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위로할 수 있는가!

! 아직 다 피우지 못한 꽃들이 꺾여버렸구나! 이 죄악된 세상에서 더 이상 오염되기를 원치 않았는가, 영혼이 잠들어가고 있는 이 나라의 더 큰 구원을 위한 희생인가, 아니면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위로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가슴이 아리는 걸 막을 길이 없다. 차디찬 바다 속에 던져진 그들에게, 우리가 그 어떤 생각을 한들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누구의 잘못인지 아무리 자세히 찾아낸들 찢기고 상한 마음들이 회복될 수 있을까.

누가 그 가족들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나, 캄캄한 물속에서 죽어가던 그들의 끔찍한 공포와 고통을 누가 위로할 수 있는가. 온 세상의 어머니들이 가슴을 쥐어뜯고, 온 나라의 아비들이 눈물을 머금는다. 문자들이 사방으로 퍼져간다. “아직 몇 번 방에 아이들이 살아있대요, 식당 쪽에도, 복도 쪽에도 아직 갇혀있대요, 꼭 복사해서 전해주세요, 한 명이라도 살려야지요. 조금만 더 견디렴. 모두 살아 돌아오렴.” 모든 부모들이, 모든 국민들이 기도한다. ‘!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긍휼을 베풀어주시옵소서. 본이 되지 못한 우리 어른들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어린 영혼들을 살려주시옵소서! 기도를 게을리한 우리 교회들을 용서하시고 아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옵소서.’

우리가 이렇게 아픈데, 하나님은 아무 죄가 없는 외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얼마나 아프셨을까, 아버지와 하나이셨던 그분이 죄덩어리가 되기 위해 둘로 분리되어 이 세상에 죽으러 내려오실 때, 우리 대신 지옥의 형벌을 감당하실 때, 할 수만 있으시다면 이 잔이 제게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을 때, 하나님은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더구나 아들이 십자가에서 캄캄한 절망 중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절규하실 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세월호의 비극을 아무리 큰돈으로 보상한들 자녀들은 돌아올 수 없고, 누구를 극형에 처해도 그들의 죽음을 돌이킬 수는 없다. 아무리 따뜻한 말을 한들, 옆에서 아무리 통곡을 해도 찢어진 영혼과 가정을 위로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 단 하나의 완전한 위로가 있다. 이미 그보다 더한 고통을 겪으신 예수님만은 위로하실 수 있다. 아무 죄 없는 아들을 죄인들을 대신해 속죄제물로 죽이신 하나님만은 분명히 위로하실 수 있다. 이것이 소망이다.

이는 죽음 이후에 더욱 분명해진다. 그렇게 희생되신 그렇게 고통 속에 죽어 가신 예수님이 재판관이 되어 그동안 살아온 삶을 심판하실 때, 예수님의 그 고통이 나를 위한 고통이요, 희생임을 믿고 구주를 붙든 이들을 주님은 크게 위로하실 것이다. 억울한 죽음일수록 그날에 더 큰 위로가 주어질 것이다.

자녀를 잃은 부모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엔 없다. 오직 그보다 더한 고통과 슬픔으로 자녀를 잃은 자만이 위로할 수 있다. 그렇게 외아들 예수님을 잃었던 하나님만이 모든 아비들의 슬픔을 위로하실 수 있다. 어머니 앞에 그렇게 죽어가셨으나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어머니들의 고통을 위로하실 수 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부르자.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자. 앞서 고통당하신 그분의 위로를 받자.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