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이 사랑하는 길

우리 사랑하는 형제들아

알지어다 우리 주 예수께서 세상에 내려 친히 무수한 고난을 받으시고 괴로운 가운데 거룩한 교회를 세우시고 고난 중에 자라나게 하셨다. 그러나 거룩한 교(聖敎)에 말씀하시되, ‘작은 털끝이라도 주께서 돌아보신다하고 모르심이 없어 돌보신다하였으니, 어찌 이런 환난이 주님의 명령(主命)이 아니면 주님의 벌(主賞主罰)아니랴, 주의 거룩한 뜻(聖義)을 따라오매, 온갖 마음으로 주 예수 대장의 편을 들어, 이미 항복받은 세속 마귀를 칠지어다.

이런 황황(遑遑)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 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 부디 서로 우애(友愛)를 잊지 말고 돕고, 아울러 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환난을 앗기까지 기다리라. 할 말이 무궁한들 어찌 지필(紙筆)로 다하리.

우리는 미구에 전장에 나아갈 터이니 부디 착실히 닦아 천국에 가 만나자. 마음 사랑하여 잊지 못하는 성도들에게, 너희 이런 어려운 시대를(難時)를 당하여 부디 마음을 허실히 먹지 말고 주야로 주님의 도우심을(主祐) 빌어, 마귀를 대적하고 어려운 환난을 참아 받아 지금의 어려움을 잘 극복하라.

이런 환난 때는 주의 시험을 받아, 세속과 마귀를 쳐 덕공(德功)을 크게 세울 때니 부디 환난에 눌려 항복하는 마음으로 사주 구령사(事主救靈事)에 물러나지 말고, 오히려 지나간 성인 성녀의 자취를 만만 수치(修治)하여 거룩한 교회의 영광을 더하고 하나님의 착실한 군사와 의자가 됨을 증거하고, 비록 너희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저의 긍련(矜憐)하실 때를 기다리라.

할 말이 무수하되 거처가 타당치 못하여 못한다. 모든 성도들은 천국에 만나 영원히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랑을 친구(親口)하노라.

이런 환난도 또한 하나님의 허락하신 바니, 너희 감수 인내하여 오직 주님을 위(爲主)하고 오직 주께 슬피 빌어 빨리 평안함을 주시기를 기다리라.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 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상 주실 것이니, 부디 설워 말고 큰사랑을 이뤄,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사후에 한가지로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천만 바란다.

 


이 글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였던 김대건 신부가 순교를 앞둔 며칠 전 교우들에게 남긴 편지(廻諭文)의 일부다. 죽음에 직면하여서도 한 점 흐트러짐이 없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명에 충실하여 교우들을 가르치는 내용을 볼 수 있다.

기해박해(1839)로 인하여 많은 이들이 순교하였고, 성직자들도 모두 순교하였던 상황에서,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며 신앙생활을 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한 때에, 성도들을 독려하며 끝까지 믿음 지키기를 당부하는 한마디 한마디에 결연한 마음이 묻어난다. 주님을 의지 삼아 당부하는 사랑의 마음이 절절하다.

이러한 환난을 당하는 것도 주님의 뜻이라는 대목이 깊은 공감을 준다. 지금 우리나라에 당면한 갖가지 문제들을 볼 때, 환난이라 칭해도 과하지 않은 듯하다. 박해시대 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애매하게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닌 정과 욕심에 빠져 스스로 고난 받을 일을 만들었다고 해야 할까. 이런 환난도 또한 하나님의 허락하신 바니, 너희 감수 인내하여 오직 주님을 위(爲主)하고 오직 주께 슬피 빌어 빨리 평안함을 주시기를 기다리라. 언제 어느 때에나 주님의 위로는 한결 같다. 주님을 위하고 그분의 뜻대로 되길 기도하며 천국에서 만나자는 것.

우리가 보고 듣는 수많은 일들이 환난이라는 단어로 요약되는 시대지만 답은 또 하나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하고 주님의 위로와 평안을 빌며 나아가야 한다. 그 뿐이다. 잘 견디고 극복하여 천국에 이르러야 한다. 그 뿐이다.

