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로 ‘꽉’ 채워진 교회로 돌아가자

지난 49일 한국을 방문한 마이클 호튼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교수는 미국교회가 처한 현실을 탄식했다. “미국교회는 더 이상 세속화된 문화의 피해자가 아니다. 교회 스스로 세속화를 만들어내는 공장이 됐고, 불신앙을 기르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믿음을 아주 하찮게 여기는 현상이 팽배하다.” 이런 탄식은 한국교회에도 해당된다. 세속화한 지 오래되어 교회는 빛이 흐려졌고, 짠맛을 잃어 밖에 버려져 안티 세력들에게 짓밟히고 있는 실정이다.

 

영성을 상실한 교회

현대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을 잃어버렸다. 강단은 언제부터인가 예수님의 청빈과 순결과 순종의 영성을 외면하고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 마치 복음인 양 외치기 시작했다. 교세가 늘어나고 부해지면서 영성은 약해졌고, 하나님의 거룩이 아닌 맘몬이 주도하는 기복신앙, 물질만능, 물량주의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말았다.

이와 맞물려 교회와 성도들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고 있다. 안으로는 교회가 더 이상 거룩하지 않다고 하는 자기비판과 밖으로는 강력한 안티 세력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기독교가 합리성과 충돌한다고, 민족주의적 정서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이념적인 갈등에서 한쪽으로 치우친다고, 현대문화의 다양성을 이해 못한다고, 종교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너무 자신들만의 절대적 진리를 강요한다고 또한 막강한 인적, 물적 자원을 가졌으면서도 그만큼 사회적 책임에 소홀하다고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가장 뼈아픈 비판은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전하는 말이 너무 다르다는 지적이다. 마이클 호튼 교수는 세속화한 교회를 향해 그리스도가 사라진 이 시대의 기독교를 신앙의 핵심인 영성을 되찾아 그리스도로 꽉 채워진 기독교로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교회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신 그리스도의 영성이 마치 빛바랜 옛날이야기처럼 되고 말았다.

교회 안에서 10대나 20~30대 젊은이들을 찾기 어렵고 혹 보여도 주일 오전예배만 달랑 드리는 게 흔한 현상이다. 장년들도 편한 신앙생활하려고 하지 십자가를 진다든가 자기희생을 꺼려하는 현실이다. 심지어 이런저런 이유로, 특히 부담 갖지 않으려고 교회에 안 나가고 혼자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으로 예배를 드리는 가나안성도가 그렇게 많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에 그리스도란 단어는 있는데 알맹이가 없는 허울만 남았다고나 할까.

 

욜로족 세상

그러고 보니 알맹이 없는 교회가 요즘 유행어 중에 욜로족이란 단어의 이미지와 많이 닮은 듯하다.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의 이니셜인데, ‘인생은 한 번뿐이니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고 삶을 마음껏 즐기고 소비하라.’는 의미다.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기보다는 자신의 현재 행복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남보다 자신, 미래보다 현세의 행복을 중시하는 태도다.

예컨대 건강한 음식보다 자극적이더라도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당장의 행복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취미생활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자신의 행복을 위해 마음껏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그리스도의 영성은 다분히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지는 자기희생과 이타적 사랑을 근간으로 한다. 현세적 행복보다는 영적인 행복과 내세의 영광과 상급을 추구하는 것이다. 교회가 영적인 힘을 잃다보니 그리스도인들은 영성이 약해져서 세상의 자기중심적인 가치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무기력한 것이다.

주변의 10대에서 40대 연령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욜로족이 되어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패션을 완성하기 위해 과감하게 돈을 지불하고, 사회관계망(SNS)으로 소통하느라 바쁘다. 스마트폰을 통한 텔레비전, 영화, 게임, 웹소설, 웹툰, 각종 뉴스와 동영상 등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문제는 이런 활동이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자기관리를 잘 하기 어려워 자칫 역습을 당하기 쉽다. 토요일 밤늦게까지 문화콘텐츠를 즐기느라 늦게 잠을 자다보니 정작 주일예배 시간에 제때에 일어나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너무 많다. 엄마나 교회 선생님의 성화에 겨우 눈을 뜨고 교회에 오기는 하지만, 잠 부족으로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고 눈은 졸음을 이기지 못한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영적으로 해를 끼치는 악습이라고 한다. 이것이 오랫동안 굳어져 이제는 그 해악을 알고 끊고자 하나 중독성이 강하여 마음대로 끊지도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반복된다.

 

경건한 삶을 살라

성경은 영적인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한다.”(고전9:25)고 했다. 성도는 영적인 싸움의 대상인 마귀와 세상(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과 역경을 순간순간 극복하면서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이런 영성생활을 잘 하려면 성령충만과 은혜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기력하게 역습을 당하기 쉽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8:7,8).

경건생활은 하나님께서 흠향하시는 삶을 살고자 하는 중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 기독교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는 모든 행동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이다. 더 이상 자기의 뜻과 생활방식이나 세상의 흐름을 따라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는 것,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중심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런 진심을 가지고 은혜를 구할 때 사업이나 오락이나 쾌락이나 어느 것이든지, 일상의 삶에서 불경건한 것에 대해 큰 혐오감을 느끼게 되고 새롭게 결단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주어지면 또다시 정욕으로 기울어지는 자신과 대면하면서, 탄식하고 절망하면서 뼈저린 참회로 이어져야 성령께서 점진적으로 경건의 길로 인도하신다.

우리는 유혹 과잉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조차 천국소망 없이 욜로족이 되어가고 있다. 잘못된 욕망을 절제하고 올바르고 건전한 방향으로 살 것인지 해답을 찾아야 한다. 강단에서 누룩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말씀을 선포하고, 성도들은 영성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밝은 빛을 비추자. 아무리 경건과 절제가 힘들고 어렵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계속 노력하고 기도하자. 세상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 거룩한 싸움을 하는 영적인 사람들이 되어 그리스도가 사라진 교회에 다시 그리스도께서 오시도록 하자.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