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한을 풀어주소서 내 주여

한 많은 인생을 살다 성탄절 전날 다리를 절며 교회로 나온 마르다. 나의 작은 누나다. 누나는 어릴 적 가난한 집안의 둘째딸로 태어나 많은 고생을 하며 살았다. 천성이 부지런하여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동생을 업고 보리쌀을 갈아 밥을 지었다. 산에 가서 땔감을 해서 머리에 이고 와 소죽을 끓여주고 집안일을 도맡아서 하였다. 엄마가 외갓집에 출타하여 없는 날은 식은 밥에 김치를 넣고 국수를 넣어 죽을 끓여주었다. 그리고 엄마가 오시기 전에 대문 앞에서부터 마당까지 깨끗이 청소를 했다. 눈이 오는 날에도 제일 먼저 일어나 골목을 쓸고 물동이를 이고 우물터에 가서 물을 길어와 솥에 넣고, 불을 피워 물을 따뜻이 데워서 아침밥을 짓게 했다. 제일 부지런하고 일을 잘해서 부모님들에게 늘 칭찬을 받곤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누나와 함께 작두로 풀을 썰다 내 오른손가락 네 개가 잘려버렸다. 누나는 그 후 내손을 보면 늘 안쓰러워하며 품에 꼭 안아주었다. 추운겨울이면 손을 잡고 입으로 따뜻하게 녹여주었다.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젖동생을 업고 미음을 쒀 머리에 이고 병원까지의 먼 길을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다리를 조금씩 절뚝거리기에 이상하다 했는데 나중에 보니 발바닥에 큰 가시가 박혀 있었다. 그 가시가 박힌 다리로 몇 달 동안 동생을 업고 엄마 병간호를 한 것이다. 엄마의 병이 오래가면서 집안일을 돌보고 동생들 뒷바라지 하다가 결국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누나는 그렇게 해서 학교를 더 이상 다니지 못하고 그 어린나이에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갔다.

서울 가기 전날, 섬진강으로 다슬기를 잡으러 갔었다. 돌아오는 길, 섬진강 둑을 따라 걸어오면서 함께 노래를 불렀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에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누나는 그 다음날 서울로 갔다. 누나가 없는 우리 집은 늘 우울했다. 아버지도 가끔 술을 드시면 누나를 부르며 우셨다. 나는 누나가 보고 싶을 때면 강변에 나가 엄마야 누나야 강변에 살자.” 를 부르며 서쪽하늘을 바라보았다. 한해가 가고 다음 해 설날 전날 밤, 많은 선물을 사가지고 누나가 왔을 때, 밤늦게까지 일을 하면서 코피를 몇 번이나 흘렸다고 했다. 누나는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않고 오직 부모님과 동생들을 생각하며 일을 한 것이다. 집에 와서도 잠시도 쉬지 않고 빨래, 방청소, 집안을 아주 깨끗이 치워놓고서는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세월이 흘러 풍진 세상을 살면서 몸도 마음도 갈기갈기 찢기고 상하여 이제는 한() 많은 할머니가 되었다. 누나는 마음 한 구석에 배우지 못한 한이 있다. 그런 탓에 사람들 앞에 잘 나서질 못한다. 한평생 눈물과 설움으로 살아온 누나를 바라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

내 마음은 아무도 몰라. 서럽게 우는 누나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곤 하였다. 불쌍한 작은 누나를 기억해 주시고, 마음의 한을 풀어달라고. 그리고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그러나 다른 형제들과 부모님, 일가친척 많은 분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와 은혜 가운데 살고 있는데 작은 누님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성탄 전야 때 다리를 절며 교회로 나온 것이다. 그날 밤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고 주체할 수 없는 감격에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그 다음 주에 나온 작은 누나에게 “2년 전, 손목이 부러져 돌아온 큰 누님을 마리아 자매님이라고 불렀으니까 작은 누님은 마르다 자매님이라고 새로운 이름으로 부를게요.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처럼 철저히 예수님을 믿으면 그분이 누나의 원한을 풀어 주실 거예요. 이제는 회개하면서 밝은 빛 가운데서 익은 열매되시고 하나님께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성녀가 되십시오.”

매주일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는 함께 손을 잡고 다리를 절면서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 새로 태어난 마르다 자매님의 아픈 다리를 오래오래 아프게 해주시옵소서. 다시는 세상길로 가지 않도록 천천히 낫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응어리진 원한을 풀어주시옵소서.”

주님은 원한을 풀어주시는 참으로 좋으신 분이다. 10년이 넘도록 자식을 낳지 못하고, 엘가나의 후처로 들어온 브닌나의 조소로 한이 맺힌 한나. 원한을 풀어달라고 성전에 들어가 통곡하며 기도할 때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던지 술 취한 자로 여길 정도였다. 애간장이 녹을 정도로 기도할 때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그 원한을 풀어주셨다.

한 많은 이 세상, 누구나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제 각기 한을 안고 살아간다. 가난에 한이 맺힌 사람, 돈에 한이 맺힌 사람, 지식에 한이 맺힌 사람, 건강에 한이 맺힌 사람, 혈육에 한이 맺힌 사람, 사랑에 한이 맺힌 사람 등. 어떤 이들은 한 때문에 응어리진 마음으로 한평생 살다가 안타깝게 죽어 가는 영혼들도 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에 한을 허락하실까?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음을 깨달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찾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멀어져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불쌍한 인생들에게 하나님을 찾는 방법으로 각자에게 한을 주셨다. 불의한 재판장도 불쌍한 과부가 날마다 찾아와 원한을 풀어달라고 애원하자 풀어주지 않았는가. 모든 인생의 슬픔과 고통과 쓰라림 등 모든 한들을 풀 수 있는 해답은 하나님께 있다.

인간 스스로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남모르는 원한이 내게도 있다.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고 사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온 날들. 밤낮으로 부르짖으며 살기를 20년 세월. 아직도 응어리진 마음으로 가련한 자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애원을 한다. 밤낮으로 나를 괴롭히는 이 피맺힌 원한. 그토록 선을 행하기를 원하건만 악을 행하는 이 흉악한 원수가 바로 내 안에 있다.

내 안에 큰 구렁이 일곱 마리가 굼틀거리며 살아있다. 거기에 수많은 독사들이 온 몸에 알을 품고 있다. 움직일 때마다 생각할 때마다 기회만 주어지면 선을 행하려 하는 내 의지를 무참히 짓밟아 버리는 이 원수들. 악마의 소굴에서 꼼짝없이 붙잡혀 떨고 있는 이 가련한 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늪에서 누가 나를 건져줄 건가.

오 주님, 사망의 이 늪에서 저를 구원하여 주소서. 이 원한의 쇠사슬을 온전히 풀어주소서. 저의 부르짖음을 외면치 말아주소서.”

목이 타들어가도록 울며 부르짖는 나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셨다.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18:7-8). 오늘도 약속의 말씀을 부여잡고 울며 울며 주님께로 나아간다.

박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