거룩한 땅의 은혜

지난 1115, 청소년 영성학교 학생들과 함께 성지순례를 했다. 충남 예산과 당진 일대를 돌며 순교자들의 정신을 생각했고 거룩한 피의 길을 걸어 보았다. 성지(聖地)라는 말은 거룩한 땅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밟는 모든 땅을 성지라 이름 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이스라엘과 활동하셨던 곳들, 그리고 거룩한 행적을 이룬 분들이 태어났거나 활동했던 곳들을 우리는 성지라 부른다. 그곳을 간다는 것은, 거룩한 땅을 밟으며 그 거룩함을 묵상하고 기억하며 닮아가고 싶은 마음의 소원을 담는 일이라 하겠다.

다행히 천주교에서 만들어 놓은 성지가 우리나라에는 많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우리 신앙의 연약함을 잡아주고 견고한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곳곳에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오고 박해를 받으며 신앙을 지켜 나가던 분들이 낙엽처럼 목숨을 잃어가던 박해시대 때, 그들의 순교의 피를 거룩하게 여겨 만들어 놓은 곳이 그곳들이다. 충남 예산의 여사울 성지, 신리성지, 당진의 솔뫼성지, 해미의 해미성지, 그리고 광천을 조금 지나 가다보면 갈뫼못 이라는 성지도 있다. 그곳들에 가면 십자가가 있고 순교자들의 행적이 기념되어 있고 예수님을 위해 사는 기쁨이 느껴진다. 오직 예수님으로만 살다가 예수님 때문에 죽임을 당하거나 살았던 분들의 영적추억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손양원 목사님을 기리며 그분의 기념관이 세워져 많은 이들의 마음을 붙잡는 이유도 매 한가지다.

순교한 자리, 그 거룩한 삶을 살았던 이들이 태어난 동네, 활동했던 곳, 더구나 주님을 위해 목숨을 잃었던 곳은 기념하여 거룩한 땅으로 정해 놓는 다는 것은 이 황폐한 시대에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그곳을 밟는 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고 옷깃이 여며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많은 성도들이 매해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고 활동하셨던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가는 이유일 것이다.

분도 요셉 라브르. 1748년에 태어나 1783년의 짧은 생애를 사신 분이다. 엄률(嚴律) 수도회에 입회하여 고행의 삶을 살고자 하였지만, 특이한 성격과 건강상 맞지 않아 탈퇴하고 1770년 로마 순례를 시작하였다. 맨발로 구걸하면서 보낸 순례여행은 생각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방랑생활을 하면서 세상 한가운데서의 복음실천을 자신의 소명으로 느껴 남들 보기에 갖춰진 직분, 계획을 다 포기하게 된다. 그 후 6년 동안 로레토· 엑스· 아씨시· 바리· 아인지에델른· 콤포스텔라 등 유럽의 성지들을 계속적으로 순례하였다. 늘 맨발로 다녔고, 누더기 망토와 몇 권의 책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거지 행색이었으므로 미친 사람 취급을 받거나 중상과 비방을 당하기도 했다. 오랜 순례 동안에도 몇 시간씩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고, 며칠씩 외딴 곳에서 기도하며 지내곤 하였다. 낮에는 기도로, 밤에는 폐허가 된 콜로세움에서 지내곤 하였는데,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아 몸이 많이 쇠약해졌다. 1783년 사순절 주간 화요일, 내내 기도로 보내고 다음날 수요일도 다시 기도하러 예배당에 갔다가 쓰러져 35세의 젊은 나이로 하나님 품에 안겼다.

어디에가 아닌 무엇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 자기를 포기하는 마음을 영성 생활의 비결로 삼은 라브르, 그가 죽은 지 100년이 지난 1883년 그는 성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분도 요셉 라브르는 왜 일생을 거룩한 땅을 밟으며 기도와 고행으로 보내야만 했을까. 그는 거지라 불렸지만 거룩한 성인(聖人)의 삶을 살았다. 이에 더 이상의 말이 필요치 않다. 하나님은 우리 몸을 거룩한 성전이라 하셨다. 우리 몸이 거한 곳은 어디인가. 이제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말하지 않아도 되는 질문이 아닐까. 거룩한 곳은 어디인가. 네가 선 땅은 거룩한 곳이니 신을 벗으라 말씀하시던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가. 당신이 어디에 있는가는 중요치 않다.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를 보라. 거기에 삶의 답이 있다. 보다 더 높아지고 깊어지는 일,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장소도 직분도 그 무엇도 아닌 삶이다.

이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