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합니다


환합니다.

감나무에 감이, 바알간 불꽃이,

수도 없이 불을 켜 천지가 환합니다.

이 햇빛 저 햇빛 다 합해도

저렇게 환하겠습니까.

서리가 내리고 겨울이 와도

따지 않고 놔둡니다.

풍부합니다. 천지가 배부릅니다.

까치도 까마귀도 배부릅니다.

내 마음도 저기 감나무로 달려가

환하게 환하게 열립니다.

-정현종

b0a8.png익은열매의 끝

봄이다. 바람이 불어도 살을 에이는 강한 겨울바람이 아니다. 꽃샘추위라는 글자에도 꽃과 샘이 들어가 있는 건 봄이기 때문이다. 아지랑이처럼 가물가물, 한낮의 졸음처럼 문득문득 걷잡을 수없이 다가오는 봄이 왔다. 어느 집 담장 안을 환하게 밝히며 정갈하게 피어나는 목련꽃의 우아한 향연을 보게 될 봄이 시작되었다. 산에는 진달래가 울긋불긋 수줍게, 노란 개나리는 길섶을 가득 메우며 봄을 알릴 것이다. 연달아 폭죽처럼 꽃들이 피어나고 온 자연은 그들만의 축제를 우리에게 선물해줄 것이다. 하얗고 노란, 울긋불긋한 각각의 전등이 펑펑, 그들만의 언어로 끝도 없이 소리치며 말을 걸 것이다. 하나님의 솜씨가 온 세상을 가득 메우는 화창한 봄이다.

시인의 눈에 들어온 늦가을 나무에 매달린 감. 익어가는 그 감의 색깔을 수많은 전등의 불이 켜지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 감이 다 익으면 많은 이가 배불리 먹고, 늦가을까지 놔두면 홍시가 된다. 그러면 역시 이번에도 누군가 또 배불리 먹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한 두 개 쯤 남겨두어 지나가는 새들의 먹이가 되도록 한다. 배려의 선물을 자연에게 다시 되돌려 주며 감은 그 사명을 남김없이 다하게 된다.

감이 익어가는 동안 서리가 내리고 찬바람도 맞는다. 때론 비도 온 몸으로 맞아야 한다. 그 날들을 다 견디고 익은 열매가 된 감은 불빛으로 바뀐 자신을 모두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것이다. 환하고, 풍부하고, 배부른 그 열매의 기다림은 모두가 기쁜 잔치로 끝을 맺는다.

기다리는 마음

똑같은 일생이 주어지고 같은 시간의 삶을 살아도, 무가치하게 여겨지는 삶을 사는 이들이 있고, 해를 끼치며 결국 초라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하게, 보통의 길을 걸으며 살아간다. 사람에게 주어지는 운명 혹은 순리의 삶이라고 여기며 평범함이 주는 안전함에 감사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전하고 모나지 않은 길을 선택한다. 위험과 고난이 따르지 않는 길을 선호한다. 적당히 즐기고, 적당히 누리며 어렵지 않게 살아가고 싶어 한다. 거기에 부와 명예가 따르면 좋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또 좋고, 건강하면 또 좋다.

반면, 짧은 순간을 살아도 환한 빛을 발하며 온 세상을 비추는 익은 감 같은 사람들도 있다. 남김없이 살아서 재가 되도록 사는 이들이 있고, 사람들의 마음에 커다란 등 하나씩을 달아주면서 어둠을 몰아내는 역할을 해주는 이들도 있다. 누구나 평범하게, 큰 일 없이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내면에 담긴 웅크린 생각들을 펼쳐보면 무언가 환한 불빛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누군가 기부를 많이 했거나, 소외된 이들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들을 들으면 사람들은 그들을 동경하고 선망한다. 심지어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로 귀농한 생활도 동경한다. 모두의 마음에 품은 무언가 기대감을 말해주는 이유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길 소망하는 기대감, 하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고 용기도 없는 나.

작년 한국을 강타한 명량이라는 영화는, 이순신의 입체적 면모를 묵직하고 강렬한 드라마 속에 담아 수많은 이들을 이순신 열풍에 들어가게 했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줄 아는 진정한 리더로서의 위용과 용맹함은 짜릿하고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전했다. 외로움과 두려움에 포기하지 않고 불가능에 맞서 싸웠던 인간이자, 자신의 목숨보다 백성을 먼저 염려한 충신, 신념과 용기로 승리를 이끈 진정한 리더, 고뇌하는 아버지까지, 현 시대를 관통하는 공감대와 울림을 남겼다. 그 뒤로 직장인, 정치권, 일반인들에까지 이순신은 영향을 미쳤다. 모두 무언가를 간절하게 기다렸던 것처럼 열광했다. 내가 할 수 없고, 하지 않았던 일을 누군가 대신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의 열망이 표출된 현상이었다.

