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의 모습이 된다면

언제나 도서관에 가면 왠지 모를 흥분에 휩싸입니다. 오늘은 ‘어떤 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 책, 저 책 뒤적이며 내용을 훑고 있는데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저자인 필립 얀시의 또 다른 책인 『내가 알지 못했던 예수』입니다. ‘음, 이 분이 알지 못했던 예수님의 또 다른 면이 무엇일까?’ 뭉글뭉글 궁금증이 일기 시작합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예수님’이라는 존재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과 느낌으로 이 책을 시작합니다. ‘예수님’ 하면 사이다와 과자, 황금별 스티커를 떠올렸고, 출렁이는 긴 머리와 깎은 듯 아름다운 얼굴, 백옥 같은 피부와 친절하며 날카로운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런 인물을 떠올렸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이제 새롭게 예수님의 출생에서부터 예수님과 함께 출발하여 예수님의 죽음까지 동행하며 느낀 것과 그러한 과정 속에서 예수님의 삶에서 깨달을 수 있는 많은 것을 하나하나 적어가고 있습니다.
저자는 해수 수족관을 관리하면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야만 했던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수족관을 관리하기 위해선 질산염 농도와 암모니아의 양을 늘 일정하게 유지하여야 玖?비타민이나 항생제, 설파제 따위를 투입합니다. 또 수족관 물 전체를 유리섬유와 숯으로 걸러 낸 다음 자외선으로 살균을 해줍니다. 수족관의 물고기를 위해 그토록 애를 썼으니 미물에 불과한 물고기 일지라도 최소한 고마워하겠지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수족관 근처에만 다가가도 물고기들은 숨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고기들은 사랑의 손길을 파괴의 손길로, 자비로운 행동을 만행으로 여겼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물고기가 되어 고기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그들에게 이야기 하고픈 마음입니다. 이런 수족관의 물고기와 같은 인생들을 위해 하나님이 우리의 모습으로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물질을 만드신 그 하나님이 물질의 형태를 취하셨습니다.
저희 가정에는 제 손길을 필요로 하는 희귀성 헌틴텅 병을 앓고 있는 아이와 남편이 있습니다. 연약한 육신으로 인해 혼자서 음식을 먹거나 옷을 입거나 보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느 날 남편의 식사를 도와주고 있는데, 그날따라 음식을 흘리며 먹는 남편의 모습이 얼마나 밉던지요. 그 때 성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주님이 인간의 모습이 되어 오신 것처럼 나도 남편의 모습이 되면 어떨까? 내가 그의 모습이 된다면 그의 말과 행동이 이상히 여겨지지 않고 밉지도 않을 텐데….’
이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서 그가 내가 되고 내가 그가 되는 것입니다. 오직 사랑만이 이룰 수 있는 일입니다. 주님은 그 날 자애심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저의 실체를 볼 수 있는 은총을 주셨습니다. 자신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저는 그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복음서는 매우 단순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단 한 가지 목적은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당신과 저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시어 당신의 생명을 내어 줌으로써 사랑의 완성을 이루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본받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5:12). 주님은 서로서로 사랑하라는 단 한 가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여러 상황을 만드시고 인도해 가십니다. 자신을 희생하고 다른 사람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사는 것이 저에게는 너무도 벅찬 일이기에 오늘도 주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어 고통의 한계를 뛰어넘어 십자가에서 사랑을 완성하셨던 그 사랑을 조금이나마 실천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오늘도 작은 자들 속에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주시어 그 분들을 돕는데서 기쁨을 찾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또한 사랑은 일상 속의 소박하고 작은 것들에서 비롯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상대방에게 미소를 지어주는 것, 친절한 말 한마디, 침묵을 지키며 바라보는 것, 도움의 손을 내미는 것, 커피를 대신 타주거나 좌석을 양보하는 것 등. 작은 관심과 배려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 우리도 서로서로 사랑하며 작은 일에 충실함으로 그 분으로부터 오는 천상의 기쁨 속에 살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자만이 십자가의 고통을 알 수 있듯이 불편함과 고통과 손해와 아픔이 없이는 사랑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작은 십자가를 매순간순간 짊어지고 나갈 때 언젠가는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 안에 새겨지리라 믿습니다. 오늘 하루의 삶속에서 고개를 숙이고 섬김과 사랑의 배려를 통해서 예수님의 흔적을 남기고 싶습니다.
박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