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단의 으뜸 부식은 단연 영양가 만점의 배추김치인데, 예나 지금이나 국 한 그릇과 김치 한 접시면 조촐한 한 끼 식단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매 끼마다 없어서는 안 될 배추김치가 요즘 들어 배추 품귀 파동으로 육류반찬 보다 더 귀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어릴 적 식구가 많던 저희 가정에서는 겨울을 나기위해 보통 김장을 한 접(배추 100포기)내지 많게는 두 접(배추 200포기)까지 담아, 그해 겨울과 이듬해 봄까지 김치찌개, 김치볶음, 김치전 등 김치요리 일색으로 한 상이 차려졌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한식 반찬으로 가장 저렴하게 먹을 수 있었던 배추가 품귀 현상을 빚은 이유는 올해 들어 이상기후 현상으로 일조량이 부족한 탓에 배추가 제대로 영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연이 자기소임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작은 것 하나에도 이처럼 소동을 하는데,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자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심판의 때가 오면 얼마나 큰 소동이 일어날까 하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입니다.

30세 때 주님을 만나 흐르는 시간 속에서 깨달은 것은 태산같이 높은 저의 죄악들이었습니다. ‘주님! 반복해서 짓는 죄들로 인해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이런 고민 가운데서 접하게 된 책이 어거스틴의 『참회록』이었습니다.

『참회록』은 어거스틴이 주교가 되어 어느 곳에서나 성자로 추앙받고 있었던 때, 자신은 절대로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고백서인 동시에, 오래 참으시는 주님의 사랑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이 책에서 어거스틴은 자신의 죄들을 낱낱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태로부터 죄인이기에 죄를 범할 수밖에 없고, 죄를 범하여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에 죄를 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어거스틴이 깨달은 인간의 실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절대로 절망할 수 없는 존재인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미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인이기에 어쩔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죄인이기에 더욱 구원이 필요하게 된 존재라는 기독교적 인간관이 성립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의 입에서 고백과 찬양이 터져 나온 까닭이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뿐 아니라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쩔 수 없다”라는 절망 속에서 일어나 “나도 강자가 될 수 있다”라는 것을 가르치는데, 이는 자신의 약함을 아는 자만이 주님의 풍성한 자비를 받을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미 18세 때 아들을 얻고 또한 마니교에 심취하며 육욕의 심연 속에서 살다가, 그의 나이 32세 때 회심하게 됩니다. 그의 친구 알리피우스와 함께 정원에 앉아 있을 때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에 섞인 한 음성을 듣습니다. “내 옆에 있는 성경을 펼쳐 읽어라!” 어거스틴이 펼쳐든 성경 내용은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3~14)였습니다.

그의 삶은 변화되기 시작하였고, 그는 영적으로 계속 성장했습니다. 그는 주교로 사역하며 구원이 은혜로 말미암아 값없이 주어진 선물이라는 진리를 설파하고, 하나님의 실체와 창조, 이 세상에서의 악의 실체 등에 대해 확실히 가르쳤습니다. 그의 그러한 가르침은 훗날 루터와 칼빈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며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을 강조한 종교개혁을 가져왔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울컥하며 내뱉은 한 마디는 ‘오 주님! 당신의 사랑은 한이 없나이다’ 였습니다. 나 같은 죄인도 용서받고 변화 받을 수 있다는 소망이 물밀듯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삶 속에서 아픔과 설움, 거듭되는 죄 속에서 피폐된 영육의 상처와 부끄러움으로 남몰래 눈물을 흘립니다. J. 플랜바흐는 ‘죄란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인식은 죄에 대한 자책에서 우리를 더욱 자유로운 삶으로 초대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주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셔서 변화시키고 성장시키시도록 우리를 내놓는 것입니다. 연약한 자신에 대해 절망하지 않고 진실한 회개를 할 때, 우리는 자신의 잘못을 이해받고 용서 받을 수 있음을 단순하게 믿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 때문에 결코 쉽지만은 않은 회개의 삶으로 인도되는 우리는 진정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소임은 자신을 돌아보며 언행심사를 열심히 씻고 닦는 일입니다. 넘치도록 풍성한 주님의 보혈로 씻고 닦은 자는 심판의 때에 주님 발 앞에 다소곳이 무릎 꿇고 눈물로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게 되겠지요.

박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