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주님 뵈올 때

b9b0b4edbbe7b6fb.jpg아침에 일어나 보니 남편의 얼굴 한쪽이 불에 데인 듯 붉게 피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왼쪽 얼굴면의 이마 부분과 코 부분에 피부껍질이 살짝 벗겨져서 약간의 피와 진물이 나 있는 것입니다. 놀라서 이부자리를 보니 핏자국이 묻어 있었습니다. 몇 시간이나 그랬는지 모르지만 얼굴 한쪽 면을 이부자리에 계속 비벼대었던 것입니다. 맨 바닥에 비벼 댔다면 어찌 했을까 하는 생각에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헌팅턴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남편은 뇌세포가 손상되면서 신경이 불안정하여 불수의적인 운동을 합니다. 의지와 상관없이 몸을 많이 흔들기 때문에 증상 완화를 위해 신경안정제를 복용하지만 그다지 큰 효과는 없습니다.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병은 점점 중해져 가는 형편입니다. 오랫동안 병간호를 하다 보니 사고가 나면 피곤하고 귀찮은 생각이 드는 때도 있습니다. 남편의 상처 난 얼굴에 연고를 발라주며 힘들게 왜 또 그랬어요?” 라며 퉁명스런 말이 나왔습니다.

! 정말 너무 힘들고 지친다.’ 라는 저의 생각과는 다르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아주 아픈 쓰라림이 뜨거운 눈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성령님이 남편을 불쌍히 여겨 친히 우시는 눈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제 마음가운데 남편은 너무 아프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남편은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픈 거야. 몸이 아파도 마음이 두렵고 속상해도 제대로 표현할 수조차 없으니 그는 몸만 아니라 마음도 너무 아픈 사람이야.’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그동안 식사수발로, 용변으로, 각종 병치레로 힘들게 했던 남편이 불쌍해서 주체할 길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런 저를 바라보던 남편이 힘들게 입을 열었습니다. “미안해.”

우리를 어렵게 하거나 귀찮게 하는 병든 가족이나 이웃들, 또는 무례하고 난폭한 자, 자신의 필요만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자, 나를 멸시하고 조롱하는 자, 핍박하는 자들과 오랫동안 함께 지내다 보면 그들이 바로 변장하신 주님이라는 사실을 놓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들의 아파하는 소리를 마음을 다하여 주님의 아파하심으로 듣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님이 부탁하는 소리로 듣고, 그들의 무례함과 핍박이 상처 나고 찢긴 삶으로 인한 아픔의 표현으로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그냥 지나쳐 보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인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책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어느 날 나는 하수구에서 한 남자를 꺼냈습니다. 그의 몸에서는 벌레가 우글거렸습니다. 그를 집으로 데리고 왔을 때 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그는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나는 거리에서 동물처럼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사랑받고 관심 속에서 천사처럼 죽어가는군요.” 하고 말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그를 깨끗이 씻기는 데 세 시간이 걸렸습니다. 마침내 그는 수녀님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수녀님, 나는 이제 주님 계시는 집으로 갑니다.” 그러고는 죽었습니다. 나는 한 인간의 얼굴에서 그토록 빛나는 미소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주님의 집으로 갔습니다. 사랑이 할 수 있는 것을 보십시오! 그 젊은 수녀님은 그 순간에는 몰랐겠지만 예수님의 몸을 만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형제자매에게 베푼 사랑은 곧 내게 한 것이라(25:40)고 말씀하신 주님께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이 순간 기쁨을 드리고 싶습니다. 먼 훗날 주님 뵈올 때를 기다리면서.

박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