다시 복음 앞에

지난 21일 오후 3시쯤 경남 진주시 대평면 신풍리 갈골마을 버스 회차지 인근 진양호변 도로에 주차된 승용차 안에서 남성 3명과 여성 1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차량 안에서는 타다 남은 연탄과 수면유도제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메모가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들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일단 결론을 내렸다. 경찰은 이들의 주소지가 전부 다른 점으로 미뤄 자살 카페 같은 곳에서 만나 동반자살을 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자살카페라는 곳은 죽고 싶은 이들이 모여 마음을 나누는 곳이라고 한다. 서로 어떻게 죽을지 방법들을 모색하고 혼자 죽기 무서워 같이 동반자살을 하는 것이다.

한때 우리나라에 자살이 전염병처럼 일어나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알게 모르게 죽어가는 일들이 많다고 하니 답답하고 먹먹한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들을 보며 한숨짓다가 자문을 하게 된다. 너는 무엇을 해야겠니.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작고 연약한 내가 거대한 세상을 향해 무엇을 하여야 빛으로 피어날 수 있을까. 주님 말씀하신 세상의 빛과 소금을 과연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 고민을 하게 된다.

이순신처럼 될 수 없지만, 그것이 옳은 길이기에 그 사람의 삶을 그리워하고 닮아 보고자 하는 마음들이 열풍을 불러왔다. 누구나 똑같은 길을 갈 수 없지만 더 바르고 깨끗한 길이 있다. 더 복되고 가치로운 길이 있다. 그 길을 알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은 지혜로운 자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행하신 일들을 다 따라 할 수는 없지만 그 길의 중심은 복음이었다. 누구에게나 영원한 하늘나라를 주시고자 생명을 바쳐 대속의 제물이 되셨다. 목숨 바쳐 구했건만 사람들은 빛을 외면하고 오히려 학대하고 미워하고 저주했다. 영원한 생명을 내게 주시려고 오신 그 사랑을 전하고 외치는 간절한 마음이 우리 안에 피어나길, 주님이 힘을 주시길 소원해 본다.

오래된 나무처럼 자리만 지키지 않고, 늘 가던 길이라고 익숙해서 허세를 부리며 교만하지 않고, 조금 더 먼저 걸었다고 아집을 부리며 강요하고 주장하지 않고 갔으면 좋겠다. 나보다 더 잘되는 것 같은 사람을 질투하면서 협조하지 않고 화를 내고, 작은 일을 크게 부풀려 중상모략하며 거짓에 이르는 것을 올바른 판단과 정당한 비판이라고 명분화하지 않아야겠다. 늘 하던 일이라서 잘할 수 있으니 부지런하지도 않고, 더 열정을 쏟아야 할 일을 만들지 않고, 더 이상의 열심을 내지 않는 게으름을 겸손으로 착각하지 않아야겠다. 그래야겠다.

그래야 주님의 복음을, 거룩한 진리의 말씀을 널리 전하는 일이 더 활기차게 되지 않을까. 주저앉아 머뭇거리고 열심을 내지 않는 사이, 이단들이 활개를 치고, 젊은이들이 쾌락의 늪으로 더 빠져들고, 노인들이 버림받는 현실은 더 비참하게 전개될 것이다. 두려움을 안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복음을 복음되지 않게 하는 가장 적이다.

환해지고 싶은

요즘 사순절이고 하니 매일 교회에서 잠을 자며 기도를 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육신이 피곤하고 힘이 들다. 그런데 영은 맑고 깨끗하다. 주님과 더 깊게 친해진 것 같다. 새벽예배 후 기도하고 말씀 보는 시간이 길어졌고, 교회 안에 있는 화초나 꽃들에게 말을 걸며 대화하는 즐거움도 생겼다. 이대로 머물며 주님과만 친해지면 좋겠지만 주님은 복음을 들고 나가라고 하실 것 같아 슬슬 겁이 난다. 그런데 가야만 하는 것을 안다.

수요예배 후 집에 가는 길에 여섯 살짜리 아이가 노래를 부른다. 달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달 어디어디 떴나 우리 교회 떴지. 순간 핑그르르, 눈물이 돌았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 같았다. 그래요 주님, 환하고 따뜻한 달빛으로 긍휼히 비춰 주세요. 저도 환하게 떠서 다른 이를 비추는 빛이 되고 싶어요. 한 사람 한사람 모인 환한 빛이 자신을 비추고, 동네를 비추고, 세상을 비추는 그 날, 참 빛이신 주님이 환한 미소로 우리를 향해 오시겠지요.

이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