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야곱은 130년이라는 긴 나그네 인생을 통해 조부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었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만나게 된다. 아버지가 믿고 따르던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그토록 고된 광야 길을 걷게 하시는 걸까? 수없는 원망과 반항과 의문이 꼬리를 물었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 이삭의 바보스러움이 드디어 자신의 마음으로 들어오며 아버지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그도 아버지의 길을 걷게 된다.


부끄러웠던 아버지의 맨발

“부끄러웠던 맨발의 아버지가 이제는 제 인생의 모델입니다.” 맨발의 천사, 고 최춘선 할아버지의 아들 최바울 목사님의 고백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너무나 창피스럽고 부끄러웠다. 비렁뱅이 같은 옷차림에, 광인처럼 보이는 아버지의 우스꽝스럽고 기이한 행동에 나의 아버지라고 고백할 수 없었던 그는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이 너무나 싫었다.

40년 넘게 항상 맨발로 지하철을 다니면서 전도를 하셨던 아버지는 젊은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였으며 5개 국어를 하는 수재셨다. 그러한 아버지가 어느 날 말씀을 깨달은 후 이상하게 돌변하셨다. 김포일대에 소유했던 넓은 땅을 살 곳 없는 사람들에 그냥 나눠 주고, 양로원, 고아원 등을 운영하면서 굶주리고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기 시작하셨다.

평소 존경하시던 하천풍언, 다미안 등 그분들이 걸어가셨던 그 길을 아버지도 따르고 계셨다. 그러나 사춘기 시절 아버지는 그의 발에 박힌 가시이며 고통 그 자체이셨다.

진눈깨비 날리던 추운겨울 어느 날, 아침을 막 들기 전이었다. 백여 명의 고아와 네 명의 동생과 그 틈에 끼인 그는 사근동 판잣집에서 강제로 쫓겨나야만 했다. 잡동사니들과 함께 실린 트럭 한 구석에서 서럽다 못해 비굴하기 그지없는 신세를 한탄하고 있을 때 아버지는 찬송가를 부르고 계셨다. 그때 그는 다짐했다. 절대, 절대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무려 30년 동안 서른 번을 이사하면서 고달픈 인생을 살았던 그에게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은 고약한 하나님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나이 열일곱에 찾아온 하나님 앞에 아버지가 만났던 그 하나님을 인정해 드릴 수밖에 없었다. 인정을 하고나니 그가 가야할 길이 보였고, 모양은 달라도 그 또한 아버지가 가신 길을 가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력이 다하신 아버지께서 한번은 식사 중에 ‘아가 숟가락 좀 가벼운 거 없니?’라고 하셨다. ‘얼마나 기력이 떨어지셨으면 숟가락이 무겁다고 하실까’하고 맘이 아팠지만 그는 아버지의 전도를 막을 수가 없었다. 또 어느 날은 갈라져 피가 나오는 발에 깊이 박힌 유리조각을 빼내며 ‘이제 그만 나가시라”고 애원했지만 아버지의 열정을 말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굳어지고 갈라진 그 발이 가장 닮고 싶은 발이 되었다. 고통도 수욕도 멸시도 아랑곳하지 않으신 채 예수님의 피 묻은 가시밭길을 묵묵히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따라가셨던 그 아버지의 발이 사무치도록 그리운 발이 되었다. 그토록 초라해보였던 아버지의 굽은 등이 그의 가슴에 거대한 산으로 우뚝 솟아 있었다. 고통도 피로도 잊은 채 “충성은 열매 가운데 하나요.”라던 아버지의 그 한마디가 이제는 자신의 영혼을 깨우는 채찍이 되었다.

그는 생전에 육신의 고통까지도 견뎌가며 전도에 힘썼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면 절로 목이 메여 왔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얼굴은 아버지 닮았는데 아직 발은 아니에요. 아버지께서 평생 외치고 사셨고 나누고자 하셨던 삶을 살아가고 싶은데 구두가 너무 두꺼워요. 그렇지만 아버지가 가셨던 그 길을 부족하지만 느리지만 그래도 아버지 따라가려고 해요. 아버지 아들답다는 소리 듣고, 아버지가 나누셨던 그 예수님의 사랑을 평생 외치며 사는 아버지 같은 전도자 되길 원합니다. 온 세상 날 버려도 하나님은 안 버려 그 말씀 늘 기억하면서 아버지 따라가겠습니다.”

창끝에서 시작된 아버지의 가르침

스티브 세인트 선교사는 ‘창끝’에 등장하는 와오다니 족에게 살해당한 다섯 선교사 중 네이트 세인트(Nate Saint)의 아들이다.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에콰도르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사역을 ‘창끝’에 담아내었다.

네이트 세인트가 아마존 정글로 떠나기 전 아들 스티브에게 작별인사를 하자, 스티브는 아버지에게 위험이 닥치면 총을 쏠거냐고 질문을 한다. 그러자 아버지는 와오다니 족에게 총을 쏠 수가 없다고 하면서 “우리는 주님을 믿기에 천국에 갈 수 있지만, 그들에겐 아직 복음이 전파되지 않았기에 천국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잖니?”라는 말을 덧붙인다.

비행기로 와오다니 마을을 탐색하면서 그들의 거처를 확인한 네이트 세인트와 그의 친구들은 바구니에 먹을 것을 달아내려 보낸 것을 시작으로 나중엔 선물까지 교환하게 되었다. 이에 자신감을 가진 그들은 종려강변에 착륙하지만 부족 내에 일어난 갈등으로 와오다니 족에게 창으로 무참히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그들은 창에 찔리어 피를 흘리면서도 총을 쏘지 않았고, “우린 당신들의 친구예요”라면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잔인한 와오다니 족은 창끝을 날렸다.

이 충격적인 사실을 접한 아들 스티브는 아버지의 피가 묻어있는 원수의 땅을 다시 밟고 싶지 않았다. 또한 그는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었다.

얼마 후 라헬 고모와 어머니, 다른 미망인들은 다시 정글을 찾게 되고, 이들의 믿을 수 없는 용서와 사랑에 와오다니 족은 마음을 열고 변화되기 시작한다. 라헬 고모는 위클리프 성경번역선교회 소속으로 평생을 와오다니 부족과 함께 살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을 전했다. 그로인해 와오다니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복수의 창을 내려놓고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알아갔다.

한동안 미국에서 생활하며 가정을 꾸리고 사업가로서 자리를 잡은 스티브는 라헬 고모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아마존을 다시 방문하게 되고, 와오다니 족으로부터 ‘라헬 고모를 대신해서 자신들과 함께 살 것’을 요구받는다. 스티브 세인트는 그 때부터 아버지와 친구들의 죽음에 둘러싸인 비밀을 하나씩 깨닫게 되고, 결국 와오다니 족의 요청을 받아들여 가족들과 함께 와오다니 부족에게 들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곳에서 아버지를 죽인 원수와 맞닥뜨리게 되고, 마음속의 창끝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우린 당신들의 친구예요. 아버지의 마지막 외침이 그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던 것이었다. 다시 밟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던 원수의 땅에서 비로소 아버지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만나고 있었다. 그 또한 아버지처럼 그 땅에 뼈를 묻기 원했다.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아버지가 저 대신에 설교를 하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버님은 늘 사람들에게 광인이라고 시끄럽다고 쫓겨났지만, 아버지 때문에 저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런 모습으로 설교를 해요.”

최바울 목사님의 고백처럼 그분(영적 스승)의 후광으로 우리는 높임만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이 시대의 진정한 영적 아버지였던 그분들의 삶이 정말 그립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1:1).

이지영