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불씨만 남아있을지라도

bfb5bcbac8c6b7c312.jpg 찬 서리 내린 겨울바람에 마지막 나뭇잎이 떨듯, 내 육신은 힘도 없고 기운도 다 빠져 버렸다. 꺼져가는 등불과도 같다. 불꽃은 다 사라지고 작은 불씨만 남아 연기만 난다. 빛을 발하지 못하고 연기만 피우는 것이 작은 내 육신을 닮았고 수많은 인생들과도 같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찾아주지 않아 꺼져가는 불씨. 힘없고 연약한 불씨. 바람에 이리 저리 날리는 작고 힘없는 불씨들. 이 추운 겨울, 지금 어디선가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슬픈 인생들이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정처 없이 방황하고 있지는 않을까.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벧전1:24). 우리의 인생은 풀의 꽃과 같은 인생이다. 아무리 아름답던 장미꽃도 열흘이 지나면 시들어 밖에 버려지게 된다. 우리 나그네 인생은 초로와 같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4:14). 우리의 인생은 아침 안개와 같고 흙과 같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3:19). 우리 모두 다 오래지 않아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어제 밤, 엄두섭 목사님의 사모님이 소천 하셔서 서울 아산병원에 다녀왔다. 사모님을 막상 떠나보내고 혼자 있으니깐 그렇게 허망할 수가 없다고 96세 되신 노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육십 평생을 같이 살아오다 집사람이 먼저 세상 떠나니까 마음이 그렇게 허망할 수가 없어요. 내가 먼저 갈 줄 알았는데 이 사람이 먼저 갔어요.” 오랜 친구 같은 분을 하나님 나라로 떠나보낸 허전함과 애잔함들이 느껴졌다. 목사님과 밤늦게까지 대화를 하다 돌아왔다.

꺼져가는 인생에 집착하는 우리 인생. 사랑과 미움과 질투의 줄을 놓아라. 탐욕도 명예도 쾌락도 놓아라! 그러면 꺼져가는 등불 속에서 불꽃이 다시 피어오르리라. 우리의 꺼져가는 심지가 기름이 다 떨어지도록 바쁘게 살아왔다. 그러다 기름이 다 떨어져 가는지도 모르고 살아왔다. 꺼져가는 등불에 불을 피우지 못하고 연기만 풍겨댄다.

다 꺼져버린 인생. 지난날 그 화려했던 꿈은 다 사라지고 지금은 아무 힘도 없고 꺼져가는 등불. 인생에 속지마라. 눈물에도 속지 말고 웃음에도 속지마라. 권위와 위협에도, 속절없는 인생에 속지마라. 우리 인생이 며칠이나 된다고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 이 세상일은 모두 뜬 구름과 같다.

지금 이 세상은 상한 갈대처럼 상할 대로 상해있고 꺼져가는 등불처럼 잿더미 속에서 연기만 피어오르는 것 같다. 절망과 좌절, 자살, 이혼, 동성애, 세월호 사건, 땅굴사건과 전쟁설. 날이 갈수록 죄악은 더 관영해가고 사람들의 인심은 더 흉흉해지니 풍전등화와 같다. 해외로 도피하려는 사람들마저 생겨나고 있다. 이 꺼져가는 민족의 혼을 누가 다시 붙들 것인가. 과연 누구인가? 돈도 명예도 권세도 위정자나 대통령도 그 누구도 아닌 오직 우리 예수님 한 분뿐이다. 주님만이 우리 민족을 다시 살려 밝은 빛을 비추게 할 수 있다.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예수님은 우리 안에도 기적을 일으키신다.

1948년 여수, 순천 사건시 좌익 학생들에 의해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은 끌려가게 되었다. 동인과 동신은 예수를 버리고 전향하라는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며 주님을 증거 하다가 결국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손양원 목사는 두 아들이 순교하여 하늘의 영광을 차지하게 된 것을 감사하며, 오히려 아들을 죽인 자가 멸망을 면치 못할 것을 안타까워하였다. 그리하여 국군에 붙잡혀 사형 직전에 있는 범인 안재선을 구 당국에 설득하여 데려다가 기르기로 했다. “네 과거의 죄는 기억 안 할 테니 하나님 앞에 잘못을 뉘우치고 예수님을 믿어 훌륭한 일꾼이 되어다오. 내 죽은 두 아들이 할 일을 네가 대신해야 한다.” 재선은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릴 뿐 입을 열지 못했다. 도둑 오네시모를 바울의 심복으로 탈바꿈시키시듯 하나님의 사랑이 깃든 곳에는 회복의 역사가 있다.

