면, 이슬에 젖었던 깃털을 고르며 날개 속 솜털까지도 말리느라 잠시 조용해진다. 허나 그것도 잠시뿐 곧 그들은 잘 마른 날개를 힘차게 저으며 창공으로 높이 솟아올라 밝은 아침이 왔음을 요란하게 알리는 것이다. “아침이 왔어요! 새 날이 시작됐어요!”

고요하던 숲은 바닥에서부터 부산해진다. 온갖 벌레들은 조반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고, 풀꽃들은 색색의 기지개를 켠다. 밤 동안 숲에 머물렀던 요정들은 피어오르는 안개를 타고 아쉬운 듯 서서히 하늘로 오르고, 잠시 지상에 내려와 휴식한 정령들이 다시금 갈 길로 떠나는 행렬은 조용하나 웅장하고, 장엄하나 신비롭다.

모든 것이 이렇듯 깨어나는 새벽아침은 피곤한 사람들에겐 반갑지 않은 시간이다. 단 몇 분이 꿀처럼 단 그들은 애써 빛을 외면하며 태양이 멈추기를 구한다. 열심히 사나 새벽의 이 장엄한 기상은 보지도 못한 채, 또 삶의 쳇바퀴 속으로 끌려가듯 들어가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생이 가엾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신으로부터 주어지는 또 하루 새 날의 신비스러운 새벽을, 이 거룩한 아침을 맞지 못하는 것 말이다.

신이 부르는 소리를, 신을 찬미하는 기도를 듣지도 드리지도 못하며 영혼의 한 구석이 녹이 스는지, 죽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창조주 하나님을 찬미하라! 날마다 주시는 눈부신 새벽의 신비는 이렇듯 허무하게 이슬과 함께 사라져버리고, 지루한 삶의 또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찬란한 선물에 감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를 드리는 이들이 있다. 진리를 사랑하여 진리이신 주님을 부르는 이들이요, 날 위해 대신 죽으신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 위해 죽기를 마다 않는 영신적 사람들이다. 새벽은 이런 순박한 이들로 인해 더욱 빛난다. 숲의 요정들이 밤새 기다리다 기뻐하며 춤을 추는 것은 이런 영혼을 깨우는 즐거움이 있는 까닭이다. 그들에겐 매일같이 다가오는 아침이 날마다 신선하고 새롭다. 눈 뜨자 감사와 감격이 넘쳐난다. 하나님을 만나는 새벽을 주심에 살 가치를 느끼고 주신 새 날을 의미 있게 보내려 주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인생이 가치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리라. 피조물이 조물주를 찾아 감사를 드리며, 주신 사랑에 감격하여 그 사랑을 돌려드리는 것이다. 그것이 때로는 참회의 눈물이어도, 때로는 헌신의 땀방울이어도, 찬양이어도 그 모두는 하늘로 끌어올려져, 인생의 유한함이 영원으로 화하는 것이다.

, 영존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그 사랑으로 생애를 드렸던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보다 더 거룩한 일이 있을까! 그 연인이 기뻐하실 일을 생각하며 그분의 본을 좇아 따르는 일보다 더 남는 일이 있을까!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들이 나를 만날 것이니라”(8:17).

이 세상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중요하며, 주님을 사랑하는 일보다 더 긴요한 것은 없다. 새벽마다 주님을 부르고 죄와 사랑을 고백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보다 더 절박한 것은 없다.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