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부터 가끔 아파오던 허리가 최근에 무리를 했더니 심하게 아파서 한방병원을 찾게 되었다. 의사선생님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시면서 단 한 번의 침 치료로도 낫게 해줄 수 있지만, 이제 갈수록 신체가 약해만 지는 나이기에 반드시 운동을 해야 한다고 권면하셨다. 언제나 청춘인줄만 알고 몸 관리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했다. 그러고 보니 40대 중반이다. 신체의 모든 기능이 쇠퇴해지는 시기로 들어선 것이다. 침 치료부터 부항을 뜨고 안마까지 받고 왔지만 차도가 있는 것도 잠시, 그날 밤 통증으로 인해 잠을 이루기가 힘들었다. 다음날 정형외과를 찾아 갔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예상했던 대로 허리디스크였다. 의사선생님은 수술할 정도는 아니지만 여러 치료를 병행해서 받아보자고 권하셨다.

허리가 많이 아팠지만 내색하지 않고, 교회에 나오는 형제님의 MRI 결과를 보러 함께 대학병원에 갔다. 대기실에 머리가 허연 아들이 어머니로 보이는 할머니에게 어린이를 타이르듯이 말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입맛 없다고 밥을 통 안 먹응께 아픈 거 아니요. 뭐 들어가는 거이 없는디 뭔 힘이 있겄소.” 할머니는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목소리가 작아서 잘 들리지가 않았다. 아마도 MRI를 찍어보고 싶다고 하셨는지, 아들은 뒤이어 지난번에도 머리랑 가슴이랑 찍었는디 아무 이상 없다고 그랬잖아요. 근디 뭐하러 또 찍어? 머리랑 가슴 찍으면 다 나온디.” “전신을 다 찍어봤으면 쓰겄는디.” 어머니는 당신의 병이 밥을 안 먹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시는 듯 아쉬워 하셨다. 그러자 아들이 그러믄 낼 찍어보고, 며칠 우리 집에 있으면서 며느리에게 맛있는 것 좀 만들어 달래서 드시고 가셔라이.”하는 것이었다. “먹고 싶은 것이 없는디.”

아들은 말투는 투박스러워도 참 효자같이 보였다. 고가의 MRI도 어머니가 원하시면 또 찍어드린단다. 대학병원에 오니 자녀들의 손에 이끌려 온 고령의 노인들이 꽤 보인다.

지난주에는 형제님과 MRI를 찍으러 왔을 때 92세이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진찰을 오신 시이모님과 마주쳤다. 시어머니 되시는 할머니는 병명을 알 수 없는 지병을 젊은 시절부터 1년에 한두 차례씩 앓아오고 계셨는데, 설을 전후로 하여 다시 재발하여 고통스러워하셨다. 계속 토하고 식사도 못하시고 어지러움을 호소하셨다. 시이모님은 우리 시어머님의 바로 손아래 동생으로 침례교를 다니시는데, 자기주관이 뚜렷하고 매사에 깔끔하고, 똑 떨어지는 성품을 가진 분이셨다. 이모님은 어머니는 빨리 죽고 싶다고 말씀하시면서도 아프면 무조건 병원가자고 하신다면서 못마땅해 하셨다. 긴병에 효자 없다고 오랜 병치레를 옆에서 봐오면서 으레 올 것이 왔을 뿐이라는 듯 시어머니의 고통스런 호소에도 별로 요동하지 않으셨다. 뚜렷한 병명을 알아내지 못해 입원도 안 되는데, 시어머니는 대학병원에 입원하고 싶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어린아이가 된다면서 시이모님은 한숨만 쉬셨다. 한참을 씨름하는 것을 보다 못해 나는 할머니께 다가가 어르신 많이 아프시죠? 제가 기도해드릴까요?” 그랬더니 할머니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시면서 예수님, 저 좀 만져주시고 치료해주라고 기도하세요.” 하면서 할머니의 등과 손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를 해드렸다. 장소가 병원인지라 길게는 하지 못했지만 정성을 다해 진심을 담아 기도드렸다. 기도가 끝나자 시이모님은 한결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고맙네.” 하시는 것이었다. 시어머니의 성함을 여쭤보고 함께 기도드리겠다고 인사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밤에 기도드리면서 질병의 고통과 두려움을 못 이겨 운명을 달리하신 친정어머니가 생각나서 많은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생전에 어머니는 원인모를 배앓이와 불면증을 많이 호소하셨다. 검사를 해도 병명이 나오지 않았고 불면증은 더 이상 의학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선까지 갔었다. 그래서 한 번씩 친정에 갈 때 엄마의 배에 손을 얹고 기도해드리면 엄마는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그러나 자꾸만 그런 일이 반복되니 내심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도 배가 자꾸만 끓어서 괴롭다고 하셨다.

그리고 몸무게가 7Kg이나 빠졌다며 걱정을 하시는 것이었다. “몸무게가 갑자기 빠지면 암이라는 소리가 있다는데, 엄마 검사해보세요.” 라고 말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기도도 해드리지 않았다. 어버이날 선물로 필요하신 것을 사드리겠다고 하니 샌들이나 하나 사달라고 하셨다. 엄마와 생전처음으로 시내에 신발가게를 가게 되었다. 어릴 적엔 부모님이 신발가게를 하셔서 예쁜 구두를 맘껏 신었지만 엄마께 신발 사드리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신발을 신고는 놀러 가시면서 인사를 한 것이 마지막 작별인사가 되었다.

입관예배를 드리며 마지막 엄마의 차가운 시신과 인사를 하면서 나는 그저 오열하며 엄마,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라는 말밖에는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의학이 발달하고 고령화시대가 되었다지만 질병은 피해갈수만 없는 그림자와 같이 우리를 따라다닌다. ‘남의 염병이 제 고뿔만 못하다는 옛말이 있는데 사실상 타락한 본성을 가진 우리의 자기중심적인 입장을 제대로 표현하는 말 같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그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상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나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은 것은 더하다. 우리는 모든 질병의 환경 가운데서도 우리를 연단하셔서 정결케 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면서 인내하고 귀하게 생각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이런 것을 적용하면서 무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성경은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12:15)고 하신다. 그것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방법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 어떻게 하냐, 죄 때문에 이런 게 생긴 거니까 회개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먼저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해줌으로 뼈아픈 후회를 하게 되는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

예수님께서는 병든 이들을 안아주시고 만져 주시면서 마음까지 고쳐주셨다. 그 주님의 마음이 오늘 우리의 행동과 마음이 되어야 예수님을 전하며 천국 가는 길에 함께 할 수 있다.

주선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