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거지아이를 안고

1931110, 말을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추운 날 영동강습회의 강의를 마치고 여관으로 가는데 거지아이가 뚜껑 없는 주전자를 들고 추위에 떨면서 울고 서 있었다. 바람이 눈 위의 칼 같은데 저런 아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니. ! 죄악의 세상이라 자기들만 살려고 눈에 불이 난 인간들. 어찌 이 가련한 걸아를 못본 척하고 지나가랴! 마음의 민망함을 이기지 못하여 아이를 안고 여관에 들어가니 이불이 더러워질까봐 여관주인이 곱잖게 본다. 그래서 두루마기로 싸서 이불 속에 넣어주니 가련한 마음에 슬픔을 이길 수가 없다.

너 조반은 먹었느냐?” “못 먹었어요.” 때는 11시 반이다. 뜨뜻이 먹어도 떨리고 추웠을 터인데. “그래 엊저녁은 어디서 잤느냐?”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잤어요.” “그래 무엇을 덮고 잤니?” “아무것도요.” 물그릇이 어는 밤에 덮지도 않고 잤다니! 나는 이불 덮고 포대기 깔고 호강하고 자는 동안에 너는 ! “엊저녁은 무얼 먹었느냐?” “찬밥 얻어먹었어요.” “찬밥을 주더냐?” 아이의 눈에는 원망과 고독이 그치지 않고 내 눈에는 회개의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몇 살이냐?” “8살이요.” “아버지와 엄마는 없니?” “엄마는 아버지와 쌈하고 양잿물 먹고 죽고 아버지는 미쳐서 달아났어요.” 죄악이 관영하여 엄동설한에 자식을 걸인으로 만들었구나! 어린 네가 무슨 죄가 있으랴! 눈물이 앞을 가려 말을 못하고 수건을 눈에 대고 한참을 울었다. “네 이름이 뭐냐?” “최억성이요.” “너 예수님 아니?” “네 알아요. 예수님 믿는 사람 우리 동네도 많아요!” “믿는 사람은 도처에 많건마는 너를 긍휼히 여길 신자는 없다는 말이냐! 자기 욕심만 채우며 믿는 체하는 신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여관에 부탁하여 물을 끓여다가 얼굴과 손을 씻기며 얼어터진 발에 약을 바르니 가엾은 마음에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울면서 씻어주고 싸매주고 머리도 깎아주고 나의 내의와 저고리를 벗어서 입히고 양말도 신기고서 아이를 보니 어찌 귀여운지. 아침에 잠이 깨어 이불 속에서 혼자 흥얼거리더니 바스락거리며 이불을 개어 발치에 놓는다. “밤에 춥지 않았니?” “아니요. 등에서 막 땀이 흐르던데요.” 우동을 시켜 둘이 먹으니 자기 것을 자꾸 내게 덜어낸다. “왜 그러니?” 빙그레 웃기만 한다. 이는 저가 나를 대접함이구나. ! 착하고 귀여운 맘, 그 맘 그대로 자랄지어다!

이용도 목사님은 사랑의 철학을 말하지 아니하고, 사랑을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랑을 몸소 실천하시는 일에 온 열정을 쏟으셨다. 피를 토하면서 사랑을 외치시고 그렇게 사시려고 노력하였고, 또 그렇게 사시면서 사랑은 인간의 최고 목표라고 하셨다. 신앙과 생활은 하나이고 그 연결선은 사랑이므로 사랑으로 하지 아니한 모든 말과 행실은 상급 없는 허위라 하셨다.

