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기도

1차 세계대전 때 참전하였다가 다리를 다친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수도사가 되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학력이 부족하다고 수도원에서 받아주지 않아, 수도사가 될 수 없었다. 수도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는 간청 끝에 수도원의 요리사가 되었다. 그는 비록 수도사가 아닌 요리사로 수도원에 들어왔지만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를 드렸다. 그는 수도사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수도를 하는 동안에 그들을 위하여 주방에서 열심히 요리를 만들었다. 세월이 흘러갔다. 그런데 주방에서 요리를 하던 그가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수도사도 될 수 없었던 그가 어떻게 하여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을까?

그는 자신의 모든 이론을 파기하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자기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 시장 보러 갈 때에도, “주님, 좋은 식품을 값싸게 구입하게 하시어 수도사들이 잘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주님, 제가 그릇을 씻어 깨끗하게 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내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씻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였다. 심지어 불을 지피면서도 주님이시여, 이처럼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이 내 마음속에 타게 해주옵소서.”라고 기도하였다. 그의 쉬지 않는 기도가 결국 수도원 원장이 되게 한 것이다.

수도생활뿐 아니라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기도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기도가 어떻게 하면 더 새로워질 수 있을까? 기도는 성도들의 영적 성장에 비례하여 자라는 것이다.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4:26-29).

성도의 신앙생활은 싹이 나는 단계, 이삭이 되는 단계, 열매를 맺는 단계가 있다.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에서 말하는 영적 성장의 세 단계와 일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앙생활에 아이들의 단계가 있고, 청년의 단계가 있고, 아비들의 단계가 있는데, 싹이 난 것은 아이들의 단계요, 이삭이 된 것은 청년들의 단계요, 열매를 맺는 것은 아비들의 단계인 것이다.

기도도 마찬가지다. 누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 하나님께 기도하겠는가? 그래서 기도는 성도들의 신앙의 싹, 새로운 생명의 출생과 함께 싹이 나는 것이다. 싹이 나면 자라야 하는 것처럼, 아이가 태어나면 자라야 하는 것처럼 기도도 싹이 나면 자라야 하는 것이다. 물질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만을 구하는 기도는 가장 초보적인 아이의 기도다. 영혼과 내적인 성장이 무엇인지 잘 모르면서 주님을 오직 구원자, 해결사로만 이해하는 것은 아이들의 기도다. 이것은 아이들이 으앙하고 울기만 하면 부모가 다 알아서 필요를 채워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일단 자라서 청년의 신앙 단계에 이르면 응석이 통하지 않는다. 이때는 아이 때의 기도처럼 구하는 대로 응답되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금식하고 떼를 써도 이 단계에서는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순종하지 않는 한 기도의 응답은 없는 것이다. 이 단계의 기도에서 주님은 나의 감정, 생각, 취향, 시간, 자존심 등 뭐든지 다 통제하시기를 원하신다. 나 스스로 판단할 수 있지만 아직은 부모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단계의 기도다.

그러나 영혼이 더욱 성장하여 아비의 단계가 되면, 그 영혼은 주님과 결혼을 하여 하나가 된다. 예수님은 신랑이시고 그는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것이다. 이때에는 말이 필요 없다. 그냥 느끼고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기도다. 아비들의 기도 특징은 은밀한 기도다. 부부가 드러내놓고 사랑을 표현하지 않아도 그 사랑을 느끼는 것처럼 신랑 예수님과의 밀애가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싹이 난 기도가 이삭을 내고 결국 열매를 맺은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다 응답이 되고 있는가? 아직 다 응답이 되지 않고 있다면 우리의 기도가 아직 열매의 단계까지 이르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마가복음 11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셨고, 요한일서 514-15절에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로 또한 아느니라.”고 했다.

이 말씀대로라면 구하는 모든 것이 응답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도 뜻대로 구하지 못하고, 응답이 되지 않은 것은 기도가 온전히 자라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에서 성도의 단계를 육에 속한 자와 신령한 자로 나누고 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이 미련하게 보이고 깨닫지 못한다고 하였다. 우리의 기도도 신령한 자가 되지 못하여 육에 속할수록 깨닫지 못하고 미련하여 제대로 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얼마나 성장한 것일까? 신앙의 완성은 사랑의 완성이고, 믿음의 완성이고, 생명의 완성이고 기도의 완성이다. 그리스도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충만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기도도 넓어지고 길어지고 높아지고 깊어져야 한다.

봄이 오면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듯이 이 봄에 우리의 기도가 새로운 싹이 나고 이삭이 패고 열매를 맺기를 기도해 본다. 가슴이 뛰는 설렘으로.

이안드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