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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혼만 더 구하게 하소서
데스몬드 도스는 1919년 미국 버지니아 주 린치버그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적 그의 아버지는 자주 술을 마시고 아내를 폭행했는데 한번은 술을 마시고 아내를 권총으로 위협하기까지 했다. 이때 데스몬드는 총을 빼앗아 아버지의 머리에 겨누는데, 결국 내려놓으며 다시는 총을 손에 쥐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계기가 된다. 또한 어머니의 철저한 신앙교육으로 어릴 때부터 살인은 가장 큰 죄악이라는 것을 교육받으며 자랐다.
2차 세계대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던 1942년 4월, 청년이 된 데스몬드는 미 육군에 입대하게 된다. 살인하지 않겠다는 그의 신념을 지키기 원해 집총을 거부하고 의무병에 지원한다. 이로 인해 신병교육소에서부터 갖은 회유와 협박을 당하며 동료들에게 폭행까지 당한다. 집총하던지 아니면 감옥에서 복역하라며 군사 재판에까지 회유되지만, 연방대법원에서 집총하지 않고 참전할 수 있는 권리를 허락받아 부대 내 유일한 의무병이 된다.
1945년 5월 5일, 도스가 소속된 미 육군 제77보병사단은 오키나와 마에다 절벽 반대편에 숨어있는 일본군 지휘소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하달 받고 200여명이 벼랑을 향해 진격한다. 1대대가 도착하자마자 일본군의 치열한 공격이 시작되고, 대포와 기관총의 집중 포화에 맞아 100여명이 순식간에 쓰러져 살아남은 55명만이 긴급히 후퇴하게 된다.
1대대의 유일한 의무병이던 도스는 부상당한 병사들을 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후퇴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제가 어쩌길 바라시는 겁니까? 저는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는데 부상당한 아군들의 소리를 듣는다. “의무병 도와줘!” “주님, 살려주세요!”
그때 그는 위험천만한 적진 한복판에서 홀로 남아 임무를 시작한다. 비처럼 쏟아지는 포화 속에서 굴하지 않고 쓰러진 동료들을 찾아다녔고, 만일 살아있는 동료가 있으면 들쳐 업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 절벽 아래의 아군 기지로 내려 보냈다. 한 명 한 명 부상자들을 구할 때마다 그의 군복은 부상자들의 피로 흠뻑 젖어 검붉어 지고, 밧줄을 내린 손은 벗겨져 속살이 드러났다. 온 몸의 힘은 다 빠져 자신의 생사도 오락가락하는 극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 명을 구할 때마다 기도했다. “주님, 한명만 더 구하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하고 나면 다시 힘이 생겨 또 다시 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 그렇게 필사의 구조 작업을 하던 중, 다리에 부상을 입고 본진으로 귀환했다. 그렇게 그가 살린 병사의 수는 총 75명이었다.
믿기 힘든 이 일화가 담긴 영화를 최근에 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 총기하나 가지지 않은 병사가 75명의 생명을 구했다는 것은 그의 희생과 헌신이 하나님의 기적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을 의미했다. 무엇보다 데스몬드가 한 명 한 명 구할 때마다 쓰러져 외친 기도가 귓가에 맴돌았다. “주님, 한명만 더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내게 여러 가지 직분과 역할을 감당하게 하셨지만, 사실 그 모든 일은 바로 ‘영혼을 살리는 일’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주일학교 교사를 했는데, 그 이후로 계속 영혼을 섬기는 일을 해왔다. 비록 많은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진 못했지만 한 사람 한 사람 내게 보내 주신 영혼들을 말씀과 사랑으로 섬기는 일이 즐거웠다. 그래서 대학생 때 이렇게 기도했었다. “하나님, 저는 평생 ‘한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어요.” 이 기도를 들으신 건지 이제는 사람들의 영혼을 살리고 섬기는 일을 전담하는 사역자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영혼을 살리는 일에 열정을 잃어가고 있었다. 어린아이 나 어른이나 사람들은 풍요로운 세상 속에서 영적인 것에 관심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보다 더 큰 즐거움을 교회에서 찾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런 시대에 사역자로 살아가는 내가 오히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영혼을 더 끌어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그저 맡겨 주신 영혼들이나 잘 관리하자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데스몬드 도스를 통해 ‘희생과 헌신은 하나님의 기적을 불러일으키고, 그 기적이 바로 한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는 것’을 보게 하셨다. 자기연민에 빠져 현재에 만족했던 것은 십자가를 싫어하는 이기심이 자리 잡고 있던 탓이었다. 현실을 탓하며 ‘현상유지’를 목표로 삼았던 것을 회개하니, 이제야 구해야 할 영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더 데레사는 말했다. “영혼들을 하나님께 데려가고 싶다면 매일같이 죽어야 합니다. 그분이 영혼들을 찾으며 걸으셨던 길을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영혼을 하나님께 데려가고 싶은 소원으로, 자아의 모든 시끄러운 요구에도 매일 죽음을 선포하는 사람에게는 시대도 상황도 더 이상 핑계가 되지 않는다. 그에게는 오로지 한 가지 갈망이 있을 뿐이다.
“주님, 한 영혼만 더 구하게 하소서!”
