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박한 헌신

우리 교단은 참으로 특이한 단체다. 개신교 단체면서도 여섯 개의 수도회가 존재하고, 강사료 없이 약간의 교통비만 받으며 헌신하는 교수님들로 운영되는 신학기관이 있다. 또 대한예수교장로회에 속하는 총회와 노회, 선교단체와 신문사가 있다. 단체마다 대표로 세워진 이들이 있지만, 그 누구도 군림하거나 다른 단체를 간섭하지 않는다. 선거를 하는 과정에도 사전 운동이나 혹 물질 같은 것이 오가는 일이 없다. 육적 권세도 없다. 서로 협조하고 봉사하는 공동대표들이요, 목자장이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주님의 목자요, 책임이 부여된 한 마리의 또 다른 양일뿐이다.

신학기관은 가난한 학생들의 사정을 헤아리다 운영비가 부족하여 교수님들의 교통비마저 중단되기도 한다. 받을 수 있을 땐, 각자 1만원씩 떼어 교수장학금으로 모아서 어려운 학생이나 도움이 필요한 일에 전달한다. 지난달엔 어려운 신학교 사정이 흘러나가 어느 교회에서 신학졸업생을 중심으로 150만원을 모아 후원하였다. 그래서 교수 교통비가 지급되었다. 우리 신보사는 완전히 후원으로 운영된다. 매달 꼭 400여만원의 경비가 필요한데, 수십 명의 후원자들과 교회들의 헌신으로 신문사가 운영된다. 원고료도 받지 않고 좋은 글을 정성껏 써 주시는 기자들, 몇 천원에서 몇 십만원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는 선한 후원자들, 신문이 나오면 자원하여 발송을 돕는 손길들까지, 하나님의 사람들 때문에 운영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신문사는 매월 기적을 경험한다.

올해 들어와 세계적 불황의 여파인지, 분주함 때문인지 후원이 부쩍 줄어들었다. 가끔 발송비가 부족하고, 인쇄비가 지급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전화를 받기도 한다. 그런 날엔 비상금이라도 털기도 한다. 누가 내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어찌 보면 절실한 분도 없는 것처럼 보여 잠시 마음이 어두워서 기도하면, 여지없이 주님의 뜻임이 밝혀진다. 이 마지막 때에 임박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도록 알리고, 예수님의 밝은 빛과 무교병의 진리를 전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화로 나아가도록 돕는 거룩한 사명을 또 다시 떠올리게 하시는 것이다. 후원자들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넉넉히 운영되도록 해주시지 하는 불평도 먼지처럼 일어나지만, 결론은 간절한 기도가 부족했다는 것을 회개하게 하신다.

돈이 많아서, 어디에 쓸지 고민하면서 후원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돈 쓸 일은 얼마든지 많다. 하지만 주님을 향한 사랑과 정성으로, 성령께서 이끄시는 감동으로 넉넉지 못해도 드리는 것이다. 하늘에 재물을 저축하는 사람들, 주님이 원하시는 곳에 아낌없이 헌신하는 사람들, ‘주께서 쓰시겠다.’ 하시는 소리에 선뜻 드릴 수 있는 이들. 주님은 이런 이들의 순박한 헌신을 기뻐하신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믿음으로 자기를 드리는 이들은 오병이어를 내놓았던 아이처럼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다.

지금 하는 일이 주님을 얼마나 기쁘시게 하며, 하늘에 얼마나 많은 것을 쌓고 있는지 볼 수 있다면, 더할 수 없는 감격 속에 일할 수 있을 텐데요. 그래서 안 보고도 믿는 믿음이 중요한 것이지요.” 생전 스승의 말씀이 귓가에 잔잔히 들려오는 것 같다. 천국의 내 집엔 얼마나 쌓여 있을까. 지금 주님은 나를 어떻게 보고 계실까.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