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자신의 비참함을 보며 어쩔 줄 모르는 겸비한 죄인을 더 좋아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기애에 선행과 엄격성으로 먹이를 주어 자라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죽였다는 사실,

 우리의 감정을 극복했다는 것,

 우리의 의로운 행실,

 우리의 인내, 겸손, 초연함등을 되씹어서 음미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을 통하여 영적인 위로를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 일들 안에서 우리의 자기의에 대한 유익한 증거를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향하여 무엇인가 우리가 선한 일을 행했다고 속삭이고 싶어합니다.

 

 우리의 이같은 내적인 증거가 없으면, 우리는 허전하게 여기고 괴로워하며 절망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감각적인 이와 같은 증거들은 초신자들을 돕는 데 유익합니다.

 그것은 갓 태어난 영혼들이 먹어야 할 우유입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우유를 먹어야 합니다.

 그들이 먹는 젖을 빨리 떼는 것은 위험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러한 기쁨을 서서히 거두어 가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강한 자들이 먹는 빵으로 대체시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믿음의 은사 안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은 영혼이 이와 같은 감미롭고 위로하는 증거를 느끼지 않게 될 때, 그는 시련중에도 고요히 참아야 하며, 하나님이 자기의 소유를 빼앗아 갔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자신에 대하여 더 단호하게 대하면서 세리와 같이 자신의 비참함을 하나님께 아뢰면서 그를 향하여 감히 눈을 들 수 없어야 합니다. 이같은 상태 안에서만이 하나님은 영혼을 정결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영혼이 자신의 영혼의 정결함을 보지 못하도록 그것을 그에게서 숨기십니다.

 

 바리새인의 의에 있는 첫번째 결점은 바리새인이 의를 완전희 자신의 행위에서 찾는다는 사실이며,

두번째 잘못은 자신의 힘으로 이 의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적인 증거를 잃지 않으려고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그들은 즐거움과 하나님을 구분할 줄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즐거움이 도망하고 나면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어리석게도 기도가 시련을 통하여 그들의 영혼을 정결케 하고 열매를 맺기 시작할 때,

기도를 포기합니다.

 

 순결한 믿음이라는 드러나지 않는 길을 통하여 하나님을 따릅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숨기시는 그것을 놓치지 맙시다.

 아브라함처럼 갈 바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나아갑시다.

 오직 우리의 비참함과 하나님의 긍휼만을 바라봅시다.

 오직 곧바른 길을 가야겠습니다.

 단순하고 신실하며, 결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리기를 주저하지 맙시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행위, 우리 자신의 감정, 우리의 덕을 의지하지 않도록 크게 주의합시다.

 잠시 동안이라도 만족함이든 불편함이든 우리 자신을 돌아보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만을 향하여

나아갑시다.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드립시다.

 우리의 모든 삶의 순간마다 그를 영화롭게 합시다.

 

- 그리스도인의 완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