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들다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 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안도현 가을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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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곳에서의 행복

한 남자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되고 외로운 곳을 찾아 도움의 손길을 주고 싶어서 아프리카 케냐로 선교체험을 갔다. 그런데 케냐의 나이로비는 가난하지가 않았다. 자기가 생각한 진짜 아프리카를 찾고 싶어 알아보던 중, 남수단을 추천받았고 주저 없이 그곳으로 갔다. 굶주리고 폐허가 된 나라, 신에게서 버림받은 땅이라는 남수단의 톤즈. 참혹한 전쟁의 흔적과 온갖 질병에 노출된 채 생활하는 것은 물론 기본적인 예방접종조차 하지 못해서 홍역이나 전염병에 감염된 아이들 투성이인 곳. 세상 속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생명의 불씨가 거의 꺼져 가고 있었고 정말 누군가가 필요한 그 곳. 남자는 모든 열정을 쏟아 부으며 적극적인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진정으로 힘들어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주기만, 한없이 주기만 했다.

그가 톤즈에 병원을 지었을 때, 인근 지역의 사람들까지 100km를 걸어 진료를 받으러 왔다. 밤이나 낮이나 찾아왔다. 그래도 웃으며 맞아주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한센병자를 찾아 정기적인 진료를 했고 신발을 신겨주며 함께 웃었다. 부족 간 과열된 분쟁 속에서 교육받지 못하고 심지어 납치되어 소년병이 되는 아이들을 위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제의 돈보스코 학교를 만들었다. 전쟁과 가난의 고통 속에 부서진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 음악을 가르쳤다. 돈보스코 학교의 아이들은 브라스밴드를 결성하여 연주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고 수단 전체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기도 했다. 한창 모든 일들이 결실을 맺어가려 할 무렵, 한국에 잠시 들렀을 때 그만 말기암이라는 판정을 받고 2년여의 투병 끝에 끝내 톤즈로 돌아가지 못한 채 숨을 거두게 된다. 그의 이름은 이태석. 신분은 사제였다.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하는 것이 나에게 하는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실현하고 떠나간 그의 삶은 지금도 내내 모든 이들에게 거룩한 울림으로 회자되고 있다.

한번 마음을 먹으면 제대로 익힐 때까지 먹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악기에만 매달리는 고집스러움을 가졌다던 분. 하나님은 모든 기질과 성향, 재능까지 남김없이 불태우게 하셨다.

친구가 되어주실래요란 책속에서 아이들을 향한 고민을 적어놓았던 말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살기 가득 한 아이의 눈빛을 어떻게 하면 정상적인 아이의 눈빛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며 많은 고민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하고 그냥 주정만 받아 주고 있다.’

정답을 말하는 사람

일반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대안학교에서 수업을 한 지도 일 년이 되어간다. 일주일에 한번 만나지만 갈 때면 고민을 많이 한다. 수업 시간에 졸리면 무조건 엎드려 자고, 한마디 쓴 소리라도 하면 바로 가방을 들고 교실 밖으로 나가버리기도 한다. 화장을 진하게 하고 와서도 늘 거울을 보느라 바쁘고 공부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재미가 없으면 맘이 가는 대로 행동하고 말한다. 자살시도, 학교폭력, 이성 친구, 우울증, 왕따, 부모의 불화나 이혼 등 그들의 환경은 다양하다. 모든 관심은 쾌락적이고 육적인 것들뿐이다. 왜요? 왜 그래야 하는데요? 라는 말뿐 어떤 말에도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가끔씩 자신들이 왜 기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지 얘기를 할 때면 꽤 진지하지만 그것도 잠시, 삶을 그저 흘러가는 대로 놔두고 있고 고민하지 않는다. 웃어주고 하는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전부지만, 수업만을 해야 하는 마음 한구석은 늘 답답하다. 영적인 즐거움이 얼마나 가슴을 뛰게 만들고 인생을 전부 걸어도 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얘기를 하면 코웃음을 치며 따분해 한다. 화려하지 않고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만 계시면 되는 낮은 곳의 행복을 그들이 알 때까지 또 들어주고 또 인내하며 또 기다려야 하겠지만, 그 일을 멈추지는 않으려 한다.

