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존재의미를 다시 찾고자 한다면

bcbab0e6b0fac7f6bdc73.jpg 성령이 충만할 때면 주님과의 친밀한 교통 속에서 철저한 생활을 해 나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영적으로 약해져 서서히 무기력과 침체에 빠지게 되고, 자신이 살아가야 할 이유나 존재 의미마저도 점점 희미해진다. 급기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버겁고 힘들어진다. 인간의 연약한 실상이다.

의미(logos)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프랭클 박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내가 살아가야 할 존재 의미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2차대전 당시 나치는 600만이 넘는 유대인들을 학살했다. 나치는 매일 강제수용소로 끌려온 수인들 중에 생기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가차 없이 가스실로 보냈다. 수인들은 매일 아침 멀건 수프 한 그릇과 빵 하나를 먹고, 하루 종일 뼈를 깎는 노동을 해야 했다. 잠자는 막사 안은 악취와 불결한 위생으로 최악이었다. 하지만 그는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생사의 엇갈림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잃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는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수시로 자신과 수용소를 철저히 분리시키는 일을 했다. 상상 속에서 생사를 모르는 아내와 자주 만나 대화하면서 사랑을 느끼고 종종 눈물도 흘렸다. 때로는 자신이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감격하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몸뚱이 하나 간수하기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다른 사람에게 빵 한 조각을 건네는 사람들, 위로와 격려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 누구도 어떤 환경도 자신의 자유의지를 빼앗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많은 현인들이 최고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라는 것을 알았다.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는 의미를 깨달았다.

정신과 전문의였던 그는 수용소에 끌려가서 끔찍한 고통을 당했지만, 그 체험적 바탕으로 로고테라피를 창안했다. 로고테라피는 헬라어 ‘logos’(의미)‘therapy’(치료)의 합성어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야 할 의미를 찾는 존재이며, 또한 그 존재 의미를 찾아가는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이다. 그는 수용소에서 생의 의지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다시 그의 존재 의미를 되찾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사도요한은 예수님을 말씀, 로고스(Logos)로 표현하고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로고스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로고스는 곧 하나님이시니라. 만물이 로고스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1:1,3).

이 우주의 신적인 로고스(의미)가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다. 따라서 그 피조물인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게 된다. 이 존재 의미를 상실하게 되면 우울하고 절망하다가 죽게 되지만, 그 의미를 끝까지 붙들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능히 극복할 수 있다. 그렇게 극복했을 때 비약적인 성장과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빅터 프랭클 박사는 몸소 체험했다.

의미를 찾아서

우리가 성경의 진리를 처음 들었을 때 그 첫사랑과 열정이 얼마나 뜨겁고 열렬했던가. 지극히 작은 죄도 철저히 회개하면서 빛 가운데 살려고 몸부림치지 않았나. 연단을 받아 정결케 되어 익은 열매가 된다는 그 의미가 너무 감격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영적인 저항력이 서서히 약해지고 무기력과 권태에 빠져들었다. 이제는 익은 열매라는 신앙의 목표도, 내가 감당해야 할 사명도 그 의미가 점점 희미해졌다. 양심의 빛이 있으니 육적인 행복도 그리 편치가 않다. 어떻게 다시 내 존재 의미를 새롭게 할 수 있을까?

매년마다 가을이 되면 수확을 끝내고 몇 달간 구급약과 기부한 옷가지를 챙겨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 섬으로 향하는 농부 부부가 있다. 70이 넘은 오정면 장로님과 문달님 권사님은 지난 20여 년 동안, 혹독한 더위의 정글을 돌아다니며 원주민들에게, 농사법을 전하고 아픈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해왔다.

장로님은 새벽 3시 반이면 일어나 연습장에 단어와 문장을 빼곡하게 채우면서 인도네시아어를 공부한다. “제가 그들을 돕는 게 아니라 그들이 저를 받아준 거예요. 그러면 저도 그들 말을 이해해야지요. 동 트기 전까지 쓰고 또 씁니다.” 권사님은 그 시간에 원주민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드린다. 또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죽어가는 아이들을 한국으로 데려와 수술 받게 했다. 병원비로 자식들의 축의금을 몽땅 써버려도 아깝지가 않았다.

주님 안에서 느끼는 보르네오를 향한 사랑과 사명이 매년 다시 그곳을 찾게 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이 사랑과 사명은 일상의 고단함을 이기는 그들만의 의미가 된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속에서도 내가 살아가야 할 의미나 가치를 찾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비약적인 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 의미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든, 내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든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 어디서나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자유의지를 주셨다. 빅터 프랭클은 강제수용소에서 그것을 깨달았다. 그는 혹독한 추위·굶주림·죽음의 공포 속에서 아내에 대한 사랑과 로고테라피로 수인들을 섬기면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존재 의미를 몰라 방황하는 이들이 선택하는 대부분의 해결책은 애정과 욕망에 빠져 자신을 아무렇게나 방치한다. 그래도 의미를 찾지 못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다.

의미는 때로 찾아내야만 하는 보물과도 같은 것이다. 무엇이 나의 의미가 될지는 찾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 같은 것이다. 나는 지난 20대 후반 경희대(경영학과) 2학년 시절 경쟁과 의식주에 매여 사는 현실이 무의미하고 힘들었다.

3학년 새학기를 앞둔 그해 겨울, 친구의 소개로 진리를 찾았다.  십자가에 달린 로고스의 사랑이 벅찬 감격 속에 내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했다. 그리고 나는 신학교로 편입하여 지금은 목회자가 된지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우주와 만물의 로고스인 주님 안에 무기력과 권태와 절망을 이기고 내가 계속 살아가야 할 이유와 존재 의미인 사랑과 사명이 있다. 로고스(주님·의미)를 붙들고 기도할 때 무기력·권태·절망을 이길 수 있는 소망과 은혜가 다시 임하리라. 삶의 존재 의미를 다시 찾고자 하는 그대에게 주님(로고스)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