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부터 성녀 리타의 생애에 대해서 7 차례에 걸처서 기고하겠습니다.

읽고 많은 은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주정인드림

 

십자가의 고통을 지고픈 열망

beeeb3f34.jpg“사람의 마음에 많은 계획이 있을지라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게 되리라”(잠19:21)는 것을 자기부인과 온전한 순종으로 보여주었던 한 여인. 온갖 핍박과 고통 앞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고 인내하였던 여인. 남편을 죽인 원수까지도 사랑으로 품고, 마음에 티끌만한 미움과 불평의 흔적조차도 남기지 않길 바랐던 거룩한 삶이 한 가정을 거룩으로 이끌어 갔다. 또한 사람들의 선입관과 규칙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을 반성하고자 한다.

출생과 특별한 섭리

1381년, 리타는 이탈리아의 로카포레나라는 작은 산골에서 믿음이 독실한 아버지 안토니오 만치니와 어머니 아마타 페리의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당시 이탈리아 거의 모든 지역에 만연되어 있었던 나쁜 습관들과 권세자들의 횡포와 폭력이 난무하는 험난한 세파 속에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자비와 사랑을 베푸는 분들이었다. 그들의 생활 속에 자리 잡은 좌우명은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묵상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훗날 리타의 신앙생활에 믿음의 그루터기가 되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들에겐 인생의 장년기에 접어들도록 자식이 없었다. 하루는 아마타가 열심히 기도하던 중 환상을 통해 천사를 보았다. 천사는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으며, 기도의 선물로 여자 아기를 낳게 될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들려주었다. 그 아기는 또한 훗날 하나님의 큰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에 아마타는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다. 그 후 두 번째 환상 중에 천사는 아기의 이름을 리타라고 지을 것을 당부하였다. 모든 태를 닫고 열고 하시는 하나님은 사라에게, 한나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기도를 통하여 언제나 일하시고 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태어난 리타가 유아 세례를 받고 며칠 되지 않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안토니오 부부가 들판으로 일하러 나가면서 아기를 버드나무로 만든 요람에 넣어서 나무 그늘에 두었다. 요람 속의 아기는 고사리 같은 손을 움직이며 혼자 누워 있었다. 그런데 한 떼의 벌들이 요람 주위에서 맴돌더니 제법 많은 수의 벌들이 갑자기 아기의 벌려진 작은 입 속으로 쏙 들어갔는데, 이상하게도 아기는 벌에 쏘이지 않았다. 울기는커녕 오히려 즐거운 듯이 옹알거리고 있었다.

그때 요람 근처에 있던 한 사람이 낫으로 풀을 베다가 그만 실수를 하여 오른 손을 심하게 다쳤다. 의사에게 보이기 위해 급히 카시아로 달려가던 중 아기가 누워 있는 요람 옆을 지나게 되었다. 수많은 벌들이 떼를 지어 아기의 머리 위를 맴돌고 있는 것을 본 그는 가던 길을 멈추고 벌떼를 쫓기 위해 양팔을 내저었다.

그런데 잠시 후 자신의 오른 손이 아무런 상처자국도 없이 깨끗이 나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심한 상처로 인해 피가 줄줄 흘렀는데 감쪽같이 치료가 된 것이었다. 너무나 놀란 나머지 그는 소리를 질렀다. 안토니오 부부는 하던 일을 멈추고 급히 요람으로 달려왔다. 벌떼는 잠시 흩어지는 듯하더니 마치 그들의 맛있는 음식을 놓치기 싫은 것처럼 다시 몰려 왔다. 훗날 리타가 카시아에 있는 수녀원에 들어갈 때에도 벌떼는 수녀원의 담장까지 몰려왔으며, 그곳에서 더 이상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자신의 문장에 벌이 새겨져 있는 우르바노 8세는 그 이상한 벌 몇 마리를 로마로 가져오게 했다. 그는 아주 흥미 있게 그 벌들을 관찰한 후 그 중 한 마리의 허리에 명주실을 감아서 다시 놓아 주었다. 그런데 그 벌은 얼마 후 다시 카시아의 그 수녀원 담장에서 발견되었다. 놀랍게도 그 벌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영성의 토대

