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마음을 기도로 가득 채우라

미투 운동으로 사회가 온통 시끄럽다. 예외이길 바랐던 교회에서도 목회자의 성문제를 고발하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신학교 때, 목회 윤리학 시간의 필독서를 쓴 목사가 성문제로 고발당했다는 소식은 꽤 충격이 컸다. 미국 전역 뿐 아니라 전 세계 목회자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불명예에 처하게 되었을까? 그의 잘못을 비판하기 이전에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은 나 또한 영적 성취감 뒤에 밀려오는 공허함을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무언가 해냈다는 안도의 한숨 뒤에 찾아오는 육신의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를 잘 다스리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얼마 전, 어느 찬양사역자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은 조심스럽게 이러한 고백을 하였다. “저는 과거에 찬양사역을 하고 내려오면 온 몸에 힘이 쑥 빠져나간 듯했습니다. 영적으로 탈진되어 곤고한 마음을 가누기가 힘들었습니다. 기도로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도의 분량을 채우지 못해 세상 것으로 채우려 방황하다가 지금은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 찬양 사역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고백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큰 사역도 없고, 큰 은사를 행할 능력도 없지만 주의 일을 감당하고 난 뒤 느끼는 곤고함에는 동질감이 느껴졌다. 열심히 준비했던 수련회가 끝나고 난 뒤, 혼신의 힘을 다해 사역을 감당하고 나면 왠지 모를 공허함과 허탈함이 마음에 밀려들었다. 그러면 이제 좀 쉬어야지.’ 하는 마음과 함께 세상적인 잔재미를 누리고 싶은 마음을 물리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기에 미리 모범을 보여주셨나 보다. 사역이 커지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할 때, 예수님은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 기도하셨다(5:16). 오병이어 기적을 경험한 무리들이 주님께 매료되어 배까지 타고 좇을 때, 오히려 그들의 폐부를 찌르는 말씀으로 지지율을 떨어뜨리셨다(6:26). 주님이 행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행하고 신이 난 제자들에게, 오직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갖도록 도우셨다(10:20). 예수님은 큰 기적을 행하신 뒤 그 자리에 머무시는 법이 없었다. 사역지를 떠나 기적을 행한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엎드리셨다.

고 마태오 선교사의 경험담은 주님의 뜻을 더 분명히 알려준다. 그는 낯선 땅 캐나다 퀘벡 주에 처음 임명받고 열심히 목회하였다. 마을에는 회개하지 않기로 유명한 아스랑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를 회개시키려던 전임자들이 많았지만 모두 두 손 두 발 들고 포기한, 흉악하기로 유명한 죄인이었다. 처음 찾아간 날부터 쌍욕과 함께 문전박대를 당했다. 포기하지 않고 사랑과 용기로 계속해서 찾아갔다. 성직자가 아닌 친구로서 대화하기 위해 몇 달 동안 수염을 기르고, 일부러 씻지 않고 거친 모습으로 찾아갔다. 그가 주는 해괴한 음식들도 서슴지 않고 먹었다. 그 노력에 감동한 아스랑은 마침내 마음문을 열었고, 눈물의 회개를 하게 되었다. 모두가 포기한 죄인을 회개시킨 그날 밤, 이상하게도 마음에 외로움이 찾아왔다. 갑자기 몸에서 힘이 쑥 빠져 나가 쓰러질 것 같은 현기증을 느꼈다.

그때 무릎을 꿇고 주님께 기도드렸다. “주님께서 부여하신 중대한 임무를 완수했는데, 왜 제 마음이 텅 비어오는 것 같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성경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나도 큰일을 하고 나서는 외딴 곳으로 가서 기도드리곤 했단다. 승리나 성공에서 느끼게 되는 기쁨은 자칫하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기 쉬우나, 반대로 지금 네가 느끼는 외로움은 너를 기도로 초대하고 있단다. 그것은 나와 함께하기 위해서다. 승리나 성공에 도취된 마음을 항상 비워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보다 큰 은총이 거기에 자리하실 것이다.”

때로 사역에 힘을 쏟고 난 빈 마음에 허탈함이 밀려들 때, 기도의 자리로 우릴 초대하시는 주님의 숨결을 느껴야 한다. 영적인 일에 전력한 후 쉬고 싶은 마음이 찾아 올 때, 우리의 심장은 쉬는 날이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영혼의 호흡인 기도가 멈추는 순간, 생명도 끝이다. 영적 휴가는 존재할 수 없다. 화려한 사역지에 머문 시간 보다 더 오랜 시간 주님 앞에 머물러 치열하게 싸웠던 영적 전투보다 더 간절하게 주님 앞에 엎드리자. 우리 일생의 한순간도 주님의 것이 아닌 순간은 없으니.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