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목적지를 밝히지 않은 채, 고향을 떠나서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 그리고 모세에게도 여러 차례에 걸쳐 ‘가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수아, 비느하스, 사무엘, 다윗, 엘리야,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호세아, 아모스, 요나 등 많은 믿음의 선진들에게 가라고 명령하셨다.
반면에 기드온과 함께 할 삼백용사를 뽑을 때, 그리고 여로보암을 치러 가는 르호보암에게 돌아가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는 하나같이 과거로 돌아가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기드온의 용사들에 대한 귀환 명령은 두려워 떠는 자를 향한 것이고, 르호보암에게 돌아가라 하신 것은 동족 간의 살상을 피하게 하시려는 배려였다.

주님께서 가라고 말씀하신 상황을 살펴보면, 우선은 목적지가 분명치가 않아 어찌 생각하면 무모한 것 같기도 하다. 또한 전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훈련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무기도 없이 전쟁터로 나가야 하니, 인간적인 판단으로는 도무지 승산이 없는 전쟁이라며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가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의 명령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돌아가고 싶고, 가만 놔두는 것이 백 번 좋을 듯한 데도 하나님은 야속하게 ‘가라’고 하셨다.
꼭 죽으러 가는 것 같아 믿음이 없으면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명령이었던 것이다. 이는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과감한 도전이었으며, 한편으로는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쓰시는 자들에게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셨고, 지금도 그렇게 하신다.

이로 보건대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때문에 단 한 번도 과거로 귀환을 명령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했던 롯의 아내를 소금기둥이 되게 하셨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우신 영도자 모세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반기를 들었던 고라와 다단 일행들을 땅에 파묻혀 죽게 하셨다.
이렇게 보면 과거로의 귀환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믿는 자에겐 오직 전진만이 있을 뿐이다. 현재가 비록 고달프고 미래가 불투명할수록 더 큰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등 따뜻하고 배부른 과거로 귀환하는 것은 영혼을 썩게 만든다. 그래서 귀환은 비전이 없는 자의 발상이고 가장 어리석은 자의 소행일 뿐이다.

청소년의 아버지로 불리는 돈 보스코가 이룬 업적들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환호를 하였다. 그가 가는 길에는 화려한 장미꽃이 놓여있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하였다. 장미꽃에 매료된 이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곧이어 그들은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발을 찌르고 피를 내는 가시 때문에 그들은 더 전진할 수가 없었다.
“왜 진작 우리에게 이렇게 수많은 가시가 있다는 것을 얘기하지 않았소.” 많은 사람들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소수의 무리만이 그를 따르고 있었다. 그러자 돈 보스코는 “너희들도 가려느냐”고 반문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그를 따랐고, 돈 보스코도 화려한 장미꽃에 눈을 두지 않은 채, 가시밭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하늘을 바라보는 이는 현재에 머물러서도 안 되고 과거로 귀환은 더욱 안 된다. 오직 전진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가시밭길이고 험난한 십자가의 길일지라도 주님께서 함께하실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위로를 체험하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세상의 안락과 쾌락에 눈 먼 자는 기드온의 삼백 용사가 될 수 없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좁고 협착한 길을 십자가 지고 나아가야 한다.
송흥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