남녀간의 애정을 극복해야

주일학교 선생들이 무슨 심리학이나 교육학을 배우기 전에 먼저 회개하고 죄에 빠지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믿음 없는 청년 남녀들이 모여서 활동이나 사업을 한다는 것은 죄악의 기계노릇이나 하고 마귀의 밥 노릇이나 하는 결과를 냅니다. 먼저 예수님의 피 공로를 배우고 주님의 사랑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로써 아동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주일학교 일을 맡은 적이 있는데 거기서도 남녀가 섞여서 일을 했습니다. 그중에 예쁘게 생긴 여 선생이 나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하면서 선생님!” 하고 부를 때, 그 소리는 피아노 소리보다 더욱 내 마음을 요동시켰습니다. 교회일로 한 주일에 한 번씩 만나다보니 그만 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자꾸 만나다보니 늘어가는 정은 고무줄과 같아서 점점 더 큰 무엇이 잡아당겼습니다. 정이 들면서 보이지 않는 줄은 선생님이라는 말을 삼켜버리고 누님이라 부르게 하면서 죄악의 줄은 매듭을 지어갔습니다. 그러다보니 주일학교에 대한 정성은 점점 없어지고 육신의 정만이 동하여 실상은 누님을 만나러 교회에 가게 되었고, 누님만 만나면 주일학교 교사의 사명은 다한 것같이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전에는 구멍 난 양말이나 꿰맨 신발도 만족스러웠는데 웬일인지 세세히 그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치의 마귀가 눈짓을 한 것이지요. 누님 보기에 부끄러운데그래도 누님이 보고 싶으니 가자!

이렇게 되자 한 주일에 한 번씩 교회서 만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핑계를 만들고 이유를 꾸며서 한 주일에 몇 번씩 딴 곳에서 만나게 되니 애정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져서 누님을 안 보고는 애가 타서 잠시도 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도 내던지고 예수님도 좀 있다 보기로 하고 그저 누님만 붙들고 매달리며 허덕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것 큰일 났구나!’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정신이 나서 이놈이 이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소서!” 하고 부르짖을 때에는 벌써 시기가 늦어 죄악의 큰 세력에 꼼짝할 수가 없게 되어, 잠을 잘 수도 없고 밥을 먹을 수도 없어 차라리 자살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못된 것을 죄인의 친구이시며 또 구주이신 주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겨우 그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무용한 고생을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남녀 사이는 꼭 조심해야 하고 구분해서 살아야 합니다. 평생 귀중하게 지키며 생명보다 더 귀중히 여기던 것을 상실하면 온 천하를 주고도 돌이킬 수 없는 허망함이 옵니다. 남녀가 처음 음행을 할 때 산천이 웁니다. 주님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남녀 간의 애정은 철저히 끊어버리고 멀리해야만 합니다.”

다른 생각은 다 버려야

주님을 따르는 일은 다른 노릇 다 하면서 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노릇 다 그만두고 다른 생각 다 내어버리고서야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넥타이가 바로 매어졌나 해서 거울을 몇 번이고 보는 사람의 성경책은 먼지가 푹푹 쌓이게 됩니다. 콧등에 바른 분이 닦여지지 않았나 해서 거울을 들고 다니며 길에서까지 보는 여자의 마음에 예수님은 안 계십니다. 예배당에 와서도 저고리 뒤가 뒤집히지 않았나 해서 잔등만 만지는 동안에는 그 속에 주님이 계시지 못합니다.

누더기를 입고 세수를 안 했으면 어때요. 새 옷을 입어 곱게 차리고 옷에 정신을 빼앗겨 주님을 잊는 것보다는 마음대로 엎드리고 되는 대로 뒹굴 수 있는 헌옷이 주님에게는 얼마나 곱게 보이는가요. 나에게 가장 원하는 바가 하나 있습니다. 입은 옷 한 벌 그대로 손에 성경 찬송만 들고 끝없이 나그네의 길을 떠나고 싶은 것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혼자서 찬송하고 사람을 만나면 전도하고 저녁 해가 서산에 지면 바위틈에서 마음껏 정성을 다해 기도드리다가 곱게 깔아 놓은 잔디밭 위에 누워 고운별을 바라보다가 주님 품에 잠드는 것이 나의 소원입니다. 일생에 이런 시간이 한 번이라도 내게 찾아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영이 평안하려면 육에 고통을 주라

영이 귀해지려면 육을 천하게 하라

영을 즐겁게 하려면 육을 슬프게 하라

육신의 명예는 영의 치욕이니라

육신의 환락은 영의 비애니라

먹어야 좋고 입어야 만족하고

남녀가 어울림으로 얻는 기쁨은 육에 속한 일이니라

육에 죽고 영에 살고 땅에서 천하고 하늘에서 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