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공간의 의미

지난 주 한 아이가 몇 주 만에 교회를 나왔다. 나를 보자마자 , 저 안 데리러 왔어요. 3주째 교회 안 나갔었는데라고 하는데 섭섭한 표정이 역력했다. “, 할머니가 반대하셔서 못 갔지.”라고 답변을 하자 , 저만 미워해요. 다들 나만 미워해요.”라면서 나의 품에 아이가 바짝 매달렸다.

그 아이는 다른 교회도 다니고 있었고, 할머니의 반대도 완강했기 때문에 나의 시선에서 조금 멀어진 아이였다. 한편으로 엄마가 없는 그 아이를 보면서 많은 보살핌과 사랑이 필요한 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소 엉뚱하기도 하고 예배 방해도 되고 했던 터라 조금은 내 안에 귀찮은 마음이 살짝 있었나 보다. 하지만 왜 다들 나만 미워해요.”라는 아이의 말에 마음이 아파왔다. 하나님이 나에게 붙여준 자녀였는데, 이런 저런 일로 핑계를 대며 소홀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명분으로 살짝 가린 채 그 아이를 위한 마음의 공간을 남겨두지 않은 나의 이기심과 게으름을 꾸짖고 계셨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예수님의 말씀이 삯군 목자인 나에게 그리고 이 시대를 향한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공간만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 하나님의 자녀를 키우고자 그 공간을 아낌없이 사용하는 아름다운 이들이 우리 앞에 있다.

지금 현시대의 정결은 하나님을 위하여 공간을 남겨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공간은 영적인 자녀를 낳는 것에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를 키우기 위해서 공간을 남겨 놓아야 합니다.” 20년 넘게 수도생활을 하신 어느 분의 고백을 들으며 다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정약용

자녀 교육에 가장 힘써야 할 시기를 고스란히 유배지에서 보내, 아버지로서 직접 자녀 교육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컸던 다산 정약용. 그의 유배생활은 빈곤함과 고통 자체였지만 누구보다 자녀들에게 많은 유산을 남겼다. 유배지에서 두 자녀에게 보낸 편지가 그것이다. 무려 100여 통 넘는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18년이 넘는 유배지 생활 중에도 자녀교육에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또한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수많은 후학들을 양성하였다. 다산은 두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오직 독서만이 살 길이라며 책 읽기를 독려했다. 책을 읽을 때 초서(抄書)’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초서란 책에서 중요한 내용을 뽑아 옮기는 것이다. 또 다산은 둘째아들 학유에게 정리하는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편지로 숙제를 내주기도 했다. 편지 중 일부를 옮겨본다.

너희들은 집에 책이 없느냐? 몸에 재주가 없느냐? 눈이나 귀에 총명이 없느냐? 어째서 스스로 포기하려 하느냐? 영원히 폐족으로 지낼 작정이냐? 너희 처지가 비록 벼슬길은 막혔어도 성인(聖人)이 되는 일이야 꺼릴 것이 없지 않느냐? 가난하고 곤궁하여 고생하다 보면 그 마음을 단련하고 지혜와 생각의 폭을 넓히게 되어 인정이나 사물의 진실과 거짓을 옳게 판단할 수 있는 장점까지 가지고 있느니라.”, “마음속에 보답 받을 생각을 갖지 않도록 해라. 뒷날 너희에게 근심 걱정할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보답해주지 않더라도 부디 원망을 품지 말고(벧전4:9) 바로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이 마침 도울 수 없는 사정이 있거나 도와줄 힘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구나라고 생각할 뿐, 가벼운 농담일망정 나는 전번에 이리저리 해주었는데 저들은 이렇구나!’하는 소리를 입 밖에 내뱉지 말아야 한다(벧전3:10). 만약 이러한 말이 한 번이라도 입 밖에 나오면 지난날 쌓아놓은 공과 덕이 하루아침에 재가 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특히나 그가 부인이 보내온 빛바랜 담홍치마를 책으로 다시 재단하여 자녀들에게 보낸 하피첩은 지금도 후대에 계속 회자되고 있다.

