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레기 은혜라고 좋사오니


새벽예배를 마치고 오면 으레 극동 방송채널에 맞춘 라디오를 켠 후에 아침 일과를 시작한다. 그날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찬양을 따라 부르기도 하고, 주시는 말씀에 아멘을 하며 분주하게 집안 청소와 식사준비를 했다. 방송국에서 주관하는 나흘간의 치유 집회가 그것도 집에서 자가용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교회에서 열린다는 광고가 흘러나왔다. 무척이나 좋은 기회다 싶어 꼭 참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교회 집사님이 치유집회 소식을 듣고 함께 가자고 하셔서 몇몇 분이 집회에 참석하였다.

이미 성전 안은 병이 낫기를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 찬양과 어우러져 뜨거운 열기로 후끈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성령의 충만한 임재로 두 손을 높이 들고 찬양과 기도를 하시는 분들, 목사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 큰 소리로 아멘하며, 손을 번쩍 드시는 분들의 모습을 통해 참석하신 분들의 간절함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래도록 기도하여도 낫지 않는 질병으로 인해 본인과 그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아픔과 고통을 겪어본 자만이 알 것이다.

복음서를 보면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께로 나왔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의 아픔과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아시고 자식을 품안에 품듯 그들을 남달리 챙기시고 고쳐주셨다. 그런데 유독 흉악한 귀신들린 딸을 가진 가나안 여인에게는 냉혹하다 싶을 정도의 모습을 보이셨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당국으로부터 파견된 바리새인과 서기관과의 첨예한 정결법 논쟁을 하신 후 그곳을 떠나 두로와 시돈 지역으로 가셨다. 그때 가나안 여인 하나가 예수님께 나아와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렸으니 고쳐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인의 계속된 외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아무 말씀이 없다. 여인이 계속 소리를 지르자 제자들이 귀찮은 듯 여인을 쫓아내고자 하고, 예수님마저 여인에게 자신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위해서 온 자라고 말씀하시며 치유를 거절했다.

하지만 여인은 이에 굴복하지 않았다. 예수님 앞에 와서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며 끈질기게 매달린다. 그러자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고 말씀하시며 여인이 듣기에 매우 거북한 말로 거절하셨다. 그럼에도 여인은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하며 주님께 은혜의 부스러기라도 달라고 요청한다.

이 말씀을 읽을 때, ‘주님께서는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며 믿음을 시험하신 후에 치유를 하셔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후에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의 뜻을 깨닫고 이렇게 기도하곤 했다. ‘주님, 제가 개가 돼도 좋사오니 부스러기 은혜라도 주세요.’

그런데 치유집회 둘째 날에 이 말씀을 설교 본문으로 선포하셨다. 말씀을 듣는데 이 말씀을 가지고 주님께 기도했던 것이 떠올랐다. ‘개가 돼도 좋으니 부스러기 은혜라도 내려달라고 했는데 과연 나는 얼마나 낮아져 있는가?’ 부끄럽게도 여전히 목이 곧은 자녀로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육신이 병들면 여러 가지 환경에 민감해진다. 관심을 받지 못하고 무시되거나 혹은 비난을 받으면 육체적인 환자가 통증을 느끼듯 영혼은 아파한다. 이는 자기 애착에서 오는 것이다. 자기 애착은 사고의 중심이 오직 자신에게만 향해 있어서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행할 수 없다. 자기 애착은 감추어진 아집과 교만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성장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 이런 자기 애착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주님은 우리에게 아픔과 상처와 굴욕의 환경들을 허락하신다. 이때에 자신에게 사랑과 가치 인정과 명예를 요구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것이 쉽지 않다. 그러니 가나안 여인의 믿음이 얼마나 큰가. 예수님은 처음부터 이 여인이 자신을 그렇게 믿고 따르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겠지만, 여인의 입장에서는 이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 세 번이나 아주 모욕적인 방법으로 거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믿음을 보여주었다.

이번 집회를 통하여 주님은 나에게 상한 심령과 통회할 수 있는 은혜를 내려주셨다. 예수님을 감동시킨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통하여 지혜와 겸손을 배워 영혼이 익어가기를, 바실레아 슐링크의 기도를 빌어서 기도해본다.

나는 이후 다시는 존경받으려 하지 않겠으며, 사랑과 명예와 이해를 얻으려고 노력하지 않겠으며, 오히려 비난과 책망을 받아들이겠나이다. 나는 내 자아와 자아의 욕구가 메말라 없어지고, 내 마음 안에 예수님의 자리를 마련하고 자신의 욕구가 소멸됨으로써, 자신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찾으신 주님의 사랑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나이다. 나로 하여금 주님의 길을 걷게 하시고 주님께 열매를 가져가게 하소서. 나는 주님의 말씀을 믿나이다. 제 목숨을 보존하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주님 때문에 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얻을 것입니다.”

박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