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무엇이관대

남편은 뇌세포가 파괴되는 희귀병인 헌팅턴 병을 앓고 있다. 발병한지 17년이 되어간다. 병이 악화되어 3년 전 호흡정지와 심정지가 일어나 119를 통해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하였다. 기적적으로 심장박동은 회복되었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진단과는 달리 남편은 인공호흡기를 떼고 석 달 만에 집으로 퇴원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도 고개를 돌릴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다. 눈을 뜨고 감는다거나 하품을 하는 정도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대개 중증 환자는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지내다 보니 바닥에 직접 닿는 부위에 욕창이 생긴다. 소화기능이 약화되어 위, 소장, 대장의 운동력이 떨어져 소화와 배변활동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남편은 지난해에도 수차례 장 마비 증세로 짧게는 한 주 길게는 한 달가량 입 퇴원을 반복했다. 지난달에도 3주간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서 간병을 하다보면 몸과 마음이 지치기는 하지만 주님은 영혼에 큰 유익을 주신다. 차량으로 10분 거리에 기독교 재단이 운영하는 종합병원이 있어 그곳을 이용하는데 병원 13층에는 베데스다 홀이라 명한 예배처소에서 매일 새벽예배와 두 차례 찬양기도회가 드려진다. 새벽예배에서 말씀을 전하신 목사님은 모인 분들에게 간곡하게 중보기도를 요청하셨다.

맨 앞줄에 세 분이 앉아 계셨는데, 그분들은 지금 혈액암으로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는 20대 아들의 부모님과 누나라고 소개했다. 투병중인 아들로 인하여 주님께 나왔으니 믿음을 주시고 치료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통성으로 합심기도를 하자고 하셨다. 예배에 참석한 분들은 대략 열다섯 분인데 대부분이 환자이거나 보호자였다. 모인 분들은 가슴을 치며 큰 소리로 간절하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환자와 부모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 가슴이 저려왔다.

가슴이 저리다’, ‘가슴이 찢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안다. 아픈 가족을 보면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프고 가슴 주위의 뼈까지 아파 가슴이 저려온다. 수액 링거를 걸고 새벽예배에 참석한 환자 한 분이 혈액암으로 투병중인 아들의 가족에게 다가가서 어머니를 감싸 안았다. 아들의 어머니를 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본인의 몸도 아파 힘들 텐데 자신보다 더 아파하는 가족을 위해 그들을 끌어안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 모든 사물은 사라지고 그곳에만 한 줄기 빛이 임한 듯 거룩함과 숭고함이 느껴졌다. 중보기도를 할 때 우리는 주님의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받아 내 안에 주님 닮은 마음이 점점 더 커지게 되는 것 같다.

남편이 입원한 병실은 중환자분들이 대부분이다. 89세의 할머니는 당뇨합병증으로 5년 전부터 신장투석을 하시다가 3개월 전에 갑자기 심정지가 일어났다. 한 달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으시고 병실로 오게 되었다.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다. 그동안 셋째 따님이 집에서 모시면서 일주일에 두 차례 통원으로 신장투석치료를 받는 중에 완전히 누워 지내게 되셨다. 간병인이 왔으나 산소 호흡기에다 혈압, 맥박, 산소포화도 수치를 나타내는 기계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것을 보더니 다음 날 못하겠다는 통보를 하고 도망치듯이 갔다고 한다. 따님은 3개월 동안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간병하고 계셨다. 내가 어떻게 그렇게 잘 돌보시냐?”고 했더니, 그분은 아니 남편은 남이라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돌보냐?”고 되물어 서로 한 바탕 웃었다.

주위에서 친구들이 이제 60세가 넘었는데 건강하게 다닐 수 있을 때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녀야 한다면서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는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그분은 내가 어떠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고 후회하지 않는 것일까?’를 깊이 생각한 결과, 사랑하는 어머니를 간병하는 것이 다른 어떠한 것과 바꿀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잠시면 사라지고 싫증나는 것을 찾아 즐기고 얻고 가지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영원히 남는 것, 사랑과 인내와 눈물을 선택하는 삶이 참으로 가치 있고 행복하다. 이를 깨닫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고 감사인지 말로 다 할 수 없다. 비록 몸과 마음은 고되고 사랑하는 사람이 병들어 아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하다. 우리는 같은 마음과 생각을 나누면서 서로 힘과 용기를 얻었다.

그러나 너무나 안타까운 일은 이 분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분에게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만나게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그 기회가 왔다. 맞은편 환자는 7년 전 유방암 치료를 받았으나 재발하여 지금은 임파선과 여러 부위에 암이 전이된 몹시 어려운 상황이다. 그녀를 보살피는 간병인은 사모님이신데 몇 년 전까지 몽골에서 선교하셨다. 최근에는 남편 목사님은 캄보디아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캄보디아로 떠나셨다. 사모님은 당분간 간병 일을 하다 합류하기로 했다고 한다. 신앙에 관한 열띤 대화의 장이 펼쳐졌다.

어머니를 간병하시는 분이 하나님을 믿으면 믿음의 고백을 하면 되지 왜 꼭 교회에 가야하느냐?”고 질문을 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10:17)는 말씀이 있어요. 우리는 믿음의 표현을 행함으로 나타내야 하는데 그것은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림으로 나타나요. 무엇보다도 목사님이 전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 믿음이 자라납니다.”

간병 일을 하시는 사모님은 진화론의 허구와 창조론의 진실에 대한 부연 설명도 하셨다. 그때 암으로 투병하는 자매님이 말했다.

저도 암 투병하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교회를 들락날락하는 가짜 성도로 지냈어요. 그런데 암이 딱 걸리니까 주님을 간절히 찾기 시작했어요. 너무 통증이 심하고 고통스러운데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고 또 누구도 이 아픔을 알 수 없는데 오직 주님은 아시더라고요. 주님은 꿈에서도 만나주시고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도움을 주시더라고요. 저는 암을 통해 주님을 진짜로 만난 것에 감사해요. 아니면 저는 지금도 주님을 못 만났을 거예요. 주님은 정말 살아 계세요.”

나 또한 언니와 형부, 주위의 믿음의 스승들이 옆에 있어 주어 그분들의 기도와 도움으로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주님을 따라 사는 기쁨과 행복의 삶을 체험하며 살고 있다. 이 분도 예수님을 만나 세상이 알 수 없는 큰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기적이 오기를 기도했다. 그렇다. 나같이 보잘 것 없고 부끄러운 죄인이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 미흡하나마 따르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 중의 축복인가.

사람이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8:4).

박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