출생 자체가 기적적인 사건이었다. 부모는 비록 배운 것이 없는 무식한 사람들이었지만, 노년에 얻은 소중한 딸을 어려서부터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가르쳤다. 또한 그들은 딸에게 자신들이 알고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하여 예수님과 성화된 성도들의 삶에 대해 틈나는 대로 들려주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시키지 않아도 기도와 묵상을 즐겨 하였고, 어른들의 말씀에 잘 순종하였다. 자신의 정숙한 몸가짐에 대해서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으며, 예수님에 대해 더 깊이 알기 위한 간절한 소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엇을 보든지 마치 명상을 하듯 모든 정신을 집중하여 주의 깊게 바라봄으로써 그 안에서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였다. 그녀가 즐겨 읽던 책이 한 권 있었는데 『십자가의 고난』이라는 책이었다.

당시 움브리아 지방에는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하는 아씨시의 성 프랜시스의 체취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자는 양 손과 발, 허리에 주님께서 받으신 것과 같은 다섯 군데의 상처, 즉 오상(五傷)을 받았는데 그의 생애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겪었던 수많은 고통과 인내는 아직도 그 곳 산골마을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마을 사람들이 성 프랜시스에 대해 말하는 것을 귀담아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 때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놀랍게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만일 주님의 십자가 전부를 질 수 없다면 그 지독한 고통의 일부분만이라도 자신이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십자가 고통의 참 의미를 잘 이해하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면서 우선 회개와 그에 따른 극기생활들을 조금씩 실천하였다. 그러면서도 유일한 의지가 되었던 부모님들이 만년에 이르자 어린 소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고된 일에 시달렸다. 하지만 원망과 불평을 입 밖으로 내지 않기 위하여 수시로 시편 구절을 암송함으로써 힘을 얻으며 어려운 사춘기를 보냈다.

그러나 일에 대한 어려움보다 더욱 힘들었던 것은 절대 순종과 스스로 자원하는 희생에 습관적으로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변덕이 심하고 자칫 경솔하기 쉬운 나이에 순종과 희생을 실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그녀가 살고 있었던 로카포레나 일대에는 어거스틴회의 수도자들이 자신들의 개인 동굴을 곳곳에 만들어 놓고 독신으로 수도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은수자들의 삶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은 그녀는 그들처럼 살고 싶었다.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집 안에 작은 방 하나를 따로 준비하였고, 그곳에서 예수님의 성화를 가슴에 꼭 안고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는 동안 좁고 좁은 그 작은 방은 어느새 기쁨의 장소로 바뀌어져 갔다.

부모님의 믿음에서 비롯된 선한 영향력과 성화된 성도들의 거룩한 향기와 발자취는 그녀로 하여금 주님께로 가까이 이끄는 영성의 훌륭한 토대가 되었다.

절대 순종과 마음의 갈망 사이

한편 연로하신 부모님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녀를 결혼시키려고 은밀하게 사윗감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오로지 주님께만 바치기로 한 결심과 부모님들에 대한 순종 사이에서 깊은 갈등을 겪어야만 했다.

부모님들의 예기치 못한 놀라운 제안에 대해 확실하게 거절하지 못한 까닭은 이미 습관적으로 익숙해져 있던 절대 순종 때문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의 거절로 인해 낙담하시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더욱 큰 슬픔의 눈물을 흘리게 했던 것은 부모님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이제까지 그렇게도 간절히 소망했던 수도자의 길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였다.

비탄에 빠진 리타에게 또 하나의 견딜 수 없는 슬픔은 그토록 열심히 기도하며, 약속했던 하나님에 대한 봉헌이 현실에서는 뜻밖에도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난 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갈보리 언덕에 오르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파울로 디 페르디난도는 남편감으로 부적당 했을 뿐 아니라 전혀 못 미치는 상대였다. 대단한 허풍쟁이였고 방탕하고 난폭한 사람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도 평판이 좋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와 결혼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이 그곳에 숨겨져 있었다.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던 불쌍한 한 영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과 고통스러운 결혼생활을 통해 인고(忍苦)의 빛나는 본보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시고자 하는 가시밭길의 첫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