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의 자유

c1d6b4d4b5bfc7e02.jpg천로역정에 급욕과 인내가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효시가 기독도의 손을 잡고 한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두 어린아이가 각각 의자에 앉았는데 좀 큰 아이의 이름은 급욕이고, 그 다음 아이는 인내였다. 그들의 부모가 두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얻기 위해 내년까지 기다리라고 하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 가지기를 원하였던 급욕은 불만이 가득 찼고, 인내는 평온한 얼굴로 묵묵히 기다렸다.

이번에는 어떤 사람이 보화 주머니를 가지고 급욕에게 와서 발 앞에 쏟아 놓았다. 급욕은 그것을 취하여 가지고 매우 기뻐하여 인내를 업신여겨 웃었다. 그러나 얼마 후에 본즉 급욕은 그것을 다 허비하여 버리고 헌 누더기 밖에는 남은 것이 없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도 그랬다. 블레셋과 전쟁을 벌이기 위하여 자신의 군대를 먼저 점검하였는데 3천명이었다. 여기에 블레셋은 병거 3, 마병이 6, 군사는 해변의 모래알 같았다. 엄청난 수적 우세와 중무장한 무력의 힘 앞에서 이스라엘은 의기소침해졌고 도망치는 군사들까지 생겨났다. 사울 왕의 마음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전쟁에 나서기 전 하나님께 제사들 드리고 나가야 하는데, 제사장 사무엘은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오지 않았다. 상황은 급하게 돌아가고 그만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제사를 자신이 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아무 것도 취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몰래 취하여 훗날, 하나님의 진노로 왕관도 빼앗기고 화려한 옷도 벗겨졌다.

나도 사울 왕의 급욕을 참 많이 닮았다. 지금 당장 무엇이 뚝딱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에 불만을 곧잘 토로하고 불안해하고 초조해 한다. 이로 인해 옆의 동료들을 아집적으로 재촉하다가 관계가 불편해 질 때도 있다. 주님이 일하시는 때를 묵묵히 기다리기보다 먼저 앞장서다가 대패하여 호르마까지 쫓겨난 이스라엘백성처럼 혼쭐이 날 때도 많다. 이는 내 속에 내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분명 급욕처럼 썩어 없어질 세상의 것들을 움켜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이 없네. 네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릴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가시나무의 노랫말처럼 내 안의 세상의 헛된 바램들로 인하여 주님이 거하실 공간이 너무나 비좁다. 빽빽이 들어선 가시나무로 인해 이웃의 허물과 결점을 품을 마음의 여백도 별로 없다. 괜히 동료가 잘 되면 배가 아파 그나마 조금 빈 마음의 여백을 질투와 미움으로 가득 채운다. 삭막한 가시나무 숲으로 뒤덮이고 있는 줄도 모르고 누가 조금만 칭찬해도 우쭐대며 잘난 척을 한다. 어리석은 급욕처럼 헌 누더기 옷을 걸쳐 입고서도 자신의 초라한 모습은 보지 못한 체, 때로는 인내를 가벼이 여기며 비웃기도 한다. 고통 없이 쉽게 이루려는 마음에 십자가가 세워져야 할 공간을 아집의 포크레인으로 확 밀어내기도 한다. 나의 어둔 마음이 주님과 이웃들의 쉴 공간을 빼앗고 있다.

철저한 자기 성찰과 회개의 삶 없이는 주님의 능력이 부어지지 않건만 기도를 소홀히 하면서도 무엇인가를 빨리 이루어보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결국 주님 없이 살아가는 모든 삶은 늘 실패와 좌절뿐이었다.

내 나름 20여년을 해온 사역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런 능력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나의 경험과 지식, 나의 교만과 아집과 나태와 천박이 마음의 여백을 가득 메우고 있음을 보게 하셨다. 그리고 성과에 집착하고 있는 나의 탐욕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제야 주님, 저를 도우소서. 나의 일이 아닌 주님의 일임을 잊고 있었습니다. 주님만을 의지합니다. 저에게 찾아오셔서 친히 일하십시오. 온갖 세상의 잡동사니로 가득 찬 제 마음을 성령의 맑은 물로 씻어주옵소서. 비록 초라할지라도 주님 뜻에 맡기겠습니다.”라는 고백을 눈물로 드렸다.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이라도 마음에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는 그저 소음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고통의 체험이 없는 사람은 마음속에 무엇인가를 채울 수 있는 아량과 깊이가 부족하게 마련이다. 고통은 인간을 성숙하게 하고 겸허하게 자신을 비우게 한다. 마음속에 빈 공간이 없는 사람에겐 어떤 감동적인 시나 어떤 아름다운 음악도 울림을 줄 수 없다. 마음의 여백이 없는 삭막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잘난 줄 착각하고 용서와 화해에 인색하다. 자신을 비운 만큼, 마음의 여백이 넓어진 만큼 성령님의 역사는 더욱더 자유롭다. 광야 연단과정을 지나 마음과 행실이 정결해져 모든 것을 비운 그 자리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하늘의 보화가 담길 것을 알기에 오늘도 내 겉과 안의 휴지통을 열심히 비워내야겠다. 이 세상에서 비록 가난한 비렁뱅이 거지일지라도 하늘의 행복을 담는 빈 그릇을 정말이지 갖고 싶다.

어떤 분의 말씀이 생각난다.: 

영적으로 점점 더 많이 성장할수록 어떻게 되냐면 빈 그릇이 되어가는 것이거든요. 하늘로부터 오는 은혜를 순간순간 받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더 많이 성장한 사람들이에요. 아예 성장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인격, 지혜나 지식, 평소에 가진 능력, 그밖에 여러 가지 재산이라든가, 일 잘하는 것 등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너 이것 좀 해라.’ 하면 기도할 필요를 별로 안 느껴요.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능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영적으로 점점 발전하면 가지고 있는 것도 다 하나님께서 쓰지 않으시면 안 되는구나. 그것을 사용하다보면 순수하게 빛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많구나. 상급 받을 수 있는 순수한 선행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구나.’ 이것을 절실하게 느껴요. 자꾸 연단을 받아가면서 깨닫게 돼요. 그때 비로소 우리는 비록 갖춘 것이 있다 할지라도 자기의 무능력을 크게 느끼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칼칼해지고 약해지면서 더욱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성장할수록 빈 그릇이 돼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한순간도 못사는 사람들이에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한순간도 못 살아요. 점점 더 그렇게 돼요. 빈 그릇이기 때문에요. 그래서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씀이 확실하게 믿어지고 틀림없는 사실로 믿어지게 돼요. 그러니까 기도를 더하게 되고 늘 깨어 있게 되고 더 철저히 깨어 있게 돼요. 그러면서 더 큰 능력과 은총을 받게 된단 말이지요. 그냥 받는 게 아니에요. 늘 기도하기 때문에 받는 거예요. 계속 하나님께 자기의 빈 그릇을 대놓고 있으니까요. 아주 굉장한 거지예요. 계속 달라고 하는 거지요. 한 번 받은 것 가지고 평생 사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시간이 더 많아야 해요. 티끌만큼이라도, 생각 한 번이라도 악에 물들지 않고 어떤 정욕적인 것이 끼어들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요. 하나님의 은총의 물결을 날마다 순간마다 계속해서 위로부터 공급받아요.”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