로제

1929, 로제는 태어나자마자 안팎으로 혹독한 추위와 싸워야 했다. 그가 태어난 다음 해, 그의 일가는 아버지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극한 시베리아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영하 65도까지 기온이 내려가는 시베리아 땅. 판결은 종신형이었다. 종신형이 언도되었을 때, 아버지는 매우 침착하게 자녀들에게 말하였다. “사랑하는 아들들아, 놀라지 마라. 침착하라. 이것은 하나님이 인도해주신 길이다. 하나님은 잘못하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조용히 순종해야 한다.”

훗날 그는 고백했다. “나의 아버지는 지상에 있는 것 가운데 가장 놀라운 보물들을 극한의 시베리아로 가지고 가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성경책이었다. 우리들을 지하실로 불러 작은 포켓용 성경을 한 장 한 장 찢어, 입고 있는 옷 안쪽에 기웠다.”

죽음의 땅, 시베리아. 덮을 이불도, 따뜻한 방도 없었다. 숱한 고문과 투옥, 가축 이하의 생활만 있을 뿐이었다. 40살까지 배부름이라는 것도, 15살까지 세상에 단 것이 있는 것도 몰랐던 고통의 땅이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 혹독한 추위와 가난 속에서도 영적 부유함을 자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영적 교훈들과 성경책 그리고 생생히 들려오는 기도소리였다.

사랑하는 하나님, 당신이 여기 계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들은 참으로 몰랐습니다. 당신이 놀라운 추위를 만드셨다는 것을. 이 놀라운 시베리아를 만드셨다는 것을. 하나님 당신의 은혜를 우리들에게 부어주십시오.”

마더 테레사

마더 테레사는 말한다. “적게 가질수록 더 많이 줍니다. 터무니없는 말 같지만 이것이 사랑의 논리입니다.”

더 높이,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가져야만 만족하는 현시대, 우리들에겐 역류하는 듯한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영적이다.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일수록 빈 그릇이 되고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 된다. 그 빈 공간에 하나님으로만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 채워진 만큼 이웃을 향한 나눔은 더 크다. 이 땅의 것을 많이 가졌다고 나눔을 할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다. 이 세상의 것들을 버리고 포기하고 끊어버린 만큼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고, 그 안에서 진정한 나눔이 시작된다.

높은 권세를 누리지 못해도, 넉넉한 문전옥답이 없어도, 자녀들에게 성인(聖人)이 되라고 하던 다산 정약용의 가르침이 빛이 난다. 비록 좋은 환경과 물질을 주지는 못했지만, 자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심어준 로제의 아버지 역시 빛이 난다. 믿음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이 무엇인지 삶으로 재현해주었다. 자녀들은 진정한 풍요로움을 아버지를 통해 보았고 직접 경험하였다.

장 자크 루소의 에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너무 바빠서 도저히 아들을 돌볼 수 없다고 말하는 부유한 아버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는 사람을 사서 자기 의무를 그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돈에 눈이 어두운 인간들이여! 돈으로 아이에게 아버지를 사줄 수 있는가?”

하나님을 위하여 공간을 남겨두어야 한다. 그 공간에 하나님으로 가득 채우라. 그 채워짐이 풍성할수록 나눌 수 있는 것들은 많아진다. 하나님의 자녀를 낳는 영적 어머니로, 하나님의 자녀를 키우는 아버지로, 하늘나라에서 이 세상의 유배지로 보내어진 예수님의 그 절절한 피 묻은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다.

더 많이 누리고 소유하는 세상의 욕망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보다 더 드높은 영적인 열망은 채우면 채울수록 빛나고 보배로운 빛이 난다. 예수님의 붉은 피가 묻은 옷자락에 새겨진 그 절절한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가 날마다 우리를 가르치고 계시니 얼마나 행복한가. 나를 끊임없이 비우면서 보다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는 기쁨의 춤을 추며 우리의 공간을 주님께 드리자. 그 공간에서 얻은 기쁨을 누군가에게 내어주자.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