박하영
데스몬드 도스는 1919년 미국 버지니아 주 린치버그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적 그의 아버지는 자주 술을 마시고 아내를 폭행했는데 한번은 술을 마시고 아내를 권총으로 위협하기까지 했다. 이때 데스몬드는 총을 빼앗아 아버지의 머리에 겨누는데, 결국 내려놓으며 다시는 총을 손에 쥐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계기가 된다. 또한 어머니의 철저한 신앙교육으로 어릴 때부터 살인은 가장 큰 죄악이라는 것을 교육받으며 자랐다.
2차 세계대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던 1942년 4월, 청년이 된 데스몬드는 미 육군에 입대하게 된다. 살인하지 않겠다는 그의 신념을 지키기 원해 집총을 거부하고 의무병에 지원한다. 이로 인해 신병교육소에서부터 갖은 회유와 협박을 당하며 동료들에게 폭행까지 당한다. 집총하던지 아니면 감옥에서 복역하라며 군사 재판에까지 회유되지만, 연방대법원에서 집총하지 않고 참전할 수 있는 권리를 허락받아 부대 내 유일한 의무병이 된다.
1945년 5월 5일, 도스가 소속된 미 육군 제77보병사단은 오키나와 마에다 절벽 반대편에 숨어있는 일본군 지휘소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하달 받고 200여명이 벼랑을 향해 진격한다. 1대대가 도착하자마자 일본군의 치열한 공격이 시작되고, 대포와 기관총의 집중 포화에 맞아 100여명이 순식간에 쓰러져 살아남은 55명만이 긴급히 후퇴하게 된다.
1대대의 유일한 의무병이던 도스는 부상당한 병사들을 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후퇴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제가 어쩌길 바라시는 겁니까? 저는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는데 부상당한 아군들의 소리를 듣는다. “의무병 도와줘!” “주님, 살려주세요!”
그때 그는 위험천만한 적진 한복판에서 홀로 남아 임무를 시작한다. 비처럼 쏟아지는 포화 속에서 굴하지 않고 쓰러진 동료들을 찾아다녔고, 만일 살아있는 동료가 있으면 들쳐 업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 절벽 아래의 아군 기지로 내려 보냈다. 한 명 한 명 부상자들을 구할 때마다 그의 군복은 부상자들의 피로 흠뻑 젖어 검붉어 지고, 밧줄을 내린 손은 벗겨져 속살이 드러났다. 온 몸의 힘은 다 빠져 자신의 생사도 오락가락하는 극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 명을 구할 때마다 기도했다. “주님, 한명만 더 구하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하고 나면 다시 힘이 생겨 또 다시 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 그렇게 필사의 구조 작업을 하던 중, 다리에 부상을 입고 본진으로 귀환했다. 그렇게 그가 살린 병사의 수는 총 75명이었다.
믿기 힘든 이 일화가 담긴 영화를 최근에 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 총기하나 가지지 않은 병사가 75명의 생명을 구했다는 것은 그의 희생과 헌신이 하나님의 기적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을 의미했다. 무엇보다 데스몬드가 한 명 한 명 구할 때마다 쓰러져 외친 기도가 귓가에 맴돌았다. “주님, 한명만 더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내게 여러 가지 직분과 역할을 감당하게 하셨지만, 사실 그 모든 일은 바로 ‘영혼을 살리는 일’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주일학교 교사를 했는데, 그 이후로 계속 영혼을 섬기는 일을 해왔다. 비록 많은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진 못했지만 한 사람 한 사람 내게 보내 주신 영혼들을 말씀과 사랑으로 섬기는 일이 즐거웠다. 그래서 대학생 때 이렇게 기도했었다. “하나님, 저는 평생 ‘한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어요.” 이 기도를 들으신 건지 이제는 사람들의 영혼을 살리고 섬기는 일을 전담하는 사역자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영혼을 살리는 일에 열정을 잃어가고 있었다. 어린아이 나 어른이나 사람들은 풍요로운 세상 속에서 영적인 것에 관심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보다 더 큰 즐거움을 교회에서 찾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런 시대에 사역자로 살아가는 내가 오히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영혼을 더 끌어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그저 맡겨 주신 영혼들이나 잘 관리하자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데스몬드 도스를 통해 ‘희생과 헌신은 하나님의 기적을 불러일으키고, 그 기적이 바로 한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는 것’을 보게 하셨다. 자기연민에 빠져 현재에 만족했던 것은 십자가를 싫어하는 이기심이 자리 잡고 있던 탓이었다. 현실을 탓하며 ‘현상유지’를 목표로 삼았던 것을 회개하니, 이제야 구해야 할 영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더 데레사는 말했다. “영혼들을 하나님께 데려가고 싶다면 매일같이 죽어야 합니다. 그분이 영혼들을 찾으며 걸으셨던 길을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영혼을 하나님께 데려가고 싶은 소원으로, 자아의 모든 시끄러운 요구에도 매일 죽음을 선포하는 사람에게는 시대도 상황도 더 이상 핑계가 되지 않는다. 그에게는 오로지 한 가지 갈망이 있을 뿐이다.
“주님, 한 영혼만 더 구하게 하소서!”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