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산다

늘 그렇듯 알 수 없는 미래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대한 두려움 가운데서도 첫발을 떼지 않았다면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듯이, 우리도 믿음으로 두려움을 잠재우고 용기를 내어 삶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설렘과 감사로 시작하는 신년예배를 드리며 주님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보았다. 솔로몬은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7:14)고 했다.

어느 날 다윗 왕이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 궁중의 보석 세공사에게 자신을 위해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라고 명령했다.

내가 전쟁에 승리했을 때 기쁨에 도취해서 교만하지 않게 하고, 절망에 빠졌을 때 좌절하지 않고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으라!”

세공사는 심혈을 기울여 반지를 만들었으나 적당한 글귀가 생각나지 않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적당한 글귀가 생각나지 않자 지혜로운 솔로몬 왕자에게 의견을 구했다. 솔로몬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에 세공사는 다윗 왕에게 드릴 반지에 이 구절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큰 성공을 했거나 승리한 순간에 자만심을 경계하고, 실패하고 낙심했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가지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16:25)고 말씀하시며 죽어야 사는 길을 몸소 가르쳐주셨다.

15979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13척의 배로 133척을 거느린 왜군에 맞서 대승을 거둔다. 명량해전이다. 이순신은 명량대첩 전날, 장병들에게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卽生 必生卽死),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一夫當逕 足懼千夫).”고 했다.

이것은 오늘 우리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는 일이 있다면 즉시 군율을 적용하여 조금도 용서치 않을 것이다.”라고 거듭 말하며, 장병들과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것을 결의하였다.

자신을 죽이고 또 죽여서 비로소 새롭게 태어나야만 생명을 얻을 수 있다. 모든 문제의 핵심은 남이 아닌 바로 . 우리는 항상 문제 해결의 열쇠가 외부에 있다고 생각하여 다른 대상에 주목한다. 그러나 자신에 대하여 파악하고 자신의 잘못된 욕망이나 행동을 제어하는 것이 사는 길이다. 또한 남과 비교하며 사는 삶 속에는 평안과 만족이 없다. 언제나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가장 알맞은 길이며 행복한 길임을 아는 것이 사는 길이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한 사도 바울의 말씀을 기억하며 고통스러울 때나 편안할 때, 슬플 때나 기쁠 때도 자신을 죽이는 일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예수님은 우리를 그 길로 초대하시고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신다. 죽어야 사는 역설의 기쁨은 예수님의 길을 가는 모든 이들만이 누리는 축복이며 은혜다. 그 은혜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서 주님의 거룩한 향연에 함께 즐거워하고 싶다.

박미선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