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미명에 내리는 은혜

bfb5bcbac8c6b7c311.jpg죄인 중에 괴수인 내가 삶을 바꾸게 된 계기는, 사도 바울처럼 결혼도 않고 주님만을 위해 사신다는 병상의 증거자 선생님의 성결한 삶을 안 후였다. 충격에 휩싸여 모든 것을 뒤로하고 골방에 들어가 밤새도록 기도하며 주님을 불렀다. “주님, 어떻게 합니까! 주님, 난 어떻게 해요?” 엎치락뒤치락 하던 새벽미명에 주님께서 나타나셨다. 주님 발 앞에 엎드려 울며불며 몇 시간을 기도했는지 모른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버렸다.

그 이후, 가족들에게는 바보천치로, 교회에서는 미친 광신자 취급을 받으며 쫓겨났다. 결혼을 며칠 앞두고 변해버려, 예수님께 미쳐버린 자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에서 버려진 고아 같은 마음으로 삼각산 능력봉에 올라가 밤새 울다가 새벽 미명에 동이 터오면 머리에 하얀 서리를 말리며 찬양하며 내려왔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내 삶의 전부이신 주님을 사랑합니다.” 가방하나 메고 탁발하면서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 곳, 예수님이 좋아서 세상 것을 버리고 주님과 함께 살았다. 눈물 없이 못가는 길, 피 없이 못가는 길, 오직 주님 사랑에 감사하며 살았다.

신학교 시절, 갈 곳 없어 가난한 지하 교회에서 탁발 노숙하며 살았다. 교회 맨 뒤 장의자에서 기도하고 책 보고 자고 그 곳이 내 삶의 공간이었다. 신학교 졸업할 때까지 그곳에 살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나중엔 그 자리에 곰팡이가 다 슬었다. 새벽예배를 마치면 졸음을 이겨보려고 애를 써도 잘 이기지 못하고 있을 때는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라”(1:35)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 성경을 들고 안양 갈멜산 기도원까지 걸어갔다. 그때부터 새벽예배를 마치면 갈멜산 기도원을 걸어 다녔다. 새벽잠이 많아 기도를 제대로 하지 못한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혹독한 영성훈련을 받게 하셨다. 2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새벽기도 시간을 주님께 온전히 드리지 못하여 참으로 죄송할 뿐이다.

요즘은, 얼마 전부터 새벽예배를 마치고 수련원 뒷산에 올라간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 하늘의 기쁨을 주신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찌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찌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57:7-8).

동트기 전 새벽시간에 하는 기도시간은 낮 시간보다 더한 기쁨이 있다. 먼동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노라면 생기가 저절로 충전되는 듯하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는 사람은 설레는 새 날을 맞이한다. 이 세상 새벽이 그러할진대 하나님의 새벽을 기도로 맞이하는 사람들에게는 성령이 충만하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어둡던 이 땅이 밝아오네. 슬픔과 애통이 기쁨이 되니 시온의 영광이 비쳐오네.” 찬양이 저절로 나온다.

새벽은 한 날을 살아가는 심호흡이자 버팀목이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서 늘 습관을 좇아 기도하시던 예수님(1:35), 하루 일과를 새벽 미명 기도로 시작하셨다.

존 웨슬리의 새벽기도가 타락한 영국교회를 새롭게 했고, 마틴 루터의 새벽기도가 종교개혁을 일으켰듯이 우리의 새벽기도가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우리의 옷깃은 새벽이슬에 젖고, 엎드린 등에는 서리가 덮이기까지 기도해야 한다.

베네딕또 성인은 수피아꼬 산에서, 프랜시스 성인은 알베르나(Alverma)산에서,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은 만뎃사 동굴에서, 안토니오 성인은 콜짐산에서, 이용도 목사님은 인왕산에서, 주기철 목사님은 평양 돌박산에서, 이세종 선생님은 화순 화학산에서, 이현필 선생님은 지리산 서리내에서, 선생님은 대천 성주산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온 힘을 다해 기도에 힘쓰셨던 분들이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사신 모습대로 살아보자. 성화된 성도들처럼 영성훈련을 해보자.

육체가 본능대로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짐승의 삶이지 인간의 삶은 아니다. 영성을 잃은 그리스도인들은 짠맛을 잃은 소금이라 밖에 버려져 세상 사람들에게 짓밟힐 뿐이다.

종교 지도자, 목사, 선교사, 수도사의 세속적 생활과 게으른 삶은 성도들의 영성을 죽이는 것이다. 같이 망하는 것이다. 이대로 침몰할 수는 없다. 다시 일어나야 한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이제라도 성직자는 개인적 영성훈련과 수도적 영성생활을 해야 한다. 성무일과를 효과적으로 연구 작성하여 철저하게 실천할 때, 자신도 성화되고 성도들도 성화의 길로 갈 수 있다.

어느 성도님은 아침마다 뱃살을 빼기 위해 조깅을 한다고 들었다. 우리는 지금 너무 배불러 있다. 새벽예배를 드리지 못할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있다. 이래선 안 된다. 죽을 각오를 하고 일어나 기도해야 한다.

영성훈련을 하지 않는 교역자와 성도들의 생활은 자율주의에 빠져 질서를 잃고 게으르고 나태하게 되어 열매도 없고, 성화도 없고, 상급도 없다. 그런 성도들이나 교회들은 세속화된 삶에서 세상 축복을 추구하며, 육신의 안일함에 빠져 영적성장도 없고 영적 기쁨도 없다. 이래서는 안 된다. 다시 일어나야 한다.

영성훈련이 약해지면 금방 세속화 됩니다.” 나의 선생님은 항상 철저한 영성생활을 강조하시면서 몸소 실천하며 사셨다. 이제 우리도 예수님의 영성생활을 본받아 예수님을 온전히 닮는 완덕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다시 시작해보자. 우리 주님께서 힘껏 도와주실 것이다.


1. 매일 새벽 예배를 드리고 한적한 산으로 가서 기도한다.

2. 하나님 현존과 임재 가운데 양심을 성찰하고 철저히 죄를 슬퍼하며 회개한다.

3. 관상기도, 하나님 보좌를 믿음으로 바라보고(4)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

4. 영적 독서, 성경, 준주성범, 렉시오 디비나(거룩한 독서)를 한다.

 


매일 새벽, 규칙적인 생활을 반복적으로 3주 만 해보라. 매일 성령의 충만한 삶과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될 것이다. 훈련은 습관을 낳고 습관은 영성을 낳는다. 사람은 연단하고 훈련해야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성경은 우리가 끊임없이 수련생활, 영성훈련 할 것을 강조한다. 철저한 영성생활을 하는 사람은 30, 60, 100배의 많은 성령의 열매를 맺고, 바르게 성장하여 주님나라에 갔을 때 가장 큰 사랑과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천국은 철저히 행한 대로 상주시는 나라이다. 우리의 새벽을 깨워 주님을 만나러 가자.

박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