우리의 인간 생활은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낡은 것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변화가 있어야 한다. 매일매일 순간순간 새로워져야 한다. 사람마다 분초마다 걸음걸음마다 호흡호흡마다 새로워져야한다. 독일의 괴테는 인간이 절망하는 곳에는 어떠한 신도 배겨내지 못한다.”고 했다. 꺼져가는 절망 앞에 다시 일어나야 한다. 다시 살아나야 한다. 한번만의 전진이 아니다. 이 땅에서 저 하늘까지 우리는 수만 번 수억 번의 전진을 계속해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횃불은 결코 꺼지지 않는다. 우리 개인의 신앙도 결코 끄지 않으시고 다시 살리셔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온 세상을 밝히는 밝은 빛의 등불이 되게 하셨다. 새로운 생애를 낳으려고 해산의 고통과 단장의 아픔이 따른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내 생애가 그만치 값진 만큼 큰 아픔이 따른다.

아무리 깊은 어둠이 우리를 가로막을지라도 주님 사랑의 불꽃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주님은 단 한 번도 우리의 손길을 놓으신 적이 없으시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시는 성실하신 우리 주님은 연기 나는 심지도 결코 포기치 않으신다. 불꽃이 다 사그라진 작은 불씨라도 예수님께서는 멸하지 않으시고 사랑의 숨결로 불어서 빛을 발할 수 있는 등대를 만드신다. 아무리 사람의 눈에는 소망이 없어 보이더라도 주님은 인간의 깊은 내면에 있는 1%의 생명력, 작은 불씨를 보신다. 양심이 아주 죽지는 않았다. 주님께서는 이 작은 불씨를 일으켜서 회개케 하시고 새사람을 만드신다.

존시와 수는 예술가 마을에 사는 친구사이다. 폐렴에 걸린 존시는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점점 더 쇠약해져만 간다. 의사는 존시가 살 수 있는 가망이 열에 하나 정도라고 하고 그나마도 살아갈 의욕이 있을 경우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어느 날부터인가 존시는 창 밖에 있는 무언가를 자꾸 세 간다. 다만 거꾸로 셀뿐이다. 뿌리가 썩고 마디가 뒤틀어진 담쟁이덩굴에 있는 잎들을 세고 있었다. 담쟁이덩굴에 붙어있는 마지막 잎새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고 한다. 그날 밤은 비가 몹시도 많이 내렸다. 수는 드디어 마지막 잎새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죽음을 준비하던 와중 존시는 다음 날이 되어도 그 잎새가 떨어지지 않은 것을 보고 죽기를 원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것을 깨달아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드디어 존시는 점점 회복되어 가고 나중에는 완전히 회복된다. 그 날, 수는 존시한테 버먼이 오늘 병원에서 죽었다는 말을 한다. 그는 당시 완전히 몸이 젖어있고 몸이 얼음장처럼 싸늘한 상태였다.

아무도 그가 어디 있었는지 모를 상황이었지만 사실 비가 몹시 내렸던 그날 밤, 늙은 화가 버먼은 마지막 잎새가 떨어진 것을 보고 그 잎새를 그려 놓았다. 결국 버먼은 걸작을 남기고 떠났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 나온 일부분이다.

수도실 창밖으로 한 잎 남은 은행잎이 보인다. 내년 봄을 기약하는 소망의 마지막 잎새다.

올 한해를 인도해주신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꺼져가는 등불처럼 방황하는 이들에게 다시 성령의 불길이 타오르게 해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한다. 우리 삶의 마지막 잎새는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나무이신 주님께 꼭 붙은 가지이기 때문이다. 금년에도 그대로 두시면서 오래 참으시는 주님, 새로운 일을 만들어 가시는 주님, 그 주님께 붙은 우리 삶은 작은 불씨처럼 흩날리는 믿음을 가졌을지라도 낙심할 필요가 없는 복된 인생들이다.

박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