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거울


모처럼 이발을 하고 수실에 들어와 서랍 속에 있는 거울로 머리를 보았다. 왼쪽이 너무 파져 쥐가 뜯어먹은 같다.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 가서 계시록 강의를 해야 하는데, “목사님, 머리가 모양이냐?”고 이분 저분들이 한마디씩 하게 생겼다.

거울을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 먼지가 얼룩덜룩 묻어있다. 거울을 닦고 얼굴을 다시 보니 흉측한 늙은이가 보였다. “도대체 너는 누구냐. 희진이 맞냐? 그렇게 눈은 게슴츠레하고, 주름살과 검버섯이 많이 있냐? 아주 폭삭 늙어버렸구나. 그나저나 뜯어먹은 머리는 어떻게 하나…. 이리보고 저리 보아도 수가 없다. “할 없지, .”라며 거울을 서랍에 넣는데, 선생님이 쓰시던 거울이 생각났다.

살아생전 선생님은 손거울을 항상 곁에 놓고 얼굴이나 옷매무새를 보기도 하고, 머리맡에 놓여있는 책들이 정돈되어 있는지를 보셨다. “선생님, 왔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면서 방에 들어가면 “예, 오셨어요. 멀리 상주에서 오느라 수고하셨네요.”라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못난 제자는 선생님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은 힘들어 죽겠다고 엄살을 피웠다. 그럴 때면 “무슨 일이 있습니까? 하시며 손거울로 살짝 나의 표정을 보셨다. 목뼈가 굳어버린 선생님은 고개를 돌릴 없었다. “아니, 그렇게 한숨만 쉬고 그러세요. 무슨 힘든 일이라도…”라시며 철없는 목사를 위로하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시며 여러모로 돌봐주셨다.

사십 평생 병상의 증거자로 살면서 언제나 곁에 두시고 사용하시던 낡은 선생님의 손거울은 영혼을 깨우는 귀한 도구이다.

손거울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같았다. “이 불쌍하고 늙은 도둑놈아. 그렇게 밥만 축내고 굼벵이처럼 게으름에 빠져 사느냐. 목사라고 하면서 온갖 허례와 위선에 빠져 허울 좋은 말만 하고 하나 까닥하기 싫어하고, 칭찬과 대접은 받아가면서 위선을 떨고 있는 외식장이야. 방울 흘리기 싫어하면서 ‘철저히 회개합시다. 잘도 말하지. 그래 놓고 정작 눈물 방울 흘리지 않고 졸고만 있는 한심한 목사야.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니 오직 주님 위해 살다 주님 위해 죽읍시다. 말만 해놓고 감기만 걸려도 온갖 엄살을 피우며 죽는 소리 해대는 늙은 아담아. 벌거벗고 눈멀고 귀가 먹은 가련한 죄인아.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네가 죽은 자와 같구나!

생전에 번개처럼 스쳐가는 생각에도 가슴을 치며, 이마가 퉁퉁 붓도록 때리며 철저히 회개하셨던 선생님이 떠올라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주님,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배은망덕한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웃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신의 정욕을 철저히 십자가에 박지 못한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런저런 분주한 일들로 인해 가장 중요한 , 영혼의 거울을 닦는 일을 등한시 했다.

단추 구멍은 끼웠는지, 머리는 흩트러지지 않았는지, 옷에 무슨 얼룩은 묻지 않았는지, 단정한 옷차림인지, 거울을 보며 점검도 하고 뽐내기도 한다. 누구나 하루에 한번쯤은 거울을 들여다본다. 상대방의 시선과 평가에 민감하여 겉모습을 가꾸는 데는 열심이면서 정작 영혼의 거울은 얼마나 자주 들여다보는가. 시커먼 오물이 이곳저곳에 튀어 영혼의 거울이 뿌연 안개처럼 희미한데, 썩어질 외모가 그리 좋아서 거울 자신을 보고 본다.

아씨시의 프랜시스가 부리지오의 로까라는 마을 가까이 있는 어느 형제의 집에 설교를 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그날 공교롭게도 동네 가난한 병자 사람이 거기에 찾아왔다. 병자가 불쌍한 생각이 프랜시는 인간의 가난과 병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그때 집주인인 형제가 말하길 “이 사람이 몹시 가난하게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동네에 사는 사람 어느 누구도 부자가 되기 싫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었다. 그러자 프랜시스는 자리에서 그를 몹시 나무라며 “내가 당신에게 참회할 것을 요구한다면 하겠습니까?”라고 했다. 그러자 형제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에 프랜시스는 “가서 당신의 옷을 벗고 벌거숭이가 되어 가난한 사람의 발아래 엎드려 당신을 악평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간청하시오.”라고 명했다. 형제는 가난한 병자에게 가서 프랜시스가 말한 대로 하였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자기 옷을 다시 입고 프랜시스에게 갔다.

그러자 “당신은 가난한 병자와 그리스도에게 어떻게 해서 죄를 지었는지 알고 있습니까? 당신이 가난한 사람을 때마다 그리스도가 가난한 자나 병자의 이름으로 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가난과 나약함을 스스로 떠맡아 지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사람의 가난은 거울로써 우리를 비추고 있고, 우리는 거울에서 우리 그리스도의 연약하심과 가난하셨음을 마음 아프게 보며 묵상해야 합니다. 또한 그분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연약하심과 가난하심을 참고 견디셨습니다.

거울은 우리의 모든 것을 비춰준다. 거룩한 삶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자기를 돌아보는 삶을 살았던 분들의 삶은 언제나 밝은 빛이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묻은 선생님의 거울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은 못난 제자를 위한 선생님의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거울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진리의 거울 앞에서 마음과 행실을 반성해 때마다 얼마나 부끄러움이 많은지 모릅니다. 온전한 사랑과 인내로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순종하고 충성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부족해서 부끄럽기 한량이 없습니다. 그래도 저희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온유하시고 겸손하시고 언제나 충성스러우셨던 선생님. 선생님을 생각하고 가르침을 생각하니 못난 제자로서 간신히 살고 있는 것이 너무 부끄럽고 송구스럽다. 어느새 손거울에 콧물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뚝뚝 떨어진다. 거울 속에 비추어진 모습이 너무나 초라하고 추하다. ‘이 못나고 게으른 자야, 언제까지 이러고 살래.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해서 인고의 세월을 날처럼 살다 가신 선생님께 무엇을 배웠느냐?

모습을 보면 포기하고 관둬야 마땅한 모습이지만 선생님처럼 거울을 다시 손에 든다. 눈물을 닦고 닦으면서 가닥씩 삐쳐 오른 머리에 침을 바르고 수도원 계단을 내려간다. 지극히 가난하셨던 주님. 일생을 거룩한 거울이 되어 못난 제자를 비춰 주셨던 우리 선생님. 그리고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 앞에서 가난하고 겸손한 수도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지극히 작은 것에도 철저한 참회의 삶을 살면서, 선생님처럼 깊은 통회의 눈물을 흘리게 하소서. 되지도 않은 자가 뭐나 것처럼, 아집과 교만을 은근히 앞세우며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낮게 여기는 일이 없게 하소서.

진실의 거울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교만으로 인하여 패망하고 결국은 주님나라에 이르지 못한다. 주님 앞에 정결한 신부로 서는 그날까지 나를 돌아보는 영혼의 거울을 결코 놓지 말아야 하겠다.

박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