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내 방법은 통한다

갈 길은 조급하고 적군은 집 마당까지 밀려와 군사들은 동요되어 떨고 있는데 오늘따라 사무엘 선지자는 시간 맞춰 오지 않는다. 초조한 나머지 왕이라는 당당한 자세로, 그러나 할 수 없이 제사를 주관하는 월권을 행사하고 말았다(삼상13:9). 이 일로 사울왕은 신성 모독죄를 지었고 버림받는 비운의 왕이 되었다. 하나님의 손에서 왕권을 빼앗아 인간의 법을 세워 우리 왕 만세!’를 부른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스라엘 임금은 힘을 잃은 것이다. 조급하다고 하나님의 방법을 함부로 무시한 서글픈 대가였다.

풋풋하고 싱그러운 멋쟁이에게도, 지략과 경험이 풍부한 모사와 미국 대통령에게도 여전히 내 방법은 네게도 통한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55:8-9).

인간 욕구가 내면세계를 야금야금 파먹어 들어가기 시작하면 짜릿한 흥분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천 년이나 써먹은, 고리타분해 보이는 원시적인 성경원리를 살며시 밀어내고 싶어진다. 드디어 현대 조류에 편승하는 변질을 흡수하고야 만다. 괄호 밖 외도로 재미를 줍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해묵은 때가 몸에 누적되고 싹싹 벗겨 내야만 겨우 살 수 있는, 도피할 수 없는 골목까지 오게 된다. 세상 풍속으로 비곗덩어리같이 온몸을 포장하고, 이중인격의 살덩어리, 탐욕과 나태함의 썩은 피가 탁류처럼 흐르는 영적 고혈압 환자가 되고야 만다.

베드로는 십자가 없는 복음의 승리를 인류를 대표해서 청탁했지만, 예수님의 고집은 친히 십자가의 희생으로(벧전2:24) 결판내셨다. 그 뒤를 이은 바울은 십자가 이외의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그 십자가 시상에 맞는 방법을 총동원하여 걸출한 업적을 남긴 정품 선교사가 되었다. 성경 진리대로만 집행하는 외고집이었다. 모세도 십자가와 거의 맞먹는 겸손을 처세술로 삼았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 하더라”(12:30).  


당장 이스라엘 백성을 결딴내실 것 같은 하나님의 진노하신 얼굴을 환하게 풀어드릴 수 있었던 비결은 나는 죽어도 좋으니 차라리 나를 지옥 불에 던지시고 저들만은 제발 살려 주옵소서.”(32:32)라는 기도였다. 바닥에 엎드려 울먹이는 모세의 처절한 기도가 하나님을 감동시킨 것이다.

늦지 않았다. 방황한다고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녹슨 문도 삐걱거리며 열리는 법이다. 아브라함은 늦은 나이 75세에 시작했다. 내면 깊은 곳의 자물쇠가 부서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리도록 이제 걷어차고 벌떡 일어나라.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은 몽땅, 모조리 변했다. 다락방 출신이 되어라. 영성은 예수님 닮는 것이다. 예수님 걸으신 길을 같이 걷는 것이다 


예수님과 통하지 않으면 만사 불통이다. 영혼의 급소에 칼을 대라. 주님을 꼭 껴안아라. 특별한 기쁨과 방법을 끌어낼 줄 알았던 수도사들을 흠모하라. 이마에서 피로 얼룩진 진땀을 토해내시면서 밤새 울부짖었던 예수님의 핵심적인 기도는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였다. 그렇다. 오직 주님의 방법 그것이다.

이동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