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좁은 길로

산까마귀

긴 울음을 남기고

해진 지평선을 넘어간다.

사방은 고요하다!

오늘 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의 넋이여,

그 나라의 무덤은

평안한가

- 마지막 지상에서김현승

 


김현승 시인이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에 현대문학에 발표한 작품이다. 모든 것이 고요하기만 한 순간, 그는 그 나라의 무덤은 안녕한가라고 묻는다. 그러자 사방은 고요하다! 오늘 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또 다른 자신이() 답을 한다.

부인 장은순 여사의 증언에 따르면 10일 당일 아침 학교로 발걸음을 옮기는 그에게 요단강 건너갈 때는 예수님 손잡고 가야지요.’라고 하자 요단강은 죽음의 강()이라지, 이젠 자신 있게 건널 수 있소라고 말했던 것이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그날, 숭전대학 채플 시간에 예정된 설교를 앞두고 기도하던 중 쓰러졌고, 자신이 향해야 할 천상의 세계를 향해 오늘 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말하며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고요와 침묵, 평안으로 가득한 진실한 고백을 하며 가야 할 그 나라의 안녕을 물을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소란한 세상 속에서 오늘도 끊임없이 싸워가야 한다. 오늘이 지상에서의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야 조금 더 절실하게 예수님을 부를 수 있다.

똑같아 지고 싶어서

샤를르 드 푸코(1858~1916)는 사하라의 은둔 수도자라고 알려져 있다. 사막 한가운데 담으로 둘러싸인 봉쇄 구역에 틀어박혀 기도만 하는 수도자를 연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과 똑같이살고자 아무런 지원도 받지 않은 채 끊임없이 사막을 홀로 걸어 다니며 복음을 전파했고, 극도의 가난함과 비천함을 추구했으며, 가장 경멸받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헌신을 베풀어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일깨웠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자신의 일생을 통해 복음을 전달한 것이다. 예수님과 똑같이 살아가고자 했던 숭고한 정신은 인종, 국경, 종파를 초월하여 무수한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그가 창설한 공동체는 예수성심의 작은 형제회자매회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그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사실 그는, 오늘날로 말하면 외할아버지 손에서 자란 결손가정의 아이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물려준 재산을 탕진하며 방탕한 생활을 할 때는 문제가 많은 젊은이였다. 그러다가 회개하여 부르짖을 때 그는 절규했다. “하나님, 저는 악만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악에 휩쓸리진 않았으며 그것을 사랑할 수도 없었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쓰라린 공허감을 느끼게 하셨으며 저로 하여금 그때 비로소 슬픔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자마자 당신을 위해서 밖에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뒤로 그가 택한 삶은 긴 시간 예배하고 기도하면서 그 자리에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기꺼이 수녀원의 종지기로 수년간을 지내면서 가장 낮은 자리를 차지함에 기뻐하였고, 알제리 사막에서 만인은 나의 형제자매다.”라고 외쳤다. 가장 낮은 자리를 차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의 영혼 속에 선명하게 새겨 예수님과 똑같은 길을 걷기 위해 나사렛 생활을 추구하며 주님과의 일치를 이루어 냈다. 말과 행함을 넘어서 정말 똑같이 살고 싶어서 나사렛으로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들어가 살았다. 주님처럼 가난하고, 겸손하고 비천해 지고 싶었다. 주님과 무엇이나 똑같아 지고 싶었다. 무엇하나 남김없이 다, 자신에게서 예수님이 비춰지길 원했다. 내가 그가 되고 그가 내가 되는 기쁨을 누리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렇게 원하던 주님과 똑같아진 사람으로 그가 변화되었을 때, 이번에는 그를 닮으려는 사람들이 하나 둘, 태어나기 시작했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사랑하면 걷는 길

사도바울은 자신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오직 하나, 자신 안에서 예수님이 존귀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 말고는 자신 삶의 이유와 가치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길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기를 싫어하고 미워하기도 하는 좁고 협착한 길이었다. 외롭고 지치는 길,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길, 누가 알아주지 않는 무명의 길, 그 길을 사도바울은 참으로 성실하게 걷고 또 걸었다. 그것도 생명을 걸고 자신의 생애를 다 바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을 것이라고 하셨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아서 주시고 싶은 그 사랑을 경험하고 입어보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저 그렇게 살아간다. 지극히 마귀적이고 세상적이고 정과 욕심을 따르는 넓고 편한 길로 가고 싶어 한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한 번도 주님을 떠난 적이 없다는 오만과 순전히 거져 받은 지극히 적은 달란트로 포장된 허영이 가득하여 좁은 길은 언제나 벅차고 불편하기만 하다.

그간 교회 안에서의 삶에 익숙해지고 그저 그렇게 안락하게 지내는 나에게 주님은 더 좁은 길로 가야 한다고 내 등을 떠밀기 시작하셨다.

어느 틈엔가 나를 새로운 길, 새로운 사역으로 이끌어 넣으셨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 하고 놀래는 순간 벌써 주님의 다음 계획안에 들어가 있었고, 꼼짝을 할 수 없게 짜여진 치밀한 작전 속에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갖으며 눈을 동그랗게 뜨기 시작하면 어느 새 척척 일을 진행 시키시는 주님을, 나는 멀뚱히 바라만 보게 되었다. 주님은 일하시고 나는 바라만 보는 상황이 두어 달 안에 다 이루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진행되는 어느 날, 가만히 묵상을 하면서 나를 위해 참 오래도록 수고하고 계신 우리 주님을 만날 수 있었다.

오래 준비하시고 훈련하시고 예비하신 일들이었음을, 이루시고 진행하실 때마다 알게 하셨다. 나는 언제나 그대로 있었고 일하신 분은 주님이셨다. 나는 언제나 불평과 원망을 하고 투정을 하고 짜증을 내었지만 주님은 그 모든 것을 안아주시며 당신의 계획대로 나를 이루어 가셨다. 그 모든 일이 좁은 길에서, 수 없는 날들 동안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 사랑해요, 라고 고백 할 때마다 나의 길은 조금 더 단단해지고 견고해졌지만, 내가 한 일이라고는 죄로 인해 얼룩진 얼굴로 죄송해요 라고 말하며 부끄러움에 우는 일과, 가끔씩 주시는 달콤한 사탕을 들고 아이처럼 기뻐하는 일 뿐이었다.

사랑해서 가는 길이라고 당당하게 여겼던 것들이 허례와 위선, 교만과 아집, 내 의로 인해 고집스럽게 외쳤던 순간들이 더 많았다. 감히, 내가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사도바울의 마음이 조금은 공감이 되고 또 조금은 헤아려진다.

사방은 고요하다

오늘 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또 많은 일들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나를 사랑하셔서 기꺼이 죽어주신 주님의 그 길을 나도 이제 구체적으로 걸어가고자 한다. 더 깊게 사랑하고, 더 깊게 섬기는 일, 더 깊게 희생하는 일, 나의 가는 길만 비추기보다 누군가의 길을 비춰주며 그 영혼을 위해 우는 진실한 일꾼이 되어 좁은 길을 가고자 한다. 남들이 말하는 두려움과 불안, 염려가 내 안에도 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기대와 신뢰를 결코 넘어서지는 못하기에 나는 오늘 고요히 담대할 수 있다.

내 지상에서의 마지막 고백을 기대한다.

주님을 사랑하는 일 보다 더 행복한 일이 없어서, 주님을 위해서만 살았습니다.”

이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