세상에서 정한 답은 언제나 사회적인 것과 인간적인 기준이 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내가 있다. 나를 유익하게 하는 것들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똑똑하다고 말해준다. 많은 아이들이 제도 교육 하에서 그렇게 배워가고 있고, 그래야만 하는 이유들을 부모나 교사로부터 익숙하게 듣고 자란다. 인권이 가장 중요한 세상. 모든 것 위에 인간의 권리가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는 이제 신성한 범주 안에 거하는 종교를 뛰어 넘고 있다. 신이 있다면 인간에게 이럴 수 있느냐고 포학한 소리를 내는 많은 사람들.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며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죄악의 일들도 목소리 높여 찬성하는 사람들. 모든 정답이 언제나 인간이고 싶은 사람들. 그것이 죄악이어도 무방한 사람들. 죄임을 알면서도 눈치를 보고 체면을 생각하면서 세상의 목소리에 흘러들어가 동조하고 죄를 모르는 이들과 함께하는 사람들.

그들이 말하는 신이, 얼마나 가슴 아프게 인간을 사랑하셨는지를 안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발등을 찍으며 머리를 풀어 조아리며 울고 또 울어야만 할 것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전부였던 바보 같았던 그 사랑을 인하여 목숨을 바쳐도 부족할 것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너무도 커서 온 세상을 만들어 그것을 누리게 하시고, 그 인간이 교만하여 죄로 인해 죽어야 마땅하자, 이번에는 독생자 예수님까지 내어주시며 용서하시고 영원한 삶을 약속하신 그 사랑을 안다면, 죽는 날까지 가슴을 쳐야만 하는 이유가 생길 것이다.

하나님 이야기를 하면 독선적이고 위선적이라며 비난을 일삼는 대다수의 사람들. 판단과 정죄를 당하게 만든 믿는 이들의 죄도 있지만, 하나님을 비난하는 그들의 손가락과 입술에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이 임하길 기도할 뿐이다.

정답을 말하면 비난을 받는 시대요, 아이들도 어른들도 사랑받기 원하고 나만 알아 달라고 소리친다. 내 아픔이 최고요 내 환경이 우선이다.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흘러가 그 낮은 곳에 나를 던지는 일은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이 되는 세상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세상의 기준이 되는 높은 곳을 바라보고 그곳에 오르려 애를 쓰다 넘어지고 실패하고 또 도전한다. 세상의 정답은 남수단 톤즈의 것과 그 깊이와 의미 자체가 다르다.

물들다

호박죽을 먹기 위해 보다가 색깔이 가을 은행잎처럼 참 곱다는 생각을 했다. 쌀과 어우러져 빛깔을 만들어 낸 음식. 단호박이었고 흰 쌀이었던 것들이 호박죽으로 새롭게 변하니 맛도 색깔도 더 고와졌다. 단풍잎도 은행잎도 계절 앞에 순응하며 땅으로 낮게 내려앉으며 저마다 물들어 가고 있다. 어느 날 문득, 이것만은 끊어야 해. 이것만은 절제해야 해. 이것만은 버려야 해. 악을 쓰듯 버리고 끊고 고치는 노력을 하려 애쓰고 의지적 노력을 하던 것들이 자연스레 싫어지고 거북스러워서 내려놓고 작은 부분을 발견하면서 물들어 가는 것의 의미를 생각했다.

주님의 언어와 삶에 물들어 버린 나를 어느 날 크게 발견한다면 얼마나 더 감격스러울까 싶다. 사람도 환경도 나의 일도, 애쓰지 않은 것 같은데, 시나브로 맡기면서 지나온 것 같은데, 어느 날 문득 꽤 주님께 물들어 가고 있는 나를 만나는 날, 큰 행복과 감사가 넘칠 것이다. 욕심도 걱정도 두려움도 내려놓으면 주님께서 저마다 새로운 옷을 입혀 주님의 색깔로 물들게 해주심을 발견하게 되겠지.

한 잎 두 잎 떨어뜨리며 버리는 즐거움, 홀가분해지는 기쁨, 단순해지는 생각. 나도 모르게 주님께 물들어 버린 내 언어와 행실의 작은 변화들. 그것이 주는 행복. 세상의 그 무엇과 바꿀 수 있으랴. 내 안에 가득한 악하고 게으르며 못된 자아가 하나님의 것으로 물들어 가는 은혜를 소망한다.

내겐 예수님이 전부다. 그런데 그 전부를 다 나누어 주어야 새로운 생명으로 주님이 내 안에 들어오신다. 사랑은 낮은 곳에 거룩한 빛깔로 임하신다. 용기 내어 그곳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는 자의 무릎엔 그 거룩함이 서서히 물들 것이다. 나는 그렇게 주님께 물들어 가는 것이다.

이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