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어디예요, 오늘은 집에 있을 건가요?

몇 달 전쯤, 서점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어 구입하였다. 상처 입은 치유자의 저자 헨리 나웬이 지은 탕자의 귀향이라는 책이었다. 렘브란트의 그림 탕자의 귀향을 통해서 누가복음 1511~32절 말씀을 묵상한 내용인데 저자가 한 본문에 깊이 침잠하여 살아내고자 애쓰는 과정이 잘 담겨 있었다. 한 권의 책을 몇 달에 걸쳐 보게 되었는데 책의 두께가 꽤 두꺼운 탓도 있었지만 와 닿는 구절이 있을 때마다 바로 책장을 넘기지 않고 생각할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저자를 따라가는 동안 내가 바로 탕자임을 발견하고 아버지 집을 찾는 은혜가 있었다.

헨리 나웬은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성직자였다. 노트르담대학에서 예일대학, 예일대학에서 하버드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주변사람들의 존경과 인정을 한 몸에 받는 교수였다. 그러나 어느 날, 내면의 깊은 갈망과 직면하게 된다. 느닷없이 찾아온 영혼의 고독 속에서 인생에 가장 큰 불행의 시기를 맞게 된다. 그때 지적 장애인들의 공동체인 라르쉬 데이브레이크를 알게 되고 그곳에 정착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된다.

1986, 헨리 나웬은 처음으로 라르쉬 데이브레이크에 들어갔다. 공동체 측에서는 지적 장애를 가진 이들 몇몇이 함께 지내는 곳에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그 가운데 존이 있었는데, 여러 해째 공동체에 살면서 붙박이로 뿌리내린 중년 남성이었다. 열 명 남짓 되는 동료들 중 최고참이었다. 그런데 존에게는 낯선 이를 만날 때마다 다짜고짜 집이 어디예요?”라고 묻는 버릇이 있었다. 자주 만나는 주변 인물들도 늘 이 질문을 받았다. 공동체를 오가는 도우미들을 지켜보고 있다가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오늘 밤에는 집에 있을 건가요?” 헨리 나웬도 이 질문의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두 번째 질문은 유난히 통렬해서 함께 저녁밥을 먹지 못하는 까닭을 더듬더듬 설명해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가 집이 어디예요?”오늘 밤엔 집에 있을 건가요?”라는 질문에 담긴 복합적인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5년이라는 세월이 더 필요했다. 헨리 나웬에게 존은 그가 여전히 집으로 가는 여행 중임을 확실하고도 지속적으로 일깨워주는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존이 했던 질문들은 내게도 꽤 큰 반향을 일으켰다. 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집에 사는 사람’(은총수도원)이라 불리기도 하고, 하나님과 아주 가까이 지내는 사람으로 여김 받는다. 세상이 부르는 나의 직업은 종교인이다. 그런데 나는 있어야 할 아버지 집에 거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아무리 독실해 보이는 신자라 할지라도 이 질문에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아버지 집이라는 것이 어떤 물질적인 공간이 아니라, 아버지와 자녀가 서로 사랑하며 신뢰하는 관계임을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관계는 한 번 맺었다고 영원한 것이 아니라, 날마다 순간마다 새롭게 다져야 하는 것이다. 평생을 하나님 안에 있었다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그 음성에 반응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오늘 나는 탕자일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은 내게 늘 내 사랑하는 딸아!”라고 말씀하시지만, 나는 그 음성을 잘 듣지 못했다. 아버지와 사랑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내 욕심으로 실컷 일하고 나면 허무함이 몰려왔다. 영상물을 즐겨 보고, 마음속에 일어나는 짜증, 인정받고 싶은 욕구, 질투를 내버려 두었다. 아버지 집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명확한 증표였다. 누가 조금만 싫은 소리를 해도 화가 나고, 별것 아닌 거절에도 깊이 상심했다. 의미 없는 칭찬에 기뻐하고, 사소한 일에 흥분했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죄의 열매로 허기를 채우고 있을 때,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던 그때의 행복이 떠올랐다. 가슴 벅찬 사랑으로 아버지 집에 불러주신 것에 감격했던 그때가 그리웠다.

다시, 하루의 첫 시간을 말씀 앞에 독대하며 아버지와 관계를 회복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는 생명을 택하라. 너는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할 것이다.” 그날 아침 신명기 약속의 말씀을 받은 순간, 다시 집에 돌아온 것을 깨달았다.

돌아온 탕자는 다시 집을 나갈 확률이 높다. 내가 거처할 집은 어디인지, 오늘 밤에도 나는 이 집에서 머물 것인지 묻고 또 묻는다. 내가 거할 집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오롯이 사랑하는 곳, 가족도 친구도 지인도 의지하지 않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만을 신뢰하는 곳이다.

나는 오늘 밤도 이 집에서 행복을 누릴 것이다. 아버지 집에서 실컷 일하고 뒤돌아 허무해 하는 어리석음을 버리려고 한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든 이를 성실하게 섬기고 사랑하는 사명, 주님만을 오롯이 사랑하라고 불러주신 즐거운 사명을 잘 감당하면서 그 경험을 날마다 전해야 하겠다. 아버지 집에 거하는 매일매일이 더 깊어지는 은총으로 충만하여서, 불러주신 자리에 대한 책임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쁨이기를 원한다, 온전하신 주님의 은혜로.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