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를 통해 주시는 은혜

실로 오랜만에 의자까지 다 들어내며 성전 바닥을 구석구석 닦아내고 나니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일부러 무릎을 꿇고 기어 다니면서 걸레질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고, 청소 시간도 단축되는 밀대 걸레로 닦다보니 손길이 미치지 않는 부분이 있어 개운치 않았던 터였다. 내친 김에 오랫동안 미뤄왔던 세탁기 청소까지 하게 되었다. 세탁기 설명서에는 적어도 1~3개월에 한 번씩 통 세척을 하라고 적혀 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6개월을 넘기고 말았다.

오랜만에 하는 통 세척이라 뜨거운 물에 두 시간 동안 불려서 세척을 했다. 그리고 세탁기 거름망을 털어내려고 보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더러운 찌꺼기가 있는 것이 아닌가! 여러 가지 세탁물의 찌꺼기가 오랜 시간 동안 부패되어 더럽기가 말할 수 없었다. 세탁기 안을 세밀히 살펴보는데 구석구석에 때가 찌들어 빠지지 않는 것이다. 면봉을 한 움큼 가져다가 거름망 있는 부분을 청소하는데 닦고 또 닦아내도 좀처럼 끝이 나지 않았다. 중고세탁기를 거저 받았기에 그동안 제대로 청소가 안 되었던 탓도 있지만, 내내 세상에 이렇게 더러울 수가! 이런 세탁기에 옷을 빨았단 말인가?”를 연발하면서 몸서리칠 수밖에 없었다.

순간 이 모습이 내 실상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내 안에 이런 더러운 죄의 찌꺼기가 덕지덕지 심령과 육체 가운데 찌들어 붙어있을 텐데도 깨닫지 못하고 소경과 같이 살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큰 악습만 회개하고는 왜 이리도 변화가 안 되는 것일까 한숨 쉴 때가 많았다.

성경에 보면 우리의 행실을 정결케 하는 과정을 자기 옷을 빠는 과정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22:14). 이 말씀을 통하여 천국에 들어갈 성도들은 자기 행실을 빨아서 정결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기 옷을 빠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어린양의 피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7:14)는 말씀과 같이 어린양의 피는 마치 세제와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생활 가운데 크고 작은 죄를 범할 때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보혈의 은총을 의지하면서 회개할 때 우리의 죄는 용서받게 된다.

우리의 행실을 정결케 하는 것을 빨래로 비유하자면 세제 외에도 맑은 물(성령, 36:25)과 햇빛(빛에 대한 말씀, 15:3)이 있어야 한다. 또한 세탁기(연단 받을 수 있는 환경, 12:10)가 있어야 하고 세탁을 하는 사람(순종하는 의지, 벧전1:22)도 필요하다.

세탁기는 한꺼번에 많은 양의 빨래를 해낼 뿐만 아니라 기술의 발달로 손빨래 못지않은 세탁력을 자랑한다. 그로 인해 우리 생활이 굉장히 편해졌다. 반면 세탁기의 허점이 있다. 세탁기 스스로는 자신을 깨끗하게 관리하고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사람이 클리너로 청소해주어야 한다. 또한 몸체의 안팎과 구석구석 면봉과 걸레로 닦아주고, 거름망에 쌓인 세탁물 찌꺼기는 반드시 사람의 손으로 털어주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옷을 깨끗이 세탁을 해야 하는 임무를 가진 세탁기가 오히려 세균의 온상이 된다. 겉으로는 깨끗하게 세탁되어 나온 듯한 옷도 대장균과 온갖 곰팡이균 등이 묻어 나와 세탁물에 흡착이 되어 냄새가 나고, 심하면 피부병도 일으킨다.

세탁기를 연단 받을 수 있는 환경이라 생각했다. 연단 받을 수 있는 환경이란 장애물이나 방해하는 조건이 많은, 거칠고 사나운 환경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범죄 하기 쉬운 환경 가운데 범죄할 때마다 회개하고 보혈의 은총으로 거듭 용서를 받으면서 점진적으로 마음과 행실이 정결케 되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 1210절에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라는 말씀에서 스스로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사람이 세탁기를 청소해주지 않으면 세탁물이 온전히 깨끗하게 되지 못하듯이 아무리 연단받을 수 있는 환경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환경만을 탓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면 내 행실은 변하지 않는다. 비록 범죄 하기 쉬운 환경이지만 작은 죄라도 범하지 않기 위해서 고민하면서, 혹 연약하여 넘어진다면 그 죄를 철저히 미워하고 번복하지 않기 위해 결단하고, 또 자기와의 싸움 가운데 맹렬히 싸우지 않는다면 연단받을 수 있는 환경은 무의미한 것이다. 도리어 더 많은 범죄의 기회밖에 되지 못한다. 결국 순종하는 의지를 드려 스스로 나 자신을 고쳐나가는 상번제의 열매가 있어야 한다.

나는 찌들어 있는 세탁기와 같은 환경에 산다. 지방에 뚝 떨어져 있는 상황이라 간섭 받을 일이 많지 않아서 영적으로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섬겨야 할 대상인 남편도 직장 문제로 인해 멀리 떨어져 있고, 교회라고는 하지만 몇 안 되는 성도님들도 주일에만 얼굴을 내미는 정도니 일주일 내내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성무일과에 맞추어 부지런히 경건훈련을 하며, 언제라도 무릎 꿇을 수 있는 환경을 주셨기에 빛 가운데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틈만 나면 아침잠에 졸음기도에 사로잡혀 태만함에 종종 빠진다.

늦게 자는 습관 때문에 새벽예배를 드리고 나서 부족한 잠을 보충하겠다고 이후에 잠을 더 자는 악습의 달콤함에 붙잡힌다. 불편하게 자면 고쳐질까 싶어 교회 의자에서 자는데도 악습은 쉽사리 끊어내지 못한다. 오래된 정욕의 찌꺼기가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에 얼마나 자리잡고 있는가 생각해본다. 주님은 얼마나 환멸을 느끼실까. 너무나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23:27)라고 무섭게 질책하셨던 주님의 책망이 레마로 들렸다.

올 여름 무더위가 오기 전에 더 부패되지 않도록 어서 이 정욕적인 생활의 찌꺼기들을 깨끗이 청산하고, 부지런히 내 두루마기를 빨아 정결한 행실로 단장할 수 있도록 정신을 차려야겠다. 주님, 저를 도